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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신록의 계절, 산행의 즐거움은 그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다. 푸르름을 만끽하며 산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초목들이 내뿜는 싱그러운 기운은 머리까지 맑게 해 준다.

산천초목과 교감이 커지는 이 시기, 등산을 한다면 어떤 복장이 좋을까? 통풍이 잘 되고 가벼운 옷이 대체로 무난하겠지만, 색깔만큼은 빨강 혹은 파랑 계통의 옷을 고르는 게 보다 '배려심' 있는 마음가짐이겠다. 녹음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에 '보답'하려는 마음이라면 특히 그렇다.

그 많고 많은 색깔 중에서 하필 빨간색 혹은 파란색이라니,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빨간색과 파란색은 평소 초록을 뽐내는 나무와 풀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이 세상의 식물들은 십중팔구 빨강 계통과 파랑 계통의 '빛'을 좋아한다.

빛은 우리 눈에는 아무 색깔도 없다. 하지만 단순하게나마 빛을 세분하면, 무지개로 상징되듯 '빨·주·노·초·파·남·보'의 7가지로 나눌 수 있다. 스펙트럼을 이루는, 즉 차례로 배열할 수 있는 이들 7가지 색깔 중 딱 한가운데에 나무를 상징하는 색인 초록이 있다.

반면 빨간색은 초록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빛의 파장 또한 사뭇 길다. 반면 파란색과 이보다 조금 짙은 남색은 초록보다 파장이 짧다. 식물들은 빛을 '먹고' 산다. 문자 그대로 먹는다. 바로 광합성이다. 거름을 주면 좋기야 하겠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빛과 물, 이렇게 두 가지만 있으면 족한 게 바로 대부분의 식물들이다.

'빨·주·노·초·파·남·보'로 이뤄진 빛은 식물 입장에서는 하늘이라는 접시에 담긴 먹음직스러운 메뉴들에 다름 아니다. 한데, 광합성에 가장 효율적인 파장의 빛이 바로 빨강과 주황, 파랑, 남색 등인 것이다.

사람과 식물은 서로 '교감'... 학습하는 식물도 있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빛을 특히 좋아하는 식물들이라면 빨간색과 파란색 빛을 보고 반색을 할 것이다. 아니, 군침을 질질 흘릴지도 모른다. 산행 때 풀, 나무들과 교감하려 한다면 빨간색 혹은 파란색의 등산복이 안성맞춤인 이유이다.

사람과 식물은 서로 교감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간의 지능과 똑같지는 않을망정 식물 또한 '지능' 혹은 이와 유사한 '그 무엇'이 있다고 주장한다. 적지 않은 식물들이 저희들끼리는 물론 곤충 등 다른 생명체와도 소통한다. 소수의 식물학자들은 기억력이 있으며 심지어 학습을 하는 식물까지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기억력이나 학습은 제쳐두고라도 식물들의 소통 대상에 사람이 포함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예를 들면 식물을 대표하는 색깔인 연두색 혹은 초록색은 동서고금, 또는 남녀를 막론하고 인간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색깔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인간의 초록색 선호는 진화의 산물로 해석되기도 한다.

수십만~수백만 년 전 수렵 생활을 하던 인간의 조상들은 황야를 헤매다가 멀리 보이는 녹음의 숲을 발견했을 때 '환호작약'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푸른 숲은 사나운 동물들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가 되기도 했고, 풍부한 열매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녹색이 인간에게 가장 큰 안도감을 주는 색깔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근거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고 보면 식물과 인간은 상호의존적이고 호혜적인 관계임이 분명하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일방적으로 이용하거나 착취한다면 그 결과는 궁극적으로 쌍방에 이롭기 어렵다. 나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빨강과 파랑 계통의 빛이라면, 나무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만지고 흔드는 것이다.

사람이 줄기나 가지를 붙잡고 흔드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거센 바람조차도 나무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풀어 말하면, 못살게 굴어서 제대로 크지 못하는 것이다. 서로 알면 알수록 더 깊은 사랑을 나누기 마련인데 식물과 사람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위클리공감(www.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입니다.

(도움말 :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은주 교수)



#등산#나무 #산행#광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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