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2013년,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 특별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마을의 귀환 시즌2는 '1인가구 공동체'에 주목합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와 마을공동체,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1인가구'와 '공동체', 나아가 '마을'의 만남은 가능할까요. '탈고립', '탈가족주의', '탈자본주의', '탈도시'...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지금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
'자취에 찌들고 병든 육체를 신선한 채소와 과일로 정화한다. 그리고 나날이 좁아져 가는 인간관계를 새롭게 도모하려는 1인 가족 네트워크다.'이웃랄랄라의 소개 글이다. 한강 위 작은 섬, 노들섬에서 텃밭을 만들어 도시 텃밭을 꾸렸단다. '1인 가구와 마을'이라는 주제에 딱이었다. 취재를 위해 한 달 가까이 접촉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겨울잠에 든 것처럼, 농한기를 맞은 농부들은 쉽게 텃밭으로 나오지 않았다. 틈틈이 번개 모임을 열었지만 취재는 어려웠다. 대신 개별적으로 만나야 했다. 그들에게서 지난 2010년부터 이어진 땀과 웃음의 이야기를 들었다. 좌충우돌 1인 가족 농부들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정리했다.
[발단 : 혼자 사는 심심한 1인 가족들 모여라]
"사실 귀찮았어요. 그리고 아무도 안 올 것 같았어요. '쪽팔릴' 것 같아서 지인 두 명을 모아 갔는데 20명이 넘게 온 거에요. 당시는 도시 농업이 정말 생소했고, 이게 제대로 될 수 있을까 생각했죠."시작은 문화기획자인 이정인(36)씨의 아이디어였다. 5평 남짓한 원룸에 살면서 일회용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거나 아니면 라면을 끓이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밖에서 사 먹는 1인가구들. 그들에게 건강한 밥상과 느슨한 이웃 사촌을 만들어줄 계기를 찾다가 농업을 생각했다. 이 아이디어는 2009년, 희망제작소의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 사회창안대회'에서 1등을 했다.
그리고 2010년 봄, 이씨는 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포털에 '1인 가족 에코 네트워크, 이웃랄랄라' 카페를 만들었다.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느슨한 관계망을 만들자는 취지의 슬로건이었다. 당시 참가자 모집을 알리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도시에서 혼자 사는 1인 가구들이 함께 농사를 지어보면 어떨까요? 퇴근길에 상추 뜯고 산책길에 방울 토마토 한 줌 따 먹을 수 있어요. 심심하면 '쓰레빠'(슬리퍼) 끌고 나가서 동네에서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요.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잠만 자는 우리 동네를 푸른 빛의 활기찬 곳으로 바꿔나갈 1인 가족들을 찾습니다."모임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인근의 카페 옥상에서 이뤄졌다. 20여 명의 20~30대 1인 가구였다. 그들은 스티로폼 상자, 아이스박스, 마대 자루 등을 든 채 어색하게 서 있었다. 가져온 도구로 텃밭용 상자를 만들었다. 텃밭에 넣을 흙은 부랴부랴 인근 성미산에서 삽질해 구했다. 이정인씨의 아버지 차를 빌려 옥상까지 운반했다.
흙이 담긴 상자에 상추·고추·토마토 씨앗을 뿌렸다. '우리가 제대로 하는 걸까?' 하는 고민이 들어 인천에서 진행된 도시 농업 수업도 받았다. 거름은 뭘 줘야 하는지, 파종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배웠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작물을 돌봤다. 사람들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을 즐기게 됐다. 또 첫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텃밭을 매개로 관계가 시작됐다. "이제 물 줄 때 되지 않았어?"라고 서로 말을 걸었다. 수확한 상추를 핑계 삼아 삼겹살을 구웠고, 농사일을 빌미로 서해의 섬으로 워크숍을 떠났다. 이씨는 "직장 다니느라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 어려웠다"며 "그런데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내 몸을 염려하고 지구와 환경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전개 : 불안정한 1인 가족처럼, 떠돌이 텃밭]
"여자인 친구들을 만나면 '또각또각' 소리 나는 하이힐을 신고 있었거든요. 하이힐은 도시 여성의 필수 아이템이죠. 그런데 다들 텀블러를 들고 스니커즈 운동화를 신고 있는 거예요. 편안하고 단단한 운동화였어요. 거기서 동질감을 느꼈어요."김경미(34)씨는 5년 전 만난 첫인상들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이웃랄랄라 번개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모임 장소에 사람들은 자가용이 아닌 자전거를 타고 왔으며, 개인 텀블러를 가지고 왔다. 각자가 마실 술과 음료를 준비해온 조촐한 파티였다. 김씨는 대학 시절 녹색정당 창당을 위한 초록정치연대 활동을 하는 등 먹거리와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며 번개하던 날을 회상했다.
김씨는 사실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는 도시를 떠나 농사꾼이 된 여성들의 삶을 다룬 독립영화 '땅의 여자'에서 영감을 얻어 관련 다큐를 기획하던 중이었다. 카메라 촬영을 하다 흙을 나르기 시작했다. 노동 뒤에 먹는 만찬이 꿀맛이었다. 촬영을 하다보니 어느새 진짜 멤버가 됐다. 그는 "단순히 취미 생활을 하는 모임과는 다르게 농사일이 주는 관계가 독특하다"며 "사계절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함께 보고, 자연이 주는 수확의 묘미를 공유하고 경험하면서 관계가 쌓여왔다"고 말했다.
2011년 9월, 텃밭을 옮겨야 했다. 카페가 문을 닫으면서 자연스럽게 옥상 텃밭도 자리를 비워야 했던 것이다. 불안정한 1인 가구의 삶처럼, 텃밭도 떠돌이였다. 운 좋게도 인근 서교동의 서교실험예술센터의 옥상을 빌리게 됐다. 사다리차를 이용해 상자 텃밭을 하나씩 옮겨야 했다. 흙이 담긴 상자는 생활 이삿짐에 비해 배 이상 무거웠다.
이사 6개월 만에 다시 위기에 부딪혔다. 센터에서 옥상을 비워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또 이사를 해야 하나', '기운 달려서 이제는 못해'라는 걱정과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옥상이 아닌 진짜 땅이었다. 한강 위의 작은 섬, 노들섬에 도시 텃밭이 생긴 것이다.
15평 남짓한 텃밭. 상자 대신 땅으로 옮겨오면서 재배 면적이 넓어졌다. 넓은 공간이 생기자 욕심도 났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국내 최초 텃밭 라디오, '밭두렁 라디오' 행사를 진행했다. 뮤지션들의 공연은 텃밭을 달아오르게 했다. 버스커버스커의 음악이 강바람에 타올랐다. 이들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3년 간의 활동을 기록한 '뭐라도 나겠지'라는 잡지를 내기도 했다.
[절정 : '쩌리 파티'에서 시작한 '부엌랄랄라']
한 해의 마지막 밭일에는 작물이 넘쳤다. 수확의 기쁨도 잠시. 싱싱한 작물을 집에 가져가봤자 냉장고에서 썩기만 할 것 같았다. 1인 가구의 좁은 냉장고에 짐이 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수확한 작물들을 모아 한 차례 큰 파티를 열었다. 일명 겉절이를 만들어 먹는 '쩌리파티'였다. 장소는 한 카페의 부엌을 빌렸다. 1시간 당 5만 원이 들었다. 1인 가구인 회원 집에서는 다 같이 모일 수가 없었다.
요리를 담당했던 이현정(35)씨는 회원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 모임이 먹거리 고민에서 출발했던 것을 상기했다. 우리만의 요리 공간이 필요하다고 이씨는 생각했다. 노들섬 텃밭 외에 모이기 편한 공간을 꿈꿨다.
이씨는 지난해 서울시 마을공동체 공간 조성 사업에 신청했다. 이름을 '랄랄라이프.' '
부엌랄랄라', '고민랄랄라', '액션랄랄라' 등 3가지 세부 사업 계획도 갖췄다. 서울시 지원금을 받아, 합정동 인근에 1인 가족 밥상 개조 프로젝트, '부엌랄랄라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스튜디오는 1인 가족에 맞는 요리 강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공간 대여 사업으로 꾸려지고 있다.
시작 단계에 있지만 스튜디오 월세가 부담이 되고 있다. 애당초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웃랄랄라 전체의 공간으로 기획하려 했으나, 의견 수렴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사업에 선정된 것이었다. 결국 이현정씨와 이정인씨 두 사람이 사업을 끌어가게 됐다. 나머지 회원들의 참여가 중요해졌다.
더불어 지역 주민과의 연결 고리를 찾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스튜디오가 자리 잡은 합정동은 인근 망원동과 함께 1인 가구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이씨는 색다른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 이른바 '동네 냉장고'다.
"부엌랄랄라 앞에 냉장고를 세워 두는 거예요. 1인 가족들이 남은 쌀, 반찬, 빵 등을 냉장고에 넣는 거죠. 물론 음식물 쓰레기를 넣어서는 안 되죠. 그리고 필요한 사람들이 냉장고에서 꺼내 가는 거죠. 이웃랄랄라의 모토가 그런 거였어요. 파는 한 단씩 파니까 엄청 많잖아요. 그걸 나눌 친구를 찾아가는 거죠."[미래: 5년의 이웃랄랄라... 10년 후는?]
2015년 1월, 햇수로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회원 두 명이 결혼을 해 가족을 이뤘다. 결혼을 했지만 이웃랄랄라 활동에는 변함이 없이 나선다. 아직 싱글인 김경미씨는 "우리의 미래가 궁금하다"고 했다. 30대 초반에 만나, 30대 중반을 넘어 40대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 그때도 텃밭에서 상추를 심게 될까.
"10년 후에, 나중에 우리가 가족이 돼서 애를 키우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학원 어디에 보내야 하냐고 그런 이야기들을 하게 될까요. 궁금하네요(웃음)."미래의 계획은 없다. 다만 봄이 오면 밭에 나갈 것은 분명하다. 기획자, 이정인씨는 "텃밭이 있는 한 우리는 계속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신입 회원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관심 있는 1인 가구들에게 이웃랄랄라를 소개해달라했더니 이씨는 "와서 실망하지 말라"며 웃었다.
"힘들게 농사짓는 줄 알고 오시면 분노하실 수도 있어요(웃음). 설렁설렁 농사지으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운 관계를 만들고 싶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세 번까지는 전화번호 묻지 않아요. 부담 갖지 말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