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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나경희씨
충북 옥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나경희씨 ⓒ 월간 옥이네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족 형태는 핵가족화됐다. 독거노인이 늘어가는 와중에 기술의 발전은 점점 가속화되고, 이전과 전혀 다른 디지털 시대가 끝없이 펼쳐지면서 노인은 소외감을 느끼기 일쑤다. 세대 간 접촉이 없는 동안 쌓여버린 단단한 벽은 허물 수도, 뛰어넘을 수도 없을 만큼 높아져버렸다. 소통의 벽이 낳은 서로간의 오해와 편차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순환을 반복한다.

이번 <월간 옥이네>에서는 이런 세대 격차를 타파하려는 움직임을 만났다.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가 어린이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어린이의 삶에 따스한 추억을 남겨 주는 하나의 기억이다. 이야기할머니의 이야기를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담았다.

"할머니, 그런데 나무꾼이 진짜로 감동 받았어요?"

만 4세 반에서 수업을 마친 이야기할머니를 쫓아오며 한 어린이가 이렇게 묻는다. 반짝반짝 빛나는 순수한 눈은 아직도 이야기에 푹 빠진 것 같다. 오늘의 이야기할머니 나경희씨는 다음 수업으로 재촉하던 발걸음을 돌려 친절히 답한다.

"그럼~ 나무꾼이 진짜 감동해서 어머니 무덤 옆에 호랑이를 묻어줬지~."

나경희씨는 현재 충북 옥천의 유일한 '이야기할머니'다. 2019년 인천에서 옥천군 청산면으로 귀촌한 그는 도시 생활을 마무리하고 농촌에서 삶터를 가꾸며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이야기할머니를 알게 됐고, 고민 없이 곧바로 지원서를 제출했다.

"어렸을 적 어머니께 들었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해요. 에밀레종 이야기요. 종을 만들기 위해 아기를 함께 넣었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무섭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도 봤고, 자녀에게 전해주기도 해 봤으니 그런 경험으로 다른 어린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어린이들이 두고두고 나의 이야기를 기억해준다는 그런 생각에 보람을 느끼기도 해요."

5~8분 이야기 완벽 암기... 어렵지만 즐거운 일

이야기할머니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서류와 면접을 통과한 후에도 1년의 교육 기간을 거쳐야 하기 때문.

전국의 모든 합격자가 경북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박3일 합숙하며 이야기할머니로서의 기본 소양과 자원봉사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잡는 신규교육을 받는다. 이어 6개월간 월 1회 권역별 교육장에서 유아교육과 이야기 구연에 관한 교육인 월례교육까지, 긴 시간을 투자해야 비로소 이야기할머니가 될 수 있다.

1년의 교육과정을 마친 후에도 이야기 구연을 시연하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활동 자격이 부여된다. 길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비로소 한국국학진흥원 소속 이야기할머니로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활동 중에도 매년 시험을 통해 구연 능력을 다진다. 이런 과정 덕분에 이야기할머니의 이야기는 막힘이 없다.

"'무릎에서 듣던 할머니의 이야기'라는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그림이나 교구 같은 도구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아요. 대신 실감 나게 전달하기 위해 목소리나 표정의 변화를 많이 이용하고 연구해야 하죠.

교육을 받을 때 한국국학진흥원 사업단으로부터 조언을 얻기도 하고, 활동 중에는 한 번씩 비밀리에 관리 감독을 나오기도 해요. 우리끼리는 '암행어사 떴다'라고 하는데(웃음), 영상도 촬영하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세세하게 알려주고 개선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해주니까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충북 옥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나경희씨
충북 옥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나경희씨 ⓒ 월간 옥이네

이야기할머니의 이야기는 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할머니 사업단에서 지정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연간활동계획'에 따라 일주일마다 바뀐다. 그에 따라 매주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해야 하는 셈. 연습을 넘어 5~7분 분량의 이야기를 모두 암기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경희씨는 암기를 포함한 일련의 준비 과정이 삶에 활력이 된다고 말한다. "수업을 준비하고, 옷을 차려입고, 거울이라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에서 이야기할머니 활동은 단순히 일자리를 넘어 나를 돌보고 가꾸는 기분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래서 치매는 안 걸릴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나경희씨는 일주일에 세 번, 세 곳의 어린이집(군립향수어린이집, 광진어린이집, 청산어린이집)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활동 첫해인 지난해에는 청산면에 거주하는 그의 상황에 맞춰 가까운 영동군으로 파견을 가기도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 그래서 '스릴 있다'

나경희씨를 만난 4월 13일은 군립향수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을 만나는 날. 만 5세를 시작으로 4세와 3세까지 한 회당 20분, 세 번을 연달아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살 차이에도 수업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상대적으로 자리를 잘 지키며 대답도 잘하는 어린이부터, 돌아다니거나 바닥에 눕는 어린이까지, "가만히 있으면 아이가 아니"라고 하는 경희씨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이야기에 몰두한다. '엄마'로서의 경험과 이야기할머니 교육 덕분에 집중력을 잃은 어린이들을 다시 집중하게 만드는 노하우가 그 역할을 톡톡히 발한다.

"성인도 몇십 분 가만히 앉아 있으려면 힘든데, 아이들은 어떻겠어요. 아이들은 떠들어야 건강한 거거든요. 아프면 말이 없어요. 그렇게 알고 생각하니 아이들이 떠들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져도 '너희들이 건강하구나' 싶더라고요. 또 질문에 대답하는 걸 보면 안 듣는 것 같아도 다 듣고 있고요."

그러면서도 집중해 듣는 어린이를 위해 조용히 하자는 주문이나 말소리를 크고 작게 조절하며 이목을 끄는 요령을 보이기도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이의 특성은 경희씨를 더 '스릴 있게' 만든다.

"종종 예상과 다른 대답을 하기도 하니 '이 질문에는 어떤 답이 나올까?'를 생각하면 긴장되기도, 기대되기도 해요. 이런 기분은 저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들죠."

이야기를 준비하고 전할 때의 힘듦은 이야기가 끝난 뒤 문을 나설 때 눈 녹듯 사라진다. 첫 만남에서는 어색했던 공기도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가지 마세요!" 같은 인사도, 쫄래쫄래 따라 나와 못다 한 마음을 전하는 어린이의 말도 모두 경희씨에게는 선물이 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또 정기적으로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이 그 자체로 기쁨이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러 왔지만, 제가 오히려 기운을 받아서 가요."

지역에 함께 활동하면서 고민을 나눌 동료의 부재가 아쉽다는 경희씨는 이야기할머니에 대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관심이 있다면 두려워 말고 도전할 것을 격려했다.

"일단 도전하세요! 어려운 점은 함께 풀어갈 수 있으니!"

지금도 전국 3천1백여 명 이야기할머니의 보따리에서 "옛날 옛적에~" 소리가 어린이 가슴 깊이 물감처럼 번져간다.
  
 충북 옥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나경희씨
충북 옥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나경희씨 ⓒ 월간 옥이네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란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는 한국국학진흥원이 운영하는 사업으로, 2009년 1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5664명의 이야기할머니를 양성했다. 할머니의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에게는 전통문화 계승을, 노인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해 세대 간 소통을 증진하고 공동체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미를 가졌다.

올해 충청북도에서는 4억4258만 원(국비 3억980만6천 원, 도비 1억3277만4천 원)의 예산을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활동비로 책정했다.

매년 초 홈페이지(storymama.kr)를 통해 선발을 공고한다. 지원 당시 만 56세부터 만 74세 사이의 여성이 지원할 수 있다.
  
월간옥이네 통권 47호(2021년 5월호)
글·사진 소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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