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펼쳐 보자. 출판물 정보가 인쇄된 페이지를 넘기면 두 개의 사진이 위 아래로 배치되어 있다. 위쪽 사진에는 어두운 방에 책과 CD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아래쪽 사진에는 취침용 푸톤과 좌식 책상만이 놓여 있는, 햇볕이 밝게 들어오는 방이 보인다. 마치 흑백을 대조하여 색을 배치한 폴 클레 또는 몬드리안의 그림 같다. 어느 방에 살고 싶은가?
미니멀리즘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현대인들은 필요 이상으로 넘쳐나는 정보와 물건에 둘러싸여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첨단기술의 발전은 이제 소유 자체를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를 물건더미에 파묻어 오던 기술의 발전은 이제 변곡점을 지나 우리를 물건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려 하고 있다. 미니멀리스트는 그 트렌드에 미리 올라타는 얼리 어답터다.
소유냐 존재냐미니멀리즘의 단초는 이미 40년 전에 발간된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볼 수 있다. 그는 대량생산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세태를 경계하면서, 그는 존재를 지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소유에 집착하는 이면에는, 물건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착각이 숨어 있다. 책을 단지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그 책 속의 지식을 얻은 듯이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지 않는가. 소유한 물건을 통해 나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인정을 통해 존재를 확인받으려는 불안의 발로일 뿐이다.
물건을 자신의 내면을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 물건은 점점 늘어만 간다. (90쪽)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을 보면, 소유한 물건은 우리의 일부가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유한하다. 오바마 대통령도 언급해서 유명해진 캐치프레이즈, '욜로(YOLO)'는 한 번뿐인 인생을 제대로 즐겨보자는 의미보다는, 우리가 소유보다 존재에 치중해야 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욜로족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훌쩍 어디론가 여행 떠나기'야말로 소유를 버리고 존재를 취하는 행동 아닌가.
마치 이사하는 사람처럼 잔뜩 짐을 가지고 갔다가 다시 그 짐을 가지고 돌아오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훌쩍 떠난다는 말과는 어딘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호텔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 느껴지는 해방감은 호텔 방이 깨끗이 정돈된 상태로 비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미니멀리스트의 집을 보고 호텔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같은 까닭일 것이다.
필요한 것을 잔뜩 들고 가는 여행의 대명사는 역시 배낭여행이다. 왜 배낭여행을 하는가? 돈이 부족해서다. 즉, 돈을 쓸 용의가 있다면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훌쩍 떠날 수 있다.' 그런데 IT 기기의 발달과 공유경제의 확산으로 인해서 우리는 돈을 덜 들이고도 비슷한 수준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의 문턱이 낮아진 것이다.
장을 보거나 주말여행을 할 때만 차가 필요하다면 차량공유 서비스를 통해 차를 빌려 쓰면 된다. 자율주행 차량이 보급되면 차를 소유하여 얻는 효용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예전에는 산꼭대기에서 느낀 점을 메모라도 하려면 필기구를 들고 가야 했지만, 요즘에는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가면 된다.
물건을 버리면 찾아오는 변화물건을 버리면 시간과 돈이 절약된다. 우리는 물건을 사는 데 돈은 물론 시간도 낭비한다. 카페에서 공짜 커피를 나누어 주기라도 하면 언제나 긴 줄이 생긴다. 그 커피는 몇천 원밖에 안 하는 물건이고,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고 해서 큰 불이익을 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공짜 커피를 위해 몇십 분의 시간을 주저 없이 낭비한다.
공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물건을 사기 위해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광고를 살펴보고, 가격을 비교하고, 상점에 방문하거나 온라인 쇼핑에 필요한 결제 앱을 다운받는 데 우리는 시간을 쏟아 붇는다. 필요한 물건을 찾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물건을 잘 정리하기 위해 청소도 하고 수납도 하지만, 물건이 많은 한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 수납장을 수납하기 위해서 대형 수납장을 사는 사람도 있다.
소유에 얽매이지 않는 삶은 당신에게 시간을 되돌려 준다. 이렇게 확보한 시간을 우리는 좀 더 소중한 것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소중한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물론, 청소를 하고,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되는 불행에서도 멀어질 수 있다. 남들과의 비교야말로 불행으로 치닫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남들과 자신을 비교할 때, 그들은 가지고 있으나 나는 가지지 못한 것을 본다.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수준의 소비를 하기 위해, 때로는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소비를 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낭비한다. 마치 군비 경쟁 같다. 미니멀리즘은 이런 악순환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
미니멀리즘의 실천우리는 언젠가라는 시간이 결국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악기 연주도 배우고 히말라야로 트레킹도 떠날 것이라고 막연히 상상한다. 언젠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 시간이 올 것이라 믿기에, 그렇게 사는 것을 지금은 미룰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를 소홀히 하는 것일 뿐이다.
'언젠가'라는 시기는 절대 오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현재를 사는 존재다. 미니멀리스트는 그 사실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미니멀리즘의 실천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기 위해 자신과 주변을 정리하는 것, 자신을 돌아보는 진지한 정리, 그것이 미니멀리즘이다. 미니멀리즘을 통해 우리는 소중한 것을 발견하고, 참된 삶을 살 동기를 얻는다.
"나는 물건을 줄이고 나서 소중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가족과 친구뿐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이나 재능 있는 사람만이 아니다. 의견이 맞는 사람도, 맞지 않는 사람도 모두 소중하다.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의 목적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야말로 나의 목적이다." (269쪽)
일년에 이틀, 6월 30일과 12월 31일을 버리는 날로 정해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고 나서, 곧바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버리는 행동을 하는 데까지 몇 개월이나 걸렸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 아니고 단순히 미룬 것이다. 실제로 주말에 이틀 씩 3주간에 걸쳐 버리기를 실천하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로는 나흘 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작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걸 사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기는 물건이라면 사지 마라. 그런 고민이 든다는 사실이야말로 그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증거다. 쓸데없는 고민에 시간마저 낭비할 뿐이다. "고민된다면 사지 않는다." 이것을 신속한 의사 결정의 규칙으로 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