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내리쬐는 하늘 아래, 시원한 물에 첨벙 뛰어들고픈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계절. 여름의 한 가운데에 들어설수록 바빠지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어쩌면 이미 그들과 얼굴을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식당에서, 가게에서 혹은 학교에서 만나봤을 수도 있는 친숙한 얼굴들. 전화 한 통, 알림 하나에 이들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청호가 가까운 충북 옥천군 군북면 방아실, 이곳에 대청호수난구조대(대장 김태원) 본부가 있다. 보트 관련업을 해오던 김태원 대장이 대청호에서 수난사고를 많이 접하면서, 7년 전 동호회 개념으로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은 것에서 시작했다.
외부 지원 없이, 순전히 '사람을 살리고 환경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봉사하는 이들이다. 장비 구입과 조직 운영 역시, 생업을 병행하며 대원들이 마련한 회비로 해결한다. 지금껏 방아실, 동이면 적하리, 장계다리, 금강3교 등에서 익수자를 구조‧수색하며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또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올해 4월, 산불진화헬기가 청주시 문의면에 추락한 사고 현장에도 이들이 있었다. 대청호수난구조대는 꾸준한 활동 끝에 드디어 지난해 7월 10일, 소방청으로부터 정식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두려운 마음 있지만, 몸이 먼저 반응한다
지난 6월 수생식물학습원 인근, 두 살배기 여아와 아버지가 13미터 절벽 아래에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데크길에 있던 아이가 중심을 잃고 떨어진 것. 놀란 아버지가 아이를 구하겠다며 뒤를 이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버지는 딸을 찾아내 품에 안았지만, 발밑은 깊은 대청호 물이 넘실거렸다. 위태롭게 암석 위에 아이를 안고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구조대가 다가왔다.
"아버님, 걱정하지 마시고 아이 먼저 건네주세요."
아버지는 손을 벌벌 떨면서 구조대원에게 팔을 뻗었다. 악몽 같은 시간을 지나 배에 올라탄 부녀는 119구급대를 통해 병원으로 바로 이송됐다. 두 살배기 여아는 이곳저곳 심한 타박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언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기에, 대청호수난구조대는 긴장을 풀 수 없다.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긴급한 소식을 전해 듣거나 위급한 상황을 발견하면 곧장 현장으로 뛰어간다.
지난해 10월, 늦은 저녁에도 이들은 대전 동부경찰서로부터 50대 남성 실종 소식을 듣고 달려나갔다. 가족에게 자살 통보 후 사라진 남성이었다. 한시라도 급한 상황이었지만 어둠이 내린 산에서 누군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함께 나온 소방대원과 경찰관들이 수색을 포기하고 돌아가려던 찰나, 수난구조대 구조견이 짖었고 곧 주변에서 쓰러진 남성을 발견했다. 발견된 남성은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렇게 무사히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면, 그게 제일이죠. 그분들이 소중한 삶을 살아가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김태원 대장)
모든 구조 활동이 이렇게 해피엔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때로는 생사를 건넌 익수자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할 때도 있다. 김태원 대장은 무엇보다 자녀가 사망한 사고가 가장 마음 아프다고 말한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가족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면 아유... 마음이 너무 아프죠. 우리 가족 생각나고... 그럴 때마다 '더 빨리 구조해야 된다, 살려야 한다' 다짐해요." (김태원 대장)
인간이기에 두려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 테다. 김태원 대장은 특히 수중 구조활동이 가장 긴장되고 부담이 크다고 말한다.
"보통 대청호에서 익수자 수색을 하는데, 호수이기 때문에 강이나 바다보다 캄캄하고 시야 확보가 어려운 편이에요. 수심도 최대 50m 정도로 깊죠. 나도 그렇지만 그보다 대원들이 혹여나 작업하다가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 돼요. 2인 1조로 수색하고 무리하지 않게끔 하지만 안심은 되지 않죠." (김태원 대장)
물 속에서 익사자를 마주하는 충격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현장에 들어가기 전, 가족으로부터 구출하려는 이의 사진을 미리 확인하고 입수하는 등 나름의 노력은 있지만 이들이 감내해야 할 큰 고통 중 하나다.
"나 역시 가족이 있기에 현장에 갈 때마다 가족이 생각나요.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자녀들을 생각하며 들어갈 때마다 기도를 하죠. '사람을 살리러 들어가는 거니까,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김태원 대장)
두려움과 가족의 걱정이 있어도 김태원 대장이 계속해서 현장에 나가는 것은, 그보다 사고 소식에 몸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김태원 대장과 대청호수난구조대원들은 구조에 유용할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고 체력을 기르는 훈련을 해나간다.
현재 대원 중 14명이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를 취득했고 5명이 응급처치 교육을 이수했다. 이외에도 인명구조자격증, 스쿠버강사 자격증, 생존수영지도자 자격증, 드론국가자격증 등 다양한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49명의 대원 중 '특수구조단'은 10명(김태원 대장, 모환 부대장, 김홍식 홍보이사, 노희철 구조팀장, 김갑수 교육팀장, 박무성 감사, 이정심 이사, 김서현 이사, 양현모 대원, 정다빈 대원).
"충북에는 조종면허시험장이 충주 한 곳뿐이에요. 면허 따기까지 시험도 여러 번 봤죠. 힘들었지만 구조 활동할 때 제가 배를 조종할 수 있으면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김서현 이사)
김홍식 홍보이사와 설성환 사무국장은 수난사고에 더욱 발 빠르게 참여하기 위해 대전에서 구조대 본부가 있는 군북면 대촌리로 이주하기도 했다. 김홍식 홍보이사는 과거 복싱을 했던 이력을 살려 대원들의 체력 단련을 담당한다.
"위급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정신력과 체력이 중요합니다. 대원들이 자신과 주변 이들을 구할 수 있도록 기본 근력운동에서부터 산악 훈련, 유사상황을 가정한 인명 구조 훈련 등 여러 훈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홍식 홍보이사)
환경정화에 농번기 일손돕기까지... 봉사의 동력은 '사람'
대청호수난구조대는 대청호 환경 정화, 농번기 일손돕기와 같은 봉사에도 빠지지 않는다. 올해 6월부터는 매주 목요일, 대청호 녹조현상 및 수질오염을 예방하기 위해 비에 떠밀려 온 쓰레기, 벌목된 목재 등을 수거하는 활동에 나서고 있다.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흘러내릴 만큼 무더웠던 7월 15일에도 이들은 어김없이 봉사 현장에 나와 있었다(김태원, 김홍식, 김서현, 설성환, 이정심, 이광열, 구천희, 노희철, 노원희, 이지현, 깜대원 참여).
대청호 환경봉사는 보통 오전 9시부터 12시,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이어진다. 대청호 수위가 낮았던 15일은 수거물을 실을 화물선(철판과 스티로폼을 이용해 만든 일명 '바지선')이 진흙에 엉겨붙어 있어, 물 위에 띄우기까지 애를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8명의 수난구조대원과 군북면 부녀회 정혜옥 부회장, 이선자 총무는 보트에 올라탔다.
"손잡이 꽉 붙잡으세요! 잘못하면 머리 깨지고 뼈 부러집니다!"
안전을 강조하는 김태원 대장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배는 출발했고 이들은 곧 대청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홍수에 쓸려온 쓰레기는 이미 수거된 상태라 생각보다 많지 않았지만, 벌목된 나무가 대청호와 가까운 육지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대원들은 몸집만한 나무를 번쩍번쩍 들어 올려 '바지선'에 옮겨 실었다. 너무 큰 나무는 전기톱으로 잘게 잘라 운반했다.
"제거하는 쓰레기의 80%가 나무고 나머지 20%가 생활쓰레기예요. 이렇게 나무를 수거하지 않으면 외관상 보기에 좋지 않고, 비가 올 때 물밑으로 가라앉아 녹조의 원인이 됩니다. 그 전에 치워주는 거죠. 수거한 쓰레기와 목재는 수자원공사에서 정기적으로 수거해가고 있습니다." (김태원 대장)
황명희 대원은 이날 처음 외부 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우연히 수난구조대의 환경봉사를 접하고 감명을 받아 함께하게 됐다.
"대청호는 우리 아이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마실 물이잖아요. 그런 대청호에 물 위에 밟고 서도 될 만큼 많은 쓰레기가 가득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걸 손수 청소하는 단체가 있다는 거에 감명을 받았고요. 함께 하고픈 마음에 들어왔어요." (황명희 대원)
그는 예상보다 강도 높은 봉사에 지친 기색이었다.
"오늘 날이 더워서 그런지 생각보다 힘드네요."
"그러게, 처음부터 너무 열심히 하더라. 쉬엄쉬엄 해야 해."
중간중간 수분과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힘든 중에도 대원들은 서로를 챙기며 활동에 임했다. 김서현 이사는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커다란 요인으로 '사람'을 꼽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지인이 구조대원으로 있는 걸 보면서 의미 있는 일이겠다 싶어 들어온 거죠. 몇 번 활동을 같이하다 보니 이제 대원들이 가족 같아요. 처음엔 위험하다며 반대하던 가족도 활동 나가면서 제 표정이 달라졌다며 남편이 먼저 '오늘은 방아실 안 가느냐'고 묻고 때론 함께 활동에 참여할 정도로 지금은 반응이 달라졌죠." (김서현 이사)
김서현 이사는 올해 2월, 수난구조대 봉사활동을 마치고 일터로 향하던 중 버스와 추돌하는 큰 사고를 당한 일이 있었다. 3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해야 할 만큼 심한 부상이었다. 대원들은 병원에 찾아와 누구보다도 자기 일처럼 걱정하며 그의 회복을 기도했다. 김서현 이사는 "정말 죽을 뻔했지만, 다행히 이렇게 나와 사진을 찍고 있다"며 웃었다.
활동을 마무리할 무렵, 바지선에는 비버가 거대한 집을 지은 것처럼 5-6톤 가량의 목재와 생활쓰레기가 쌓였다. 지저분했던 대청호 곳곳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깨끗하게 정돈됐다.
"오늘은 그래도 양이 적은 편이네요. 활동을 마칠 때면 우리가 마실 물을 깨끗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에 늘 보람을 느껴요." (이광열 감사)
"언제라도 달려가겠습니다"
땀을 흘리는 대원들을 바라보는 김태원 대장의 마음은 언제나 복잡하다. 함께 해주어 고마운 동시에 더 좋은 환경에서 활동하게끔 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미안하다.
"봉사를 떠나서 위험한 일을 많이 접하는 게 구조대원인데, 각자의 삶을 살면서도 긴급한 사고가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 뭉클하고 고맙죠. 군대로 말하자면 전우 같고 또 가족 같은 사람들이에요. 대장으로서 좀 여유가 되면 대원들 맛있는 것이라도 마음껏 사주고픈데 그러지 못하니까 미안한 마음이죠. 따로 예산이 있는 게 아니기에 대원들이 사비로 낸 회비를 모아서 기름값, 구조장비를 다 마련하는 형편이니까."
그는 대청호에 구조대가 바로 출동할 수 있도록, 배를 정박할 수 있는 계류장을 마련하고픈 소망이 있다. 지금은 본부에서 배를 직접 가져와야 하기에 출동까지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이다. 상황과 관계없이 김태원 대장의 꿈만큼은 찬란하다. 그는 옥천, 충청북도,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서 으뜸가는 구조대를 만들겠다는 꿈을 꾼다.
"주 무대는 방아실~안터마을이지만 저희는 전국 어디라도 달려갈 준비가 돼 있어요."
여름은 그에게 '겨울에 찌운 살을 빼는 계절'일 만큼 바쁜 시기다. 그는 물놀이를 하러 대청호를 찾는 이들에게 안전에 유의할 것을 당부한다.
"주말이면 많은 물놀이객이 대청호를 찾으세요. 가까운 방아실이나 동이면 쪽에도 많이 몰리죠. 그만큼 수난사고도 많아요. 동력 보트 운전이 미숙해서 배끼리 혹은 사람과 추돌하는 사고도 많고, 엔진 고장으로 곤란을 겪는 일도 흔해요. 구명조끼 미착용으로 익수사고도 종종 발생하고요.
레저를 즐기는 것은 좋지만 사고가 생기면 돌이킬 수 없으니, 무리하지 마시고 안전 수칙을 꼭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혹여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043-731-0119, 이 번호를 잊지 마세요. 언제라도 달려가겠습니다."
월간옥이네 통권 50(2021년 8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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