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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잉 아이> 책표지
 <다잉 아이> 책표지
ⓒ 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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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2007년 소설 <다잉 아이>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말에 의하면, 일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는 1년에 약 1만 명이라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대략 50분에 한 명씩 교통사고로 죽는 것이다. 복권 1등 당첨자가 1년에 1만 명이 나온다면 사회가 혼란에 빠지겠지만, 교통사고는 그렇지 않다. 어찌보면 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통사고는 고의가 아니라 과실로 인해서 발생한다. 아무리 과실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실수로 누군가가 죽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죄책감은 꽤 오랫동안 당사자를 따라다닐 것이다.

과실치사로 재판에 회부되고 집행유예로 풀려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미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인생은 여러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자신이 일으킨 사고 현장에서 죽어가던 사람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면 그 죄책감은 더욱 오래갈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자신을 바라보며 서서히 생명이 꺼져가던 그 눈빛이 계속 떠오른다면 어떨까.

실수로 사람을 죽게 만든 바텐더

소설 <다잉 아이>에서 주인공인 아메무라 신스케도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게 만든다. 문제는 신스케가 그 사실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스케는 한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길에 누군가에게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고 쓰러진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신스케는 일시적인 기억상실증세를 보인다. 자신을 찾아온 형사에게서 자신이 과거에 교통사고로 한 여성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어떻게 그런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형사의 말에 의하면 자전거를 타고가던 여성을 승용차로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왜 그 시간에 그곳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는지, 왜 자전거를 보고도 속도를 줄이지 못했는지가 기억에 없다. 안좋은 경험이라면 빨리 기억에서 없애버리는 것도 좋겠지만 신스케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떤 일이 머리속에서 사라졌다면 찜찜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병원에서 퇴원한 신스케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자신을 찾아왔던 형사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당시 교통사고를 재구성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중 자신이 일하는 술집으로 한 미모의 여성이 찾아오고, 그때부터 신스케의 일상이 조금씩 꼬여가기 시작한다.

교통사고의 진상은 무엇일까

죽어가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과실로 인해서 죽어가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피해자의 눈은 생명이 꺼지기 직전까지 집념의 빛으로 번뜩일 것이다. 삶에 대한 집착의 빛,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죽어야 하는 안타까움의 빛.

거기에는 자신을 이렇게 죽어가게 만든 가해자에 대한 증오의 빛도 있을 것이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노려보며 자신의 육체는 없어져도 이 원한 만큼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죽어가면서도 증오의 마지막 불길을 태우는 것이다.

소설 <다잉 아이>에서 신스케의 일상이 무너져가는 것도 바로 그 눈빛 때문이다. 고의건 과실이건 간에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것도 못할 짓이지만, 누군가의 증오를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 증오가 죽은 사람의 것이라면 더더욱.

덧붙이는 글 | <다잉 아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김난주 옮김. 재인 펴냄.



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재인(2010)


#다잉 아이#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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