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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군청(자료사진)
충북 옥천군청(자료사진) ⓒ 옥천군
 
청소년 참정권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회를 향한 청소년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성인 유권자만을 위한 정책이 아닌, 모두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 목소리의 핵심. 30년 전 '갈 곳이 없다'던 충북 옥천 지역 청소년의 목소리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저희도 할 말 많아요.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어요. 때로는 그래서 더 위험해요."

이 말속에는 지역 청소년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담겨있다. 이들의 의견을 그저 '나이 어린 이들의 철모르는 푸념'으로 넘기지 말아야 할 이유다.

"갈 곳 없고, 할 것 없는"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청소년 특히 지역 여성 청소년이 겪어야 할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여성의 눈으로 보는 2022 선거 정책' 그 세 번째 순서로 지역 여성 청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전한 '청소년 공간' 부재가 불러온 일

"안전하다고 느낄만한 곳이 없어요. 친구들끼리 편하게 있을 곳도 없고, 공부할 곳도 없어요. 친구 집 아니면 카페나 공원이 전부예요. 그런데 늦은 시간까지 카페나 공원에 머무르다 보면 어른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아요. 왜 공원에서 시끄럽게 노느냐고 그러기도 하고... 가끔 큰소리를 내거나 침을 뱉는 분들도 있는데 무섭죠." (A씨)

청산면에 사는 청소년들은 면 지역에도 안전한 '청소년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만한 마땅한 공간이 공원이나 카페뿐이라는 것. 하지만 카페의 음료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마음 편히 찾는 곳은 공원이나 '허락된' 친구 집뿐이다.

공원과 같은 야외에서 시간을 보낼 때 불안감은 더 커진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소년 범죄 소식에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낯선 어른이나 대형 트럭·승합차가 지나다닐 땐 더욱 두렵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불안감은 멈추지 않는다. 술에 취한 어른을 마주치는 일도 적지 않다. 취객의 해코지나 큰소리, 손가락질에도 두려움을 삼키며 묵묵히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면 소재지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더 깊숙한 마을에는 CCTV나 가로등을 기대할 수 없는 어두운 골목도 많다. 아동·청소년이 안전에 위협을 느낄 때 찾을 수 있도록 지정된 '아동안심점포'는 면 소재지 몇몇 가게뿐이다. 그나마도 운영하는 이들과 접점이 없어 심리적 접근성이 떨어진다.

면 소재지인 지전리에 청소년 문화의 집이 있지만, 청산면에 거주하는 초·중·고등학생 모두가 이용하는 시설이기에 이용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불편함이 있다. "최근에 출판된 읽을만한 도서나 청소년이 관심을 가질만한 시설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면 지역에 청소년 문화의 집이 '유일한' 청소년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마저도 청소년 문화의 집이 있는 면 지역은 청산면과 이원면 두 곳뿐이다.

청소년 공간 부재, 안전 문제와 더불어 공공화장실 문제도 지적됐다.

"밖에서 놀 때는 갈만한 화장실도 없어요. 대부분 문이 잠겨 있거나, 어른들이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많거든요. 담배 피우는 남성 어른 무리 사이로 지나다니려면 영 신경 쓰이죠. 휴지도 없고, 변기 위에 발자국이 나 있기도 하고. 생리대 수거함은 이용하지 말라는 안내가 붙은 곳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꾹 참는 때도 많아요." (B씨)

여가 활동을 위해 혹은 학습 시설에 가기 위해서 읍내나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에도 문제는 계속된다.

"늦게까지 공부하거나 친구들과 영화관, 노래방이라도 가려면 적어도 읍내에 나가야 하는데 집에 돌아오려면 오후 7시 30분 막차를 타야 해요. 급행은 더 빨리 끊기고요." (B씨)

면 지역 청소년에게 보장된 안전한 이동 수단은 오직 버스뿐. 택시도 마음 편히 탈 수만은 없다. 읍내에서 면까지 3만 원이 훌쩍 넘는 요금은 둘째 치더라도 어두운 시골길을 대부분 남성인 택시 기사와 단둘이 타고 오는 일이 편치만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 공간만큼 청소년 이동권도 중요해요.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뭘 하더라도 여유롭게 즐길 수 없고 마음 편히 공부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에요. 하지만 그저 이동에만 초점을 맞춘 이동권보다는 '안전한' 이동권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A씨)

평생 뗄 수 없는 월경, '교육'이 필요하다

"생리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여성에게는 평생의 문제인데도요. 청소년 시기에 성별과 관계없이 생리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받고,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여성의 건강권, 인권, 위생, 생명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있잖아요. 가장 기본적인 성교육인 셈이죠." (C씨)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는 "할수록 점점 더 모르는 일"이 되어간다. 월경 대신 '그날', '빨간 날'로 부르는 등 비밀스럽고 숨겨야 할 일처럼 여겨진 탓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청소년이 월경에 관해 묻고 답할 기회를 앗아갔고, 월경 주기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월경 주기는 무엇의 영향을 받는지, 자기 몸 상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물어볼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저 '그날'이 '그날이 아닌 날'처럼 보이게 하는 일에만 급급했다.

"생리를 바라보는 인식이 점차 변화해왔다지만 여전히 묻고 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더 이상 생리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도 그래요.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생리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확립돼야 한다고 봐요." (B씨)

"생리를 시작하면 보통 스스로 배우죠. 누구한테 물어보기 어려우니 혼자 정보를 찾는 와중에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믿어버리기도 하고요. 보통 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지만 생리대를 어떻게 붙이고 처리하는지 정도예요. 아버지와 함께 사는 한부모 가정은 이마저도 어렵겠죠." (D씨)

"간단하게는 사용한 생리대 처리 방법, 교체 주기부터 어떤 생리용품이 자기 몸과 가치관에 맞는지, 생리대 종류와 크기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배울 수 있어야죠. 그래야 자기 몸도 돌볼 수 있는 것 같아요." (A씨)

학교 성교육 시간에 배우기도 하지만,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 평소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거나 월경 용품에 관한 궁금증, 후기를 함께 나누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기에는 부족하다.

다양한 월경 용품을 직접 구매해 사용해보려 해도 쉽지 않다.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집으로 어른들에게 생소한 각종 월경 용품(생리컵, 생리팬티, 탐폰 등)을 주문하는 일이 쉽지 않을뿐더러, 좁은 지역 특성상 인근 편의점 등에서 월경 용품(탐폰 등)을 구매할 땐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기도 하다는 것. 면 지역에는 편의점이 없는 경우가 많고, 있다고 해도 판매하는 월경 용품 종류도 많지 않다.

월경은 인권이자 건강권, '더 열린 방식'으로 지켜져야

충북 도내에서 여성 청소년 생리대 무상지원의 첫발을 뗀 지역은 영동군이다. 영동군은 '여성 청소년 위생용품 지원 조례(2021년 6월 제정)'에 따라 올해부터 영동군에 주소를 둔 만 11~18세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생리대를 무상으로 지원한다. 지원금은 분기별로 카드형 지역화폐(레인보우영동페이, 분기별 3만4500원)로 지급된다.

반면 옥천군은 여성가족부 지침에 따라 2016년부터 옥천군에 주소를 둔 만 11~18세 여성 청소년, 그중에서도 ▲지역아동센터 및 아동복지시설, 방과 후 아카데미 이용 여성 청소년 혹은 ▲의료급여나 생계급여를 수급하는 여성 청소년에게 정부에서 지급한 카드에 생리대 구매금액을 포인트로 지원하고 있다. 군에서 주도하는 청소년 정책이 아닌데다 취약계층만을 대상으로 한 선별 정책에 그친 셈이다.

"친구에게 빌리거나 보건실에 가서 구하는 것도 눈치 보일 때가 있어요. 원하는 크기의 생리대가 아니거나 착용에 불편함이 있더라도 사용해야만 하고요. 학교는 청소년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곳이니 당연히 생리대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교 밖에서는 지자체 지원을 통해 구할 수 있어야 하고요. 두 가지가 병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D씨)

"청소년에게 생리대 무상지원은 의미가 크죠. 여자 형제가 많은 집이라면 비용도 적지 않을 테고요. 제2의 '깔창생리대' 사건이나, 휴지 등으로 수습하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생리는 곧 인권이자 건강권이라는 인식이 필요해요." (C씨)

다른 청소년들 역시 "월경용품 무상 지급은 꼭 필요하다"고 동의했다. 이들은 생리대 무상 지급이 이루어진다면 지금의 보편적인 두 가지 지급 방식(학교 배치, 지역화폐·바우처 등 지급)에서 더 나아가 생리팬티, 생리컵 등 자신에게 맞는 월경용품을 찾기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생리용품을 경험해볼 기회가 적어요. 생리대만 해도 종류가 많잖아요. 도시에서는 직접 구매하러 다닐 수 있을지 몰라도 지역, 특히 면 지역 청소년에게는 어려운 일이거든요. 가치관에 따라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는 유기농, 친환경, 면 생리대나 다양한 종류의 생리용품을 사용해보고 몸에 맞는 것(종류)을 찾을 수 있도록 장려했으면 좋겠어요." (A씨)

"각 면 지역마다 생리용품 바우처나 지급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용품점 한두 곳을 지정하고, 다양한 용품을 구비해 두면 좋을 것 같아요. 그곳에 가는 여성 청소년끼리 자연스럽게 사용 후기 등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도 형성될 테고요." (B씨)

'피임'과 '책임'을 명확히... '요즘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

정자와 난자가 만나 아기가 된다.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성교육 내용이다. 하지만 정자와 난자가 어떻게 만나는지, 그 과정은 비밀에 부쳐진다. 명확하지 않은 성교육은 '숨겨진 과정'을 빈자리로 만든다.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우는가는 청소년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제는 유해한 내용의 영상이나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부적절하고 폭력적인 방식을 옳은 방식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거고요. 반대로 '여성은 지켜지는 것'이라는 내용의 성교육은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하거나 성관계 자체가 나쁘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요. 혹여 관계를 갖게 될 경우 죄책감을 유발하기도 하고요." (D씨)

여성의 성 문제를 그저 임신과 출산, 생리에 한정하던 기존 성교육 문제와 함께 여성 청소년의 성욕을 터부시하고, 청소년의 성관계는 잘못되었다는 식의 성교육도 개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청소년 시기 '성관계는 무조건 안 된다'는 식 혹은 성추행·폭행 위험에 처했을 때 '하지 마세요!'라고 외치라는 식의 성교육이 계속되고 있어요. 청소년들에게 주목도가 떨어지는 성교육이 됐죠. 이런 교육은 이제 별로 의미가 없어요." (B씨)

2018년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청소년 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 중 첫 성관계 경험 평균 연령은 13.6세, 청소년 성관계 경험률은 5.7%다. 청소년 20명 중 1명은 성관계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청소년 피임률은 58.7%에 그쳤다. 피임 관련 지식·인식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청소년은 콘돔을 구매할 수 없다고 잘못 알고 있는 청소년도 상당수다. 제대로 된 피임, 지식을 익히지 못한 청소년이 랩이나 비닐봉지 등을 사용해 피임을 시도한 엽기적인 사건도 발생한다.

"정확한 피임 방법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피임을 왜 해야 하는지, 피임하지 않을 경우 나중에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 명확히 알려주는 성교육이 필요해요." (B씨)

"성병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에이즈에 대해 들어봤지만, 무슨 병인지 모르고 그냥 무섭다고만 느끼죠. 각종 성병을 설명하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교육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A씨)

'텔레그램 n번방 성 착취 사건' 등 갈수록 심각해지는 디지털·온라인 성범죄 관련 심도 있는 교육도 필요하다. "피해자 예방 교육도 중요하지만, 아동·청소년이 접근하기 쉬운 환경인 만큼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성에 관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오픈 카톡방, 인스타그램 등 SNS(에스엔에스)로 이뤄지는 모바일 성범죄는 아동·청소년이 더 쉽게 휘말릴 수 있기에 처벌 역시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디지털, 온라인 청소년 성범죄 피해도 많아졌잖아요. 더는 어떻게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크고 작은 성범죄가 벌어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어디에 털어놓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죠." (C씨)

"여성 청소년이 이러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디지털 성범죄 처벌 역시 더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D씨)
 
'아직 어리다'는 말 대신 필요한 것


"'아직 어려서 안 돼'라는 말보다 앞으로 더 살아가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고민을 함께해주세요." (C씨)

D씨는 "청소년은 '미래의 씨앗'이기도 하지만, 우리 역시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라 말한다. 더불어 "청소년을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기후 위기, 작은학교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을 함께 고민해달라"는 부탁도 이어졌다.

"'기후위기'나 '인구소멸', '작은학교'에 대해 청소년도 고민하거든요. 특히 인구소멸이나 작은학교 통폐합 문제는 지역 청소년에겐 숙명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고향, 내가 다녔던 학교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잖아요." (D씨)

"농촌에서 자란 청소년은 '기후위기'에 대해 도시 청소년보다는 더 민감할 것 같아요. 친구 집이나 마을 어른 대부분이 농사를 짓기도 하니, 기후 이야기를 더 자주 접할 수밖에요." (C씨)

"함께 살기 좋은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생태감수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길고양이 학대에 관해 듣거나 매일 보던 나무가 베어진 것을 볼 때 마음이 아파요. 동물 학대는 약자를 괴롭힌다는 점에서 여성 청소년이 더 공감할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해요. 나무는 마을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고, 환경문제와 관련되는데 인간에 의해 사라져 버린다는 게 마음이 안 좋아요." (A씨)

동물 학대는 약자 혐오와도 연결된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청소년 혐오'와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B씨는 "마을 어르신과 청소년,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생태감수성 교육"을 제안하기도 했다.

"어르신, 마을 구성원들과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함께 활동하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아요. 다양한 연령이 교류한다면, 또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다면 앞으로 지역에서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B씨)

"지금 자신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주장할 수 있는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의 청소년,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유권자만이 아닌, 누구나 살기 좋은 지역 정책을 만들 수 있는 굳센 힘이 이들의 맑은 시선에 깃들어 있다.
 
월간옥이네 통권 57호(2022년 3월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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