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배경에 빨간 글씨, 마당을 드리운 만국기, 뜰 앞을 가득 채운 각종 골동품. 충북 옥천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길, 4번 국도를 지날 때면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낮 12시면 활기가 돈다는 '미래경매장'. 이곳에 모이는 물건과 사람 그리고 이야기가 궁금하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네요. 미래경매장이 3주년을 맞았답니다."
마이크를 찬 경매사가 손님 앞에 서서 반갑게 인사한다. 이곳을 운영하는 부부는 그의 말에 "3주년을 맞아 뒤쪽에 떡을 준비했으니 마음껏 드시라"고 덧붙이며 웃는다. 편안한 분위기 속, 경매장을 찾은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는다.
경매장 실내 매장 옆 비닐하우스 모양으로 만든 그늘막 아래에서 경매가 이루어진다. 실내인 듯 야외 같고 열과 행을 맞춘 듯하지만 어쩐지 삐뚤빼뚤한 의자까지, 정겨운 느낌이다.
"만 원, 만 원부터 시작합니다."
경매 시작가는 대부분 만 원에서 삼만 원 정도. 도자기, 병풍, 수석, 낡은 악기같은 골동품에서부터 엔틱 가구와 장식품, 가전제품, 생활용품까지 나오는 물건은 다양하다. 이곳을 찾은 한 손님의 말에 따르면 "사람 빼고 다 나온다"고.
상인들이 각종 물건을 가져오면 경매사가 이를 손님들에게 선보이는 방식이다. '경매'하면 으레 경매 망치와 현란한 손동작을 떠올리지만, 이곳과는 거리가 있다. 관심 있는 물건이 나오면 손님은 단순히 손을 들고 가격을 외치기만 하면 된다. 치열한 느낌보다는 '외치면 임자'라는 느낌이 강하다.
미래경매장을 찾는 이유
이곳을 찾는 사람들 역시 큰 욕심을 품지 않는다. 엔틱 제품을 주로 유통하는 민지(56, 가명)씨는 "큰 이익을 얻을 생각은 없다"면서 "이곳에 오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에게 미래경매장은 '만남의 장'이자 놀이터 같은 공간이다. 2년 남짓 이곳에 나오면서 깨달은 것도 있다. "세상에는 버릴 것이 없다"는 점이다.
"저에게는 큰 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건이더라고요. 그동안 물건을 막 사용하고 버렸던 걸 반성하기도 해요. 다 소중한 물건이라는 걸 깨닫게 돼죠."
낚시대와 텔레비전, 장식품 등을 가지고 나온 A(56)씨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생동감이 좋다. 가끔은 오늘처럼 물건을 가지고 나와 판매해 용돈을 벌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매하기도 한다. 그는 미래경매장이 최근 인기가 있는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과 많이 닮은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당근마켓은 스마트폰이 생기고 난 뒤에 생긴 것이지만, 이곳과 유사한 점이 많죠. 당근마켓처럼 이것저것 사고팔고 해요. 다만 이곳이 더 생동감 넘치지요."
김형식(76)씨는 취미로 한 점씩 모으던 장식품을,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사람에게 내놓아봐야겠다는 생각에 경매장을 찾았다. 물건이 임자를 만날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매번 새로운 물건이 나오니,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치매 예방할 겸, 구경삼아 나와요. 경매 날이 되면 오늘은 또 어떤 물건이 나올까, 궁금해서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물건을 가져올 때도 있지만 또 내가 마음에 드는 거 사갈 때도 있지. 허허."
낮 12시에 시작된 경매는 보통 오후 7시 전후까지 계속된다. 그사이 손님과 상인은 몇 차례 바뀌고, 손님 혹은 물건이 별로 오지 않는 날에는 경매장이 열리지 않거나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끝나기도 한다.
골동품만 나오는 게 아니라오
골동품, 엔틱 장식품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법한 물건들도 경매대에 오른다. 이들은 시중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낙찰되는 편. 생활용품만을 따로 유통해오는 상인도 있다.
충북 보은에서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은 박병덕(65)씨는 이날 조그마한 커피콩 분쇄기를 만 원에 낙찰받고 즐거운 웃음을 지었다. 집에 두고 직접 사용할 생각이라고. 32인치 텔레비전 역시 4만5천 원에, 여름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놓은 대자리는 2만 원에 낙찰돼 제 주인을 찾았다. 보기만 해도 화사해지는 유리그릇 세트 역시 2만 원에 낙찰됐다.
유리그릇 세트의 새 주인이 된 김채영(53)씨는 "싼 가격에 좋은 물건을 구했다"며 기쁜 표정이었다. 그는 "예상 밖의 물건들이 종종 나와서, 시간 여유가 날 때면 이렇게 찾아오는 편이다. 오늘도 근처에서 농사짓다가 왔다"면서 장화 신은 발을 가리켰다.
이곳의 물건은 도매상인이 유통하는 것에서부터 개인이 이사나 이민으로 내놓은 것, 단체에서 기증한 것까지 다양하다. 미래경매장 마당 앞에 놓인 '거북선'은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 때에 유람선으로 사용되던 것이라 하니, 이곳에 오기까지의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미래경매장 사람들
경매장을 운영하는 조성근(71)‧김하윤(67)씨 부부는 본래 제주도에서 20년 넘도록 가구 공장을 해왔다. 결혼 후 고향인 보은을 떠나 도착한 제주도였다. 당시만 해도 제주도에는 가구 공장이 없어 가구를 육지에서 들여오는 형편이었다고.
그렇게 제주도에서 가구에 대한 안목을 길러오던 중, 고향이 그리워졌다. 이들은 고향 땅 가까운 대전, 옥천 등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 지금의 미래경매장을 열었다. 고가구와 골동품 보기를 좋아하던 조성근씨였기에 그는 지금 경매장을 운영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고된 일도 있지요. 하지만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옛 물건들 보고, 여기서 하는 모든 일이 즐거워요."
경매사 신장교(65)씨는 2년 전쯤, 미래경매장에 손님으로 왔던 것이 인연이 됐다. 조성근씨가 직접 경매를 진행하던 것을 보면서, 직접 경매를 이끌어보고픈 마음이 들었다고. 조성근씨가 흔쾌히 자리를 내어주어 그는 지금껏 경매사로 일하고 있다.
"경매를 진행할 때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거든요. 요령이 있느냐고? 어떤 물건인지, 상태는 어떤지 설명을 잘 해주어야 하지. 또 약간의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필요해요. 사고싶은 마음이 들게끔."
물론 그의 마음만큼 항상 물건이 잘 낙찰되는 것은 아니지만, 손님들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이 그는 더없이 좋다. 오늘은 어떤 물건이 나올까, 그 역시 손님만큼이나 매일매일이 기대된다.
누군가에게는 놀이터이자 만남의 장, 어떤 이에게는 삶의 터전인 미래경매장은 오늘도 푸근한 미소로 무엇이든, 누구든 상관없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낡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사소한 물건처럼 보여도, 평범해도, 값이 많이 나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이다. 경매대에 오르면 그 물건은 어딘가 특별한 것이 된다.
특별해지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매 순간을 예측할 수 없기에 평소대로라면 무료했을 시간도 이곳에서는 특별해진다. '미래'가 기대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어쩌면, 미래를 기대하는 그 설렘이 그리워서가 아닐까.
이곳을 나선 뒤에도,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루하루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도 매한가지니까.
월간옥이네 통권 47호(2021년 5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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