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둘 다 알코올 중독이에요."
"난 술고래죠. 그건 중독과 다릅니다. 원할 땐 언제든 그만 마실 수 있어요.""그럼 왜 그만 마시지 않아요?""내가 왜 그만 마셔야 하는데요?"재미있는 대화다. 로렌스 블록의 1981년 작품 <어둠 속의 일격>에서 주인공인 탐정 매튜 스커더가 한 지인과 나누는 대화다. 여기서 자신을 술고래로 지칭한 사람이 바로 매튜 스커더다.
작가 로렌스 블록은 '매튜 스커더 시리즈'를 통해서 알코올 중독 탐정인 매튜 스커더를 창조해냈다. '알코올 중독'은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매튜는 하루에 몇 잔씩 커피를 마시는데, 거의 항상 그 커피에 버번 위스키를 섞어서 마신다. 이 시리즈에는 매튜가 이렇게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수없이 나온다. 실제로 이렇게 커피를 마시면 어떤 맛일까 궁금해질 정도다.
숙취에 시달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매튜는 마치 죽음이 임박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눈을 돌리면 저승사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그럴 때는 그 기분을 달래기 위해서 한 잔 마실 수 밖에 없다. 저녁에는 술집을 전전하며 위스키를 마실 때가 많다. 이 정도면 알코올 중독이라고 볼 수 있을까?
가족과 헤어져 호텔에서 생활하는 탐정그런데도 매튜가 작품 속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의뢰받고 그 사건들을 깔끔하게 해결하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매튜는 술은 연료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뛰어다니기 전에 연료를 만땅으로 채워놓는 것이다.
매튜 스커더는 1976년 작품 <아버지들의 죄>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경찰이었지만 몇 년전에 총격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다가 우연히 현장에 있던 한 소녀를 죽게 만들었다. 조사 결과 이것은 무죄로 밝혀졌지만 아무튼 매튜는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을 그만두고 사립탐정 비슷하게 변신했다.
아내와 두 아들과도 떨어져서 뉴욕의 한 호텔에서 혼자 생활한다. 가정과 떨어져서 호텔에서 생활하는 탐정. 이것도 상당히 독특한 설정이다. 다른 사립탐정들과는 달리, 매튜가 특별히 정해둔 보수에 대한 원칙도 없다. 그냥 그때마다 자신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보수를 부르고 받을 뿐이다. 그 금액의 10분의 1은 근처에 있는 교회나 성당에 기부한다. 매튜는 여러 가지면에서 독특한 탐정이다.
매튜에게는 탐정 면허가 없다. 그래도 그동안 쌓아둔 경찰인맥을 통해서 다양한 일들이 들어온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살인과 창조의 시간>에서는 한 공갈범을 살해해서 강 속에 처박아 버린 누군가를 찾아서 거리를 뛰어다닌다.
네 번째 작품인 <어둠 속의 일격>에서는, 연쇄살인범을 흉내낸 모방범에게 살해당한 젊은 여성의 아버지에게 수사를 의뢰받는다. 그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죽인 진범을 밝혀달라고 말한다. 매튜는 이번에도 역시 관련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뉴욕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살인사건들범죄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 중에는 전직 형사였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왜 비교적 안정적인 경찰국 생활을 그만두고 프리랜서의 길을 택했는지 의문이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수사능력은 뛰어났지만 경찰국 내의 정치에 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또는 근무 도중에 뭔가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에 등. 이유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다른 이유도 있다. <어둠 속의 일격>에 등장하는 한 전직형사는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이 살해되면 그것을 처리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직장은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았다고. 잔인하게 살해당한 시신을 보게되면 그 장면은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낮이건 밤이건 꿈 속에서건.
매튜 스커더는 그래서 술을 마시는 지도 모른다. 살인사건 수사를 하다 보면 가슴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술을 한잔 마신다. 가장 익숙한 위스키로. 그러면서 생각한다. 위스키를 조금 마시면 답답한 기분이 좀 풀릴 거야. 위스키 몇 잔이면 거의 다 풀린다니까.
덧붙이는 글 | <살인과 창조의 시간>, <어둠 속의 일격> 로렌스 블록 지음 / 박산호 옮김. 황금가지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