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한 몸매에 북실북실한 털이 빽빽한 뒤영벌(꿀벌과의 여러 벌을 총칭하며 호박벌, 뒤영벌, 꽃벌, 떡벌, 줄벌 등이 있음) 종류는 성격이 순한 녀석들이다. 꽃이 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사람이 다가서거나 다른 벌이 방해를 하더라도 그저 자리를 피할 뿐이다. 그러나 자기들끼리의 생존경쟁은 치열하기 그지없다. 인간사에 발생하는 모든 범죄가 난무한다. 남의 집에 들어가 여왕벌을 죽이고 일벌들을 노예로 삼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곤충은 변온동물이라 온도가 너무 몰라가거나 서늘해지면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무더운 한여름에는 여름잠(aestivation)을 자고 추운 겨울에는 동면에 들어간다. 버몬트 대학의 생물학 교수이자 문필가인 베른트 하인리히(Bernd Heinrich)는 뒤영벌이나 박각시, 잠자리처럼 제법 큰 곤충을 대상으로 체온을 측정했다.
그 결과 덩치가 있고 빠르게 날갯짓을 하는 곤충은 냉혈동물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놀랍게도 비행 중인 뒤영벌의 체온은 약 35도로 주변 공기 온도를 훌쩍 뛰어넘는다. 자기 체온보다 무려 30도 낮은 환경에서도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데 그 비결은 몸속에서 열을 생산하고 잘 보존하기 때문이다.
곤충의 날개와 다리는 가슴에 연결되어 있으며 뒤영벌은 초당 200회 정도의 초고속 날갯짓을 하므로 순식간에 몸이 더워진다. 하지만 가슴과 배는 아주 가느다란 허리로 연결되어 있고 배 앞쪽에는 공기 주머니가 있어 가슴의 열이 배로 잘 전도되지 않는다.
하인리히는 비행 중인 뒤영벌의 배 온도가 가슴에 비해 15도까지 낮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즉, 뒤영벌은 뜨거운 가슴과 서늘한 배의 온도차를 이용해 체온을 조절한다.
빠른 비행에는 많은 동력원이 필요하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한 시간에 초콜릿 바 하나 정도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뒤영벌의 대사를 인간에게 적용한다면 30초도 되지 않아 같은 양의 에너지를 쓰는 셈이다. 이는 벌새의 대사율 75퍼센트를 뛰어넘는 수치다. 때문에 뒤영벌은 자주 먹어야만 한다. 포식을 했더라도 40분이 지나면 배가 다 꺼진다.
뒤영벌이 키우는 토마토가 더 크고 맛있다
하인리히의 첫 저서인 <뒤영벌의 경제학>은 아직 국내에 번역서가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데이브 굴슨(Dave Goulson)의 책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에는 보통 사람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뒤영벌 이야기가 펼쳐진다.
1893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오랜 논쟁 끝에 토마토를 채소라고 판결했다. 당시 미국은 수입 채소에 20퍼센트의 관세를 물리고 과일은 매기지 않았다. 이 선고에 따라 수입업자의 희비가 갈렸는데, 판결의 근거는 디저트가 아닌 식사의 일부라는 이유에서였다.
우리에게 토마토가 채소인지 과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설탕을 뿌려서 흡수율이 떨어져도 상관없다. 맛좋은 토마토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먹을 수 있으면 된다. 오늘날 토마토 생산의 표준은 뒤영벌을 이용한 수분이다.
1985년 벨기에의 수의사 롤랑드 드 용허(Roland De Jonghe)는 토마토 온실에 뒤영벌 둥지를 놓아 두면 수확량이 늘어나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뒤영벌이 가루받이를 도와 토마토의 양과 질이 모두 우수함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뒤영벌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발견했고 상업용 서양뒤영벌(Bombus terrestris) 생산을 위한 회사를 세웠다.
롤랑드는 아홉살의 어린 나이에 이미 곤충 관련 책을 세 권이나 낸 벌레 매니아였다. 그의 노력은 뒤영벌을 전 세계에 수출하는 최대 규모의 회사로 결실을 맺었다. 용허의 뒤영벌 농법은 이후 세계 토마토 생산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농업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양 산업이 아니다. 오히려 서구권에서 전도유망한 첨단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분야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촌진흥청에서 2014년에 뒤영벌 생산기술을 국산화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뒤안길에 새로운 기회가 있다. 곤충 산업은 앞으로 펼쳐질 무한한 자원의 보고이자 블루오션이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