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장관이 사퇴하자마자,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무산시키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조국 장관이 사퇴한 14일 오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김성원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현재의 공수처법은 문재인 정권의 집권 연장 시나리오일 뿐"이라며 "공수처법은 다음 국회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공수처 얘기를 없던 것으로 하자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이 점은 16일 열린 더불어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의 2+2+2 회동(원내대표+의원 1명)에서도 드러났다. 이 자리에서 한국당은 공수처 설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공수처를 반대하는 보수 야당들은, 공수처로 인해 대통령 권력이 비대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공수처가 '청와대 직속 공안검찰'이나 '청와대 보위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경찰과 검찰이 수사권을 보유한 상태에서 공수처마저 이를 갖게 되면 옥상옥의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공수처 반대 이유 살펴보니...
하지만 공수처가 대통령 권력을 비대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검찰총장 임명 방식과 공수처장 임명 방식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현행 검찰청법 제34조는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검찰총장을 임명할 때에는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제34조의2 제1항은 "법무부장관이 제청할 검찰총장 후보자의 추천을 위하여 법무부에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둔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법무부장관이 추천위원회의 의견을 꼭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34조의2 제7항은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 후보자를 제청하는 경우에는 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한다"고 했다. 존중하라고 했지, 준수하라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행 검찰청법 하에서 대통령은 법무부장관의 제청만 받으면 검찰총장을 임명할 수 있다.
한편, 지난 4월 29일 백혜련 민주당 의원의 대표 발의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려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공수처법안)' 제5조 제1항은 공수처장 임명 방식에 관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추천위원회가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지명한 후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고 규정했다.
검찰청법 제34조의2 제7항에 언급된 '추천'과 달리, 공수처법안 제5조 제1항의 '추천'은 법적 구속력을 띠고 있다. 이 '추천'은 존중하는 것으로 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다.
향후 공수처법이 어떻게 변형될지 지금으로서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 상황을 기준으로 할 때 공수처장 임명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은 검찰총장 임명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보다 낮다고 할 수 있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장관의 제청을 받아 임명할 수 있지만, 공수처장은 대통령이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야 임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법안 제6조에 따르면, 추천위원회는 국회의장에 의해 임명되거나 위촉된다. 그리고 7인의 추천위원 속에는 법무부장관·법원행정처장·대한변호사협회장과 더불어 여야 정당이 2인씩 추천한 4인이 포함된다. 추천위원 7인 중에서 '대통령 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법무부장관과 여당 추천 2인 밖에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기편을 공수처장으로 만드는 일이 자기편을 검찰총장으로 만드는 일보다 힘들다고 할 수 있다.
공수처가 옥상옥 같은 비효율성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타당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경찰·검찰이 있는데 뭐하러 공수처를 추가 설치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안을 따져보면 지금 상황에서 공수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판단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나의 권한은 가급적 하나의 기관에 집중되는 게 바람직하다. 그것이 효율성 원리에 부합한다. 하지만 그 권한이 지나치게 막강한 것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런 경우에는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 지나치게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관이 독재기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치를 절실히 느낀 나라가 있다. 바로 조선왕조다. 수사권 같은 막강한 권한은 한두 기관이 아니라 여러 기관에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 조선왕조 법률가들의 정신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경찰·검찰이 수사권을 사실상 독과점하고 있다. 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고용노동부도 유사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검·경 두 곳이 대표적인 수사기관이다.
이에 반해, 조선시대에는 훨씬 다양한 기관에 수사권이 나뉘어져 있었다. 경찰청에 해당하는 포도청과 검찰청에 해당하는 사헌부는 물론이고 승정원·형조·의금부·한성부·관찰사·군수·장예원·종부시·비변사도 수사권을 행사했다.
다양한 기관에 수사권 나눠져 있던 조선시대, 왜?
이 중에서 공수처 기능을 하는 곳은 사헌부와 의금부였다. 법전인 <경국대전> 이전(吏典) 편은 사헌부의 권한과 관련해 "모든 관리를 규찰하며"라고 했다. 의금부와 관련해서는 "임금의 지시를 받아 죄인을 신문"한다고 규정했다. 의금부는 왕명으로 입건되는 범죄를 다뤘다. 왕명으로 입건되는 죄인들은 거의 다 고위공직자이거나 왕족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사헌부와 의금부는 공수처와 유사한 기관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군주보다 양반 집단이나 지주계급의 입김이 더 강했다. 국가정책이 왕실의 이익보다는 양반·지주층의 이익을 위해 결정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그래서 '왕권보다 신권(臣權)이 강했다'고들 말한다.
이처럼 국가기관이 왕실보다는 양반·지주의 이익을 위해 좀더 많이 작동하는 구조 속에서, 수사권 분산은 양반·지주층의 힘을 분산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하나의 수사기관에 집중될 양반·지주들의 힘을 여러 기관으로 분산시키는 기능을 했던 것이다. 이는 취약한 왕권을 어느 정도 뒷받침하는 기능을 했다.
공수처 역할을 수행한 두 기관도 마찬가지였다. 사헌부는 양반·지주의 입장에서, 의금부는 임금의 입장에서 고위 공직자들을 수사했다. 일반 수사권뿐만 아니라 고위 공직자 수사권도 분할돼 있었던 것이다.
이 덕분에 조선시대에는 대한민국 시대의 검찰청 같은 거대 괴물이 출현하지 못했다. 어느 수사기관도 대한민국 시대의 경찰청·검찰청만한 권력을 갖지 못했다. 수사권 분산으로 인해 효율성은 떨어졌을지라도, 권력기관 견제라는 효과만큼은 상당 정도로 달성됐던 것이다. 수사권을 여러 기관에 분산시키면 옥상옥의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주장은 이처럼 역사적 선례와 충돌한다.
이렇게 수사권을 분산시켰는데도 왕권은 신권보다 항상 약했다. 당쟁을 공식 금지시킬 정도로 비교적 강력한 왕권을 자랑했던 영조도 진보적인 자기 아들, 사도세자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는 보수파의 압력에 밀려 자기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여야 했다. 수사권을 분산시켜 기득권층을 견제했는데도, 왕권을 제자리에 올려놓지 못했던 것이다. 공수처가 청와대 보위부, 청와대 직속 공안검찰이 되리라는 보수진영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검찰개혁의 결과로 수사권이 경찰 쪽으로 대거 이동하게 되면, 나중에는 검찰 수사권보다 경찰 수사권이 더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금 미리 공수처를 설치해둔다면, 경찰 쪽으로 과도하게 힘이 실릴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방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게 된다. 공수처는 청와대를 비대화시키거나 비효율을 초래하기보다는 권력기관 견제를 위해 유용한 역할을 수행할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