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끈에 목을 매 죽은 양귀비의 나이가 겨우 삼십칠 세... -이상옥의 디카시 <화청궁의 장생전에서>지난 주말에는 섬서성(산시성) 서안(시안)을 2박 3일 투어했다. 하남성 낙양에 이어 서안 투어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서안은 낙양만큼이나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고도이다. 서안은 전한 시대 수도요, 수나라와 당나라의 수도로 특히 당나라 때는 실크로드의 출발지로도 유명하다.
금요일 정주역에서 오전 8시 3분 출발 고속철을 타고 약 2시간 남짓하여 서안역에 도착했다. 먼저 화청궁을 찾기로 하고, 스마트폰 바이두지도로 검색하니 지하철을 두 번 타고 버스로 가는 코스로 안내가 되어 서안역에서 지하철부터 탔다. 정주의 지하철 카드로는 호환이 안 돼 1회용 지하철 표를 다시 사야 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화청궁 가는 버스정류소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 버스정류소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는 버스를 타고 화청궁까지 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후 1시쯤부터 화청궁 투어를 할 수 있었다.
현종과 양귀비의 화청궁화청지는 서안 동쪽 여산 기슭의 3000년의 역사를 지닌 온천지로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온천을 즐겼던 휴양지로 유명하다. 화청궁은 주나라 때부터 황실의 행궁으로 사용되다가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와 자주 찾아와 대규모로 전각을 짓고 정원을 만들면서 유명해진 곳으로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의 상징이 되었다.
현종은 당나라의 6대 황제로 27세에 즉위하여 '개원(開元)의 치(治)'를 열고 개혁과 선정을 베푼 총명한 황제이었으나 경국지색 양귀비를 만나면서 총명함을 잃게 되었다.
현종이 자기 며느리를 취한 폐륜을 저지른 때문인지, 사랑은 영원하지 못했다. 국사를 내팽개치고 젊은 여인의 아름다움에 탐닉하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안록산의 난'으로 피난길을 가던 중 양귀비를 비단 줄에 목매달아 죽게 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종말을 가져 왔다.
서안사변의 장학량과 송미령의 로맨스화청궁은 중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서안사변(1936년)이 일어난 오간청도 역사 유적으로 유명하다. 중국 북서지방 서안의 동북군(만주군) 지휘관이었던 장학량이 장개석이 중국 북부를 침략한 일본군에 대항하는 대신 반공 내전을 지속할 방침을 세우자, 장개석을 연금했던 사건이 바로 서안사변이다.
서안사변에서 장개석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내 송미령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참 역설적이다. 장학령과 송미령의 젊은 시절 로맨스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장학령은 그가 사랑했던 송미령이 혼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장학령 역시 서안사변 후 장개석에 의해 평생을 연금 상태로 지내게 되는데, 말년에 연금에서 해제된 것도 송미령의 역할이었다고 전한다.
화청궁에는 장학령과 송미령의 로맨스도 얽혀 있는 것으로 보면, 화청궁이야말로 세기의 로맨스의 산실이 아닌가 한다.
덧붙이는 글 | 지난해 3월 1일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