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랑했기에 더 큰 상처가 된다. 상처를 준 그 사람이 밉다.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로 한다.
어쩌면 내가 먼저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그 사람을 몰아세운 지도. 그래서 나는 몇 날 며칠, 몇 개월, 몇 년을 그 사람을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언제나 생각은 원점이다. 그 사람이 내게 상처를 줬다는 것. 그래서 밉다는 것. 그래서 용서할 수 없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상처를 주었을 때 기브 앤 테이크. 이에는 이. 네가 내게 돌을 던졌으니 나도 네게 돌을 던지겠다. 어쩌면 우리 마음엔 이런 완강한 논리가 굳건히 서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미워하고 싶지 않은 그 사람을 계속 미워하게 되는 건지도. 이런 논리 아래에선 내게 돌을 던진 그 사람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의 돌. 나의 돌은 용서하지 않는 것.
하지만 마음 한켠에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을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다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 사람을 용서하고 싶을 때. 다시 손 내밀고 싶을 때. 그런데 난 여전히 상처를 안고 있다면.
그들 곁으로 다가가 아빠 옆에 앉았어요. 아빠는 놀라지 않네요. 그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봐요. 멋져요. 내게 미소를 지어 보여요. 세월이 흘렀죠. 아빠가 손을 들어 내 어깨에 올려놓더니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어깨를 감싸요. 눈물을 흘리네요. 다시는 날 떠나보내지 않을 거라고. – 본문 중에서 프랑스 소설가 그레구아르 들라쿠르의 <행복만을 보았다>는 위의 장면에서 끝이 난다. 조세핀은 7년간 보지 못했던 아빠를 찾아 멕시코로 왔다. 저 멀리 해변에 앉아있는 아빠가 보인다. 망설이던 끝에 조세핀은 걸어가 아빠 옆에 아무 말 없이 앉는다. 그리고 위의 상황이 된 것이다. 딸을 보는 아빠. 딸의 어깨를 감싸는 아빠. 우는 아빠. 다시는 딸을 떠내 보내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아빠.
아빠는 7년 전 조세핀을 죽이려고 했다. 마지막 순간 손을 떨지만 않았다면 조세핀은 정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총알은 빗나갔고 조세핀의 턱은 날아갔다. 지난 시간 조세핀은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몇 번의 턱 수술과 정신과 치료, 그리고 무엇보다 조세핀을 끔찍하게 했던건 아빠가 자기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빠가 딸을 먼저 쏜 이유
자기와 동생 레옹을 죽이고 본개 같은 일이 벌어졌던 그 첫해의 5월 5일, 그 '끔질(끔찍한 질문)'이 다시 떠올랐어요. 왜 당신은 날 먼저 쏘았나요? – 본문 중에서인도 죽으려 했다는 아빠의 말을 전해 들은 조세핀은 생각한다. 아빠는 왜 날 먼저 죽이려고 한 걸까. '끔질'에 대한 조세핀의 첫 번째 답은 이것. '단지 정면을 향해 쏘았다.'
조세핀은 아빠를 증오하기로 했다. 아빠를 아빠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개망나니'. 아빠의 성을 버렸고, 아빠와의 모든 추억도 버렸다. 마음속에서도 아빠를 죽여버렸다. 그러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끔질'. 그 두번 째 답은 이것. '레옹을 먼저 쏘면 그 소리에 내가 깰까 봐 무서워서. 내가 그 모습을 목격하고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서.'
조세핀을 만난 고모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시절, 아빠가 어떻게 고모를 도왔는지. 쌍둥이 동생을 잃고 말문이 막혀 버린 자신을 위해 아빠가 어떻게 해주었는지. 아빠의 엄마, 아빠는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도대체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날 밤, 날려 보내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불행이요." - 본문 중에서 조세핀에게 총을 쏜 뒤 아빠 앙투안은 정신병원에서 3년을 보낸다. 그곳에서 앙투안은 비로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끝까지 얼마나 비겁했는지도.
"그런데 왜 조세핀과 레옹이었나요?"
"두려웠거든요."
"두려워요?"
"그 둘이 더 이상 깨어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고통도 두 아이한테 미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 본문 중에서 앙투안의 인생은 시작부터 끝장나 있었다.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던 부모는 무책임했고, 비겁했다. 자신을 사랑하느냐는 앙투안의 물음에 엄마는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질문이라고 답했고, 비는 왜 오느냐는 앙투안의 질문에 아빠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둘은 부딪혀 해결하려 하지 않았고 서로의 동굴 속으로 숨어버리는 길을 택했다. 엄마는 집을 나간 뒤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고, 아빠는 30년 동안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앙투안은 특히 아빠처럼은 안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빠는 매 순간 비겁했다. 비겁한 아빠는 한 번도 자신의 생각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회피하고 도망치고 숨어버렸다. 그런데 앙투안이 바로 그런 비겁한 사람이 되어 버린 거였다. 그렇게나 닮기 싫었던 아빠처럼 숨고 피하고 도망가고. 앙투안은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너무나 쉽게 비겁해질 수 있다는 걸. 사람은 '아무도 날 보고 웃어주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비겁해질 수 있다는 걸.
너도 알잖니, 사람이 더 이상 선택받지 못하면 시들고 야만스러워지고 자기 비하를 하고 자존감이 사라진다는 걸. 아무거나 먹고 더러워지고 냄새나기 시작하지. 그런 사람들은 천사가 나타나길 기다리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자신을 구원해줄 천사. 하지만 천사는 끝내 오지 않아. 그들은 결코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눈물겨운 처지가 되고 마는 거야.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런 사람들은 늘 쓰러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팔을 내밀며 허황된 환상을 붙잡고, 서로의 손을 움켜잡아. 그렇지만 결국 손톱이 으스러지고 말지. 인생은 그저 기나긴 추락에 불과한 거야.– 본문 중에서 집을 나간 엄마는 홀로 죽었다. 아빠도 죽어가고 있다. 바람난 아내와는 끝내 이혼했다. 부모의 이혼을 접한 아들 레옹은 오줌을 다시 지리기 시작했고, 딸 조세핀은 학교를 그만두었다. 분명, 아이들의 인생도 앙투안의 인생을 닮아갈 것이다. 불행 속으로, 고통 속으로 추락할 것이다.
"왜 하필 그날 밤이었죠?"
"아이들과의 그 행복한 순간이 다시 올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나요?"
"그날 저녁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본문 중에서 '끔질'에 대한 조세핀의 세 번째, 네번 째, 다섯번 째 답은 이것. '여자들은 자기를 두렵게 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생각을 바꾼 거라면 아무래도 레옹을 자기 곁에 두는 게 더 좋아서.' '내가 동생보다 좀 더 살았으니까, 동생이 좀 더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서.'
고모는 조세핀에게 사진 두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한 장은 고모와 쌍둥이 동생의 사진. 다른 한 장은 여섯 살 때의 아빠 앙투안의 사진. 유도 수업 등록을 위해 찍은 앙투안의 즉석 증명사진을 보며 고모는 설명한다. 너희 아빠는 이날을 자기 인생에서 가장 멋진 날로 꼽는다고. 사진을 찍은 다음, 아빠는 할머니랑 영화관에 갔고 콘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고. 그날 할머니가 영화를 보는 내내 너희 아빠의 손을 잡아 주었다고. 이게 너희 아빠 인생에서 가장 멋진 날이었다고.
조세핀은 생각했다. 마지막 날 아빠가 자기에게 해주었던 말을. "넌 언제까지나 최고로 멋진 어린 시절을 간직하게 될 거야." '끔질'에 대한 마지막 답은 이것. '날 지나치게 사랑해서.'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하다 조세핀은 아빠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더는 아빠를 미워하기 싫어서. 행복해지고 싶어서. 조세핀은 아빠를 용서했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아빠를. 용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아빠가 나를 사랑했으니까. 내가 아빠를 사랑하니까. 그래서 아빠와 딸은 멕시코 해변에서 재회하게 된 거였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아빠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지닌 딸이.
어쩌면 이거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을 용서하고 싶을 때 내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이 내게 준 상처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건지도. 그렇게 다시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면 알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 역시 나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덧붙이는 글 | <행복만을 보았다>(그레구아르 들라쿠르/문학테라피/2015년 03월 03일/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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