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던 깊은 고민이 있다면, 이곳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지난해 충북 옥천군 이원면의 정겨운 이야기를 담아, 마을 사람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선물했던 팟캐스트 <옥천마을미디어 OK 라디오>가 이번엔 <OK 라디오 시즌2 안남면 7학년 8반>(이하 <안남면 7학년 8반>)으로 돌아왔다.
팟캐스트의 주인공은 17년의 역사를 품은 안남어머니학교 어머니 학생들. 지난번 이원면 팟캐스트에서 진행을 맡았던 '귤PD' 이상윤씨가 이번에도 진행을 맡아 어머니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안남면 7학년 8반>은 요즘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것들을 어머니학교 학생과 함께 도전해보는 '할머니와 함께 춤을', 젊은 세대의 고민을 할머니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해결해주는 '할머니 고민 상담소',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는 내 삶의 기록실 '은빛 자서전' 등으로 꾸며진다.
10월 23일 배바우도농교류센터에서 녹음이 진행된 <안남면 7학년 8반> 1화에서는 안남면 청정리에 거주하는 어머니학교 학생 이갑순, 박별준씨가 출연해 그 활기찬 시작을 알렸다.
한편 '안남면 7학년 8반'은 한국문화원연합회에서 지원하고 옥천문화원에서 주관하는 2020 어르신 문화프로그램 어르신& 협력프로젝트 '내 삶도 역사의 한 조각'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월간 옥이네 11월호에서는 <안남면 7학년 8반> 속 작은 꼭지 '할머니 고민 상담소'의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이외에도 이갑순, 박별준 할머니의 '최애 트로트 가수'를 찾는 이상형 월드컵 여정과 요즘의 고민이 담긴 인생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OK 라디오 1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할머니 고민 상담소' 시간을 통해 소개된 고민은
'할머니 고민 상담소' 오픈카톡방(https://open.kakao.com/o/sHhih8Cc)을 통해 미리 받아 준비했다. 인생 선배 할머니의 명쾌한 답이 필요한 이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오픈카톡방의 문을 두드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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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방송 듣기(http://www.podbbang.com/ch/1772812)
라디오 참가자를 소개합니다
이갑순 할머니(85, 안남면 청정리) : "남편하구 둘이 사니까 행복해. 근데 여적 같이 잘 살었는디 요즘 자주 아프다구 해서 그게 고민이여요."
군서면 동평리 골말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린 시절에는 숨바꼭질과 먹자 치기를 좋아했다. 6.25 당시 피난꾼을 돌보기도 했지만, 전쟁으로 큰 오빠와 동생을 잃었다. 21살에 늠름한 남편과 결혼해, 안남면 청정리로 이주했고 우애 좋은 오남매를 낳았다. 17년 전부터 안남 어머니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소풍, 시 쓰기, 그림 등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즐겁다.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로 외워야만 했던 '히라가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박별준 할머니(74, 안남면 청정리) : "사는 건 빨래하고 밥 먹고 청소하고 목욕하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지. 요즘 내 고민은 울 아들이 둘씩이나 여즉 결혼을 안했다는 거여."
안내면 도율리 밤티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8남매 중 아들에게만 공부를 가르치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야학에 갔지만 수줍음이 많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25세 늦은 나이 자상한 남편과 결혼해, 담배 농사를 지으며 4남매를 착실하게 가르쳤다. '가나다'도 모르는 삶이 여러모로 불편해 안남 어머니학교를 찾았다.
[첫 번째 사연] "안 씻는 여자친구 때문에 고민이에요"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평범한 남성입니다. 제 고민은 여자친구가 잘 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생 관념이 있는지 의심스러워요. 우선, 제 여자친구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여자친구는 손과 발은 깨끗이 잘 씻습니다. 세수도 잘하고 샤워도 잘합니다. 하지만, 치아 위생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 양치질을 아침에만 하고 자기 전에는 절대 양치를 하지 않습니다. 저랑 만나고 난 이후에도 치아치료에만 300만 원을 넘게 썼는데, 양치질하자고 하면 싫다고 난리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머리입니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 머리를 감는 것 같아요. 문제는 제 여자친구가 제가 머리를 만져주는 걸 좋아한다는 것인데요. 이틀 정도 감지 않는 날엔 큰 문제가 없지만 삼일, 사일, 오일 정도가 지나면 그건 좀 힘들더라고요. 결혼까지 생각하는 여자친구인데 걱정입니다. 씻지 않는 여자친구.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박별준 할머니(아래 박 할머니) : "이야, 그것 참 고민이네. 안 씻는 거 큰 고역인데. 우리 아저씨도 옛날에 잘 안 씻었거든. 지금은 계시지도 않지만, 그 옛날에 징그럽게 안 씻었어. 어이구. 진저리가 나. 안 씻는 사람은 절대 안 씻어."
이갑순 할머니(아래 이 할머니) : "우리 남편은 잘 씻어."
박 할머니 : "나는 남편이 세수할 때 머리에다 물을 퍼부었어. 좀 씻으라구."
이 할머니 : "우리 남편은 잘 씻어."
- 결혼 생각도 할 정도로 좋아한다는데 어떡하죠? (귤PD)
박 할머니 : "어이구. 그런 사람이랑 결혼해서 속 끓일 일 있어? 그만 만나야지. 좋긴 뭐가 좋아. 안 씻으면 안 돼. 발이고 뭐고 깨깟하게 씻쳐야지. 안 그러면 냄새나잖아. 냄새나면 어떻게 살어. 지금덜은 다 깨깟하게 살잖아. 근데 그런 사람이랑 결혼을 하면 살림이 돼? 좀 깨끗해야 살림이 되지. 둘 중 한 명이라두 깨깟해야지. 둘 다 그렇게 살면 그게 뭐야? 질력 나구 속 터지지. 그런 사람이랑 결혼해서 속끓이기 전에 지금 헤어져유."
- 이갑순 할머니는 어떠세요? (귤PD)
이 할머니 : "우리 며느리는 잘 씻어."
[두 번째 사연] "사는 게 뭘까요"
안녕하세요. 저보다 오래 산 연장자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사연을 보냅니다. 사는 건 무엇일까요? 요즘 한창 이런 고민에 빠져 지냅니다. 평소에는 회사 일이며 집안일이며 바쁘게 지내지만 퇴근하는 길에 문득, 빨래를 널다 문득 이런 생각에 빠집니다. 감수성 넘치는 가을이라 이런 것일까요? 아님 마음속 멀리 미뤄뒀던 고민들이 불쑥 튀어나온 것일까요. 할머니, 사는 건 도대체 뭘까요?
박 할머니 : "사는 건 그냥 뭐 빨래하고, 청소하고 깨끗하게 하고 그런 거지. 때 되면 밥 먹고 왔다 갔다 하는 게 재미야. 고민해봤자 별거 있겠어?"
이 할머니 : "뭐라구 해야 할까. 요새 코로나도 그렇고 직장생활도 어려우니까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거겠지? 다들 걱정이 되겠지. 우리 아들, 딸두 전화해서루 힘들다구 해. 회사생활도 그렇구, 듣다 보니 참 안됐더라구. 부모는 자식 일이라면 다 걱정되기 마련이잖아. 근데 요즘엔 내가 다그칠 수도 없어. 지금은 세상이 그때랑 많이 바뀌었잖어. 근데 그래도 어뜩햐? 일을 해야지. 일을 해야지 살지. 먹고 살려면 어떡햐."
- 그럼 어떻게 사는 게 재미있게 사는 걸까요? (귤PD)
박 할머니 : "왔다 갔다 하는 거. 기냥 아침에 움직이구 운동 하구. 해지면 청소나 깨끗허게 하구 몸 씻구. 시간 나면 텔레비전도 보구. 사는 게 그런 거지 뭐."
이 할머니 : "재밌게 사는 건 건강하게 사는 거지."
월간 옥이네 2020년 11월호(통권 41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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