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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성(59) 성신여자대학교 총장이 2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학령인구 및 대학 진학률 감소에 대한 생존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호성(59) 성신여자대학교 총장이 2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학령인구 및 대학 진학률 감소에 대한 생존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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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성신여대 남녀공학 전환 의사를 내비쳤던 김호성 총장이 결국 자신이 내뱉은 말을 철회했다. 이번 논란은 지난 2일 김 총장의 신년사에서 시작됐다. 김 총장은 "남녀공학 전환도 공론화해 구조적 불이익 제거를 모색해야겠다"고 말했는데, 학내 구성원과 어떤 논의도 거치지 않고 나온 발언이었다. 총장 스스로 성급하게 '남녀공학 전환'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학생들은 크게 반발했다.

성신여자대학교가 공학 전환 논란에 다시금 부딪힌 건 2010년 이후 두 번째다. 여자대학이 '수험생 모집'과 '취업'에서 구조적 불이익을 겪는다 주장하는 학교 본부 측과 '그건 여자대학의 문제가 아닌 여성 차별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대립했다. 실제로 성신여대 제 33대 중앙운영위원회가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학생(재학생, 휴학생, 졸업생) 96%가 공학 전환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여자대학을 포기하고 남녀공학으로 전환해 구조적 불이익을 제거하겠다'는 성신여대 본부의 꿈엔 흠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신여대 김호성 총장의 주장은 여성을 향한 사회적 차별에 무릎을 꿇고 백기투항하겠다는 패배 선언과 다르지 않다.

김호성 총장이 내세운 주장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수험생 절반만을 대상으로 신입생을 모집하니 적자가 계속된다는 것. 그리고 여전한 사회적 차별 때문에 여대 출신이 공학 출신에 비해 취업률이 낮다는 것이다. 두 지점 모두 논의해볼만 하지만, 김 총장의 분석은 어딘가 잘못됐다.

시대도, 여자대학의 의미도 달라진 건 사실이지만...

'적자'의 이유를 내세워 신입생 모집에서의 어려움을 겪는다 주장한 김 총장의 생각엔 속뜻이 있을 것이다. 여자대학은 전체 수험생의 절반을 대상으로만 신입생 모집을 진행하기 때문에, 공학에 비하면 경쟁율이 일반적으로 낮은 게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요한 문제는 '원서비로 적자를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여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수험생들이 여대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수험생들이 여대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공학에 비해 덜 매력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강조하고, 어른들이 '대학 가면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 '이성애 연애의 판타지' 같은 걸, 여자대학은 일정 부분 충족시켜줄 수 없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수험생들에게 여대의 설립 이념이나 존재 이유 등을 납득시키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차라리 김 총장이 이 부분을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더 납득이 가는 주장이 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수험생들은 '여대가 왜 여자대학으로 존재해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여대에 지원하는 학생들도 '여대'라서 지원하기보다는, 자신의 성적에 맞는 대학이라는 이유로 지원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성신여대를 포함한 6개의 4년제 여자대학이 서울에 자리 잡고 있고, '인서울 대학'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는 수험생들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자들만 다니는 학교'라는 특성 자체는 그리 큰 장점으로 적용하지 못할 수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대학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된 수험생들에게 여대의 존재가 의문이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교육의 기회, 특히 고등교육의 기회가 여성들에게 주어지지 않던 시절에 여대는 스스로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여성들은 공부를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없으니, 여학교를 세워 여성 인재를 육성하자. 그리고 이는 거의 모든 여자대학의 설립 취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의 의무교육이 서서히 자리 잡고 고교 진학률과 대학 진학률이 80~90%에 육박하게 되면서, 교육 기회의 측면에서 남녀차별은 점차 흐려진다. 이제는 여학생들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너르게 열려있다.

여자대학이 문을 열던 188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중반에 내세웠던 설립 취지가 설득력을 잃게 된 것은 자명한 사실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여자 대학은 스스로의 지위를 내려놓아야 하는가? 아니다. 여자대학의 역할은 단순히 여성들을 고등교육의 터로 '진입'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어떠한 종류의 '사회적 차별'이 존재함을 인지하고 인정했으나, 그 책임을 여자대학에 미루어 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김 총장은 어떠한 종류의 '사회적 차별'이 존재함을 인지하고 인정했으나, 그 책임을 여자대학에 미루어 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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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어려운 구조에 문제제기 않고 '굴복'하겠다니

1900년대 중후반 까지는 여자대학이 있었기에 여성들이 대학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면, 2000년대에 이르러선 여자대학은 여성들이 구조적 성차별의 불리함을 딛고 사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의무교육과 대학 진학의 확산으로 여성들도 장애물 없이 고등교육에 진입할 수 있게 되지만, 사회적 차별은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결혼과 출산의 의무를 지우며, 그것을 이유로 취업에서 불이익을 안긴다. 결혼이나 출산이라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기업은 '이유 없이' 남성을 선호한다고 취업 시장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남성은 군대에 다녀왔기 때문에 참을성이 더 있다든가, 남성은 힘쓰는 일도 할 수 있다던가 하는 뻔한 관념들이 쌓이고 쌓여 두툼하고 견고한 차별을 만들었다.

실제로 대학알리미의 '2016년 대학 성별 취업률'에 따르면, 여성 취업률 1~3위를 기록한 서울대·고려대·성균관대 모두가 취업률 남녀 격차 10% 이상을 기록했다. 4위 연세대는 9.0% 차이, 5·6위는 이화여대와 숙명여대다.

이 지점에서 '사회적 차별 때문에 여대 출신이 공학 출신에 비해 취업률이 낮다'는 김호성 총장의 분석은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 총장은 어떠한 종류의 '사회적 차별'이 존재함을 인지하고 인정했으나, 그 책임을 여자대학에 미루어 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여대를 향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고, 그렇기에 여자대학이 자신의 존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은, 부당한 차별의 피해자가 스스로를 변화시켜야만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위험한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김 총장이 언급한 '사회적 차별'은 여대를 향한 차별이 아닌 '여성'을 향한 견고하고 두터운 차별이다. 취업 시장을 포함한 사회에서, 성신여대 출신 여성만이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OO대 출신 여성 모두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한 차별의 순간을 수도 없이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구한 차별의 역사에서 여자대학은 무엇을 해왔는가? 여자대학은 이러한 차별에 맞서 '여성의 능력을 기르는 일' 따위를 해온 것이 아니다. 여성들은 언제나 유능했으며, 새로운 도전을 저어한 적이 없다.

여자대학이 그 존재를 유지하며 해온 일은, 여성 스스로가 사회적 차별의 구조를 개관할 수 있게 만들고, 자신이 실패하더라도 그것이 여성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면에 사회적 부조리가 있음을 알게 하고, 그러한 부조리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성차별에 더 크게 목소리를 내고, 결국은 그 차별을 허물어서, 여성들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동등한 인간으로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함께 모색해온 것이다.

여자대학은 불평등한 세계를 전체성의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관점을 훈련시킨다. 페미니즘과 관련한 특정 과목을을 필수로 지정하지 않는 여자대학도 있지만,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의 기반은 페미니즘일 수밖에 없다. 여자대학은 여성학자의 목소리에, 여성 과학자의 이론에, 여성 철학자의 논리에 한 번 더 귀 기울인다. 남성의 시각으로 쌓아 올려진 학문적 성취에 이의를 제기할 줄 알고, 세상 모든 분야에 여성의 시각이 동등하게 스며들 필요가 있음을 4년 내내 가르치는 곳이 여자대학이다.

학문뿐만 아니라, 이제는 대학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된 취업을 지도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자대학 학생들은 사회 진출 이전, 자신이 맞닥뜨릴 무거운 성차별의 존재를 인지한다. 여성들은 온 힘을 다하더라도, 이성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럴수록 학생들은 사회에서 자신이 '여성'으로서 기능하기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인간'으로서 기능되기를 목표하고 그에 걸맞는 자존감을 키운다. 성차별에 몇 번쯤은 꼬꾸라질지 몰라도, 다시 일어설 줄 아는 용기를, 나아가 부당함에 맞설 줄 아는 민주주의를 여자대학에서 익히고 나가는 것이다.

'여대생 아닌 대학생' 여전히, 여대가 의미있는 이유

총장의 발언 철회로 논란은 일단락되었지만, 이번 일이 성신여대 학생들에게 상처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성신여대 중운위가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학생 96%가 공학 전환을 반대한다, 즉 성신여대는 여자대학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는 사실은 괄목할만한 지점이다.

앞서 언급했듯 신입생들은 '여자대학'이라는 속성 자체에 매력을 느껴 여대를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여자대학 학생들도 그저 성적에 맞추어 입학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여자대학의 구성원이 된 학생들이, 여성주의를 근간으로 한 교육과 여성공동체가 주는 편안한 분위기에 적응하며 여자대학 존재 의의를 구성원 스스로 납득하고 합의해나간 것이라 위 결과를 해석할 수 있다.

납득과 합의라는 소극적 타협을 넘어서, 여성교육공동체를 경험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여대의 존재를 보호하고, 성차별의 논리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정도로 성장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아무리 바깥에서 여자 대학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고 해도, 구성원 스스로가 그 이유를 명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아주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는 사실마저 왜곡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신여대 학생들은 지난 24일 발표한 입장서에서 "여자대학교는 성적인 억압 없이 선의의 경쟁을 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일생일대의 이런 특별한 공동체에서의 경험이 있다면 이것이 곧 사회를 헤쳐나갈 지표가 되리라고 믿는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온라인 진학 상담 서비스에서 한 고등학생이 "여대만의 장점이 뭐냐"고 묻자, 한 이화여대 학생은 "공학에 가면 여대생이 되지만, 이대에 오면 대학생이 됩니다"라고 답했다.

여자대학이 여자대학으로 남아야 하는 이유를 묻는 수많은 질문들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아주 멋진 대답들도 꼿꼿이 존재한다. 공학 전환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무산시킨 성신여대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존재 자체도 그 멋진 대답들 중 하나다. 요원한 성평등의 사회, 아직도 여자 대학의 존재가 의심스럽다면 이들의 면면을 떠올려 보길 바란다.


태그:#성신여대, #성신여대 공학화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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