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배가 아프기 시작해...""그래? 체한 거야?""아니, 아마 3일째니 큰일을 좀 봐야 할 것 같은데..."배변과 배뇨 기능을 하는 방광과 대장이 마비되어 멈춘 후, 아내는 5년째 그렇게 산다. 배뇨는 3시간마다 인공도뇨, 라텍스 관을 요도에 넣어서 빼내는 넬라톤 방식으로 하고 있다. 장거리 외래검사라도 가는 날은 부득이 폴리백이라는 소변 주머니를 시술한다. 그런데 면역억제 치료제를 계속 맞는 중이라 방광염증이 너무 심해 평상시는 하고 있지 못한다. 교통사고나 다른 이상으로 비슷한 상태가 된 분들은 그 방식으로 달고 살기도 하는데, 아내는 그게 안 된다. 그래서 내 일상은 6년째 '3시간 이내'로 맞춰져 있다.
'구타'를 해야만 가능한 배변대변도 처음에는 멸균 비닐장갑을 끼고 5일에서 7일 사이에 손으로 빼냈다. 먹는 관장약이나 항문으로 넣는 세척 방법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 재활 2년쯤부터는 넣는 좌약 방식으로 바꾸었다. 약을 넣고 1~2시간 정도 기다리면 그냥 장이 요동을 치면서 괴로워진다. 그럼 화장실에 가서 씨름을 시작한다. 배를 문지르고 두드리고 그러다 또 손으로 빼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침대에서 커튼을 치고 고스란히 남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처리했는데, 3년째부터는 화장실로 이동이 가능해져 큰 짐을 덜었다. 적어도 같은 병실의 이웃과 관계 유지가 가능해진 거다.
약을 오래 넣으면 점점 내성이 생겨 효력이 떨어진다더니 정말 그랬다. 5년째부터는 약을 넣어도 효과가 크게 줄었다. 변이 잘 나오지도 않고 배만 아프게 해서 계속 화장실을 연속으로 들락날락해야 했다. 변을 내보내는 기능은 못하고, 배만 계속 아프게 하는 후유증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본의 아니게 아내를 화장실에서 구타(?)하는 방식으로 시행중이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을 '팬다'.
내가 속상한 인생을 화풀이 하려는 게 아니고, 국립재활원에서 권하고 중증척수장애자들 가르치는 책에도 나오는 합법적 구타(?)다. 따라서 내게는 죄가 없다!
"음... 준비됐나요? 흐흐흐~""그거 무슨 뜻으로 웃는 거야?""보자, 어제 한 번 짜증낸 거 있었지? 그리고 잔소리도 두 번이나 했고!"그렇게 팔 걷고 의기양양하게 화장실로 데려가서 복부를 주먹 쥐고 때리기 시작한다. 10분, 20분, 팔이 아파서 왼팔 오른팔 바꾸어가며! 그런데 이상해진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지쳐가고 아내는 오히려 뱃속이 시원해지면서 살 것 같은 표정이 된다. 30분 넘으면서 나는 땀에 젖고 녹초가 되었다. 아내는 생생해지고...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게 뒷간'이라는 옛말이 있다더니 이런 경우였단 말인가? 헐...
하지만 아내가 죽을 지경이 될 때도 있다. 변이 제대로 밀려나오지 않으면 한 시간쯤 지나면 졸도 직전에 이른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정말..."자기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온다. 나도 속으로 그런다. '나도 정말 이렇게 평생을 사는 건 자신이 없다, 여보야...' 그래서 나는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대, 쓰러지지 말아." 피로와 우울함이 확 몰려오면 감당이 안 된다. 화가 나다가 슬프다가, 작년 여름엔 너무 심해서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3개월이나 받았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어느 누가 원해서 그 지경까지 가겠는가. 그저 풀고 또 풀고, 조심할 뿐이다.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난치병도 후유증과의 일생 싸움이다. 교통사고나 사별 등으로 인한 이별의 상처, 혹은 사업 실패 등으로 인한 몰락... 여러 일의 후유증들이 사람을 괴롭게 한다. 때론 기억으로, 때론 몸의 통증으로, 때론 책임 문제로...
아내가 이유도 모르고 아프기 시작한 지 1년, 2년이 지날 때쯤부터 많은 것들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돈만이 아니라 체중, 인내심, 믿음... 모든 것들이 바닥나는데 참 불안해졌다. 꼭 질병만이 아니라 사업이 잘 안 되거나 가족 간의 갈등이 오래 되어도 그렇겠다 싶었다. 시간이 사람들에게 아픔을 잊게 하고 약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무거움을 더해 주어 사람을 찌들게도 한다는 걸 경험했다.
그때부터 누가 밥 사주면 먹고, 옷 사주면 받고, 돈을 주면 받았다. 아내가 아프기 전에는 꿈도 못 꾸던 일들... 자존심만 살아서 누구에게나 지지 않고 살던 내게 그런 날들은 참 힘들었다. '이렇게 사는 건 사람이 아니다. 벌레, 기생충과 다를 게 뭐 있을까? 이렇게 연명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남들에게 폐만 끼치고 아는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하면서 말이다.
내 처지를 비관하기도 했지만...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정탐꾼을 보낸다. 다녀온 열두 명 중 열 명이 그런다. 가나안 사람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성벽은 또 얼마나 높고 튼튼한지 도무지 우리가 살기는 불가능하다고.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조 섞인 말을 한다. "우리는 메뚜기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고.
그들은 자기의 행운을 위해, 자기들이 가진 힘과 능력을 기준으로 가나안을 보았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메뚜기처럼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지금 세상의 사람들도 살다 보면 종종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의 계획과 능력으로 살다가 벽에 부딪히면 당연히 드는 느낌. 멀리 갈 것 없이 내가 그랬다. 많이 공감된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딱 두 명은 다른 기준으로 보았다. 아마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든 많은 사람들이 좋은 곳에서 좋은 분이 주시는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모습에 시선을 두었고 그래서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이 가득 했을 것이다. 이것이 혹시 우리의 끝없는 좌절과 두려움을 극복해 낼 아주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이게 무슨 냄새지?""저 옆 침대 할머니 볼 일 보시나봐, 좀 참아."늦은 밤, 한바탕 설쳐서 그런지 출출해진 허기를 채우느라 병실에서 컵라면 하나를 먹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갑자기 퍼져오는 냄새, 많이 거북한 똥 냄새다. 나뿐만 아니라 싸~ 하게 굳어지는 병실 사람들, 누군지 빤히 아는 커튼 쳐진 침대를 힐끗 보며 다들 차마 말은 안 하지만 무지 힘들어 한다.
예전 있던 병원에선 아내도 침대에서 대소변을 모두 처리해야만 했다. 사지가 마비된 늘어진 어른을 업고 배변 배뇨를 처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같은 병실의 용감한 한 아줌마가 그랬다. 직접 내 귀에도 들리도록 투덜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대소변 보는 사람은 따로 몰아서 입원시켜야지, 제길..."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싫은 표정도 못 지었다. 남편인 나도 괴로운 냄새를 참기 힘든 판에 남들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오늘도 아무 소리를 못한다. 싫은 표정도 짓지 못한다. 우리도 그렇게 병실 침대에 누운 채로 해를 두어 번 넘겨 보았기 때문이다. 그 추운 겨울날 창문을 열어 찬바람에 움츠리면서 미안해야 했고, 얼른 빠지지 않는 냄새를 풍기며 죄인처럼 지낸 기억 때문에.
저 할머니인들 어쩌라고, 누군들 민망하고 힘들지 않아서 침대에서 하느냐고, 그러면서 할머니를 응원했다. '할머니, 그래도 쓰러지지 말아요'라고. 죄인 아닌 '죄인의 추억'에 마음이 무겁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그 힘들고 고역인 경험을 주셔서 이 상황에도 남을 안 미워하고 나도 참을 만 하게 하시니!'
'그날'은 언제쯤 올까1월 13일, 아내를 큰아들에게 맡기고 서울로 외출을 다녀왔다. CBS '새롭게하소서'라는 TV 프로그램 녹화를 다녀왔다. 6년 동안의 간병일기를 묶은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라는 책의 내용으로 진행한 1시간의 촬영이었다.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로 개편을 하면서 <세상에 이런 일이> 진행자인 방송인 박소현씨와 또 한 분의 목사님이 첫 방송을 하는 첫 편으로 우리 이야기가 나가게 된 것이다. '얼굴 작은 분'하면 다 안다는 박소현씨는 정말 인형 같은 얼굴에 나이에 맞지 않을 만큼 날씬하셨다. 녹화하는 두 시간이 참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 대담을 하면서 나도 아내도 어쩌면 영 쓸모없는 사람들은 아닐지 모른다고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시 확인했다. 비록 많은 것들을 잃고 망가졌지만 또 누구에게는 우리조차 쓸모가 있고 힘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건강한 분들에게는 감사할 수 있는 동기를 드리고, 아프거나 힘든 분들에게는 위로가 된다고 말이다.
그렇다. 세상에 전혀 쓸모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아무리 도움이 안 되고 약해 보여도 남에게 그런 시선을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허덕이면서 남들을 보며 '저 분은 왜 살까? 무슨 유익이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정말 미안하고 많은 반성을 한다. 멸시가 아닌 딱해서 한 생각일지라도.
정말 그렇다. 무지 비싼 자동차도 값이 얼마 안 되는 핸들 없이는 운전할 수 없고, 브레이크 페달 몇 푼 한다고 그거 없으면 주행이 불가능하다. 타이어 한 개가 없어도 그렇다. 그렇게 비싼 고급 자동차도 돈 얼마 안 되는 부속 하나만 없어도 소용이 없다. 우리도 세상에서 그런 귀한 부속들이다.
눈만 뜨면 고난을 못 견디고 가족들이 동반으로 세상을 떠나고, 사람들의 외면 속에 쓸쓸히 죽어간 분들의 뉴스도 듣는다. 부디 무너진 지금의 우리 자신만 보지 말고, 서로 돌보았으면 좋겠다. 새해가 되었다고 새로운 세상이 저절로 오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인내심, 새로운 복지로 사람을 새롭게 대우하는 세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새롭게하소서!>라는 그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이 자꾸만 가슴에 맴돈다. 우리는 모두 혼자가 아니다.
아들에게 맡겨두었던 아내를 찾아 병원으로 돌아왔다. 몸도 고단하고 마음도 긴장이 풀려서인지 어딘가 허전하다. 문득 '집으로 가고 싶다'는 그리움이 울컥 몰려온다. 밤이 되어도 가족들이 떨어지지 않아도 되는 집, 모두가 모여 웃으며 잠들 수 있는 집, 지금은 비록 돌아갈 집도 없지만 그날은 언제쯤 가능할까? 그날이...
덧붙이는 글 | 2014년 새해를 맞이하고 1월의 중간을 지나며 쓴 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