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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는 최근 십수 년 사이 들과 산에서 가장 흔하게 목격되는 야생 포유동물 가운데 하나다. 겨울을 목전에 둔 요즘은 이들의 짝짓기 시즌의 시작이기도 하다. 또 농가에 적잖은 손해를 끼치기도 하고, 가끔은 도심까지 출몰해 화제가 되기도 하는 멧돼지 역시 대략 11월께부터 집중적으로 짝짓기를 시도한다.

인간과 달리 동물 중에는 짝짓기 계절이 분명히 정해진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염소나 양, 사슴 등도 고라니, 멧돼지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에 잉태에 들어간다. 반면 말이나 생쥐 같은 동물은 봄이 오면 짝짓기를 하는 편이다.

연중 특정 시기에 짝짓기를 집중적으로 하는 건, 두말할 나위 없이 양육에 유리한 시기를 본능적으로 택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고라니의 임신 기간은 200일, 즉 7개월 정도인데, 겨울이 오기 전에 짝짓기를 한다면 새끼는 봄~초여름 사이에 태어난다. 이 시기는 날씨도 따뜻하고 초목도 녹색 빛을 띠는 등 먹을 것이 풍부해지는 때라 양육에 유리하다.

그렇다면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동물은 날씨가 추워지는 걸 감지해서 짝짓기에 들어가는 걸까?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짝짓기 시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기온과 일조량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온과 일조량 중에서는 일조량의 영향이 약간 더 클 수 있다고 말한다. 호르몬의 분비가 보통은 햇빛과 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까닭이다.

인간도 계절에 영향 받아, 산업화 이후 덜 뚜렷해져

 "사람 역시 계절에 따라 인체 호르몬의 분비에 변화가 오고, 이때 성호르몬의 움직임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 역시 계절에 따라 인체 호르몬의 분비에 변화가 오고, 이때 성호르몬의 움직임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 pixabay

사람은 어떨까? 인간은 동물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출산이 아니라 쾌락을 주목적으로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예외적인 생명체이다. 짝짓기가 어느 시기이고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생식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 역시 계절 즉 일조량과 기온의 영향을 받는다. 다만 기계문명이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산업화 시대 이후 계절에 따른 짝짓기 패턴은 덜 뚜렷해졌다.

계절별 월별 신생아 출산은 북반구 국가들의 경우 8~9월, 12월~3월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8~9월 출생한 아이들의 경우 대체로 전해 11월을 전후한 시기에 임신이 이뤄졌다는 뜻이므로 이 시기 가임이 활발하다는 걸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12~3월 출산은 전해 봄철에 임신이 주로 이뤄졌다는 걸 의미한다.

속설이긴 하지만, '춘녀, 추남'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출산 통계는 이런 말의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다는 걸 보여준다. '추남'이란 가을이 되면 남자들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춘녀'란 봄에 여자들의 마음이 야릇해지고 미묘해지는 걸 의미한다. 사람 역시 계절에 따라 인체 호르몬의 분비에 변화가 오고, 이때 성호르몬의 변화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인간 역시 종족의 번식과 보존을 위해 양육에 적당한 시기를 택해 짝짓기가 집중적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 이후 난방기기나 에어컨 등이 등장하면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임신 시기에 있어 계절의 영향을 덜 받게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조명 또한 인간의 성호르몬 분비에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 예컨대 인공조명 아래서 하는 야근 등이 성생활 패턴 등을 일정 부분 좌우할 수 있다.

인간은 또 특유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는데, 이 역시 계절별 임신-출산 패턴을 동물들과 차별화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문화권에 연중 최소 두세 차례의 명절이나 휴가철 등이 존재하는데, 이런 시기들이 임신-출산 시기에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고라니나 멧돼지들과 비슷하면서도 그들과는 다른 인간만의 임신-출산 패턴이 있다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위클리 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 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 입니다.



#가을 #계절#짝짓기#호르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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