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정의당 박송희 광주 서구의원 예비후보(광주 서구 풍암동, 화정3·4동)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 후보는 대학을 졸업한 후 경기도 시흥시, 부천시 등지에서 약 10년간 시민단체 및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했다. 광주에 돌아온 이후에는 자연아이쿱생활협동조합에서 이사를 맡는 등 역시 시민운동에 참여했고, 이 과정에서 정치의 필요성을 실감해 정의당 당원이 됐다. 박 후보는 현재 정의당 강은미 국회의원 지역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치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어요. 1994년에 우루과이 라운드로 농산물 시장을 개방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시작이었어요. 저희 집이 농사짓거든요. 농부의 딸로서 자연스럽게 활동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1997년도에 전남대 총여학생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는데, 학내가 너무 어두워서 가로등 세우기 운동 같은 걸 했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활동하다가 잡혀서 80일 동안 유치장에서 살기도 했어요. 그때 사람에 대한 편견을 싹 버렸던 거 같아요.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언니들, 사기죄나 간통죄로 들어온 사람들, 300만 원을 훔쳐 구류를 살고 있던 청소년들.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세상을 배웠죠.
집회나 투쟁의 트라우마는 정말 오래 가더라고요. 토끼몰이식 검거 작전으로 쫓겨다니면서, 잡히기 전의 공포 같은 걸 자주 느꼈어요. 요새는 안 그러는데, 예전에는 악몽도 많이 꿨어요. 저에게는 비주류 기질 같은 게 있는 거 같아요. 여학생 운동이 주류는 아니었지만, 골간운동의 곁가지로 여겨질 일은 결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주목받지 못 하는 사람들, 힘 없고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 대학을 졸업한 이후의 삶은 어떠셨나요?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IMF가 터졌어요. 그래서 취직을 위해 서울에 갔다가 경기도 시흥에 정착했어요. 여러 시민단체에서 일했어요. 실업극복시흥시민연대에서 간사로 일하던 시절이 기억나네요. YMCA, 여성의전화 같은 곳들이 함께 만든 단체였어요. 저는 여기에서 상담을 진행한 후, 월 15만 원씩 두 달 동안 지원금을 주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이 정도 돈은 생계에 보탬이 되지는 않잖아요? 생활 자립이 어려운 분들이 눈에 들어와서 성공회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공부하게 됐어요. 실업의 문제가 빈곤 문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해결하고 싶어서요.
2001년부터는 전업 주부들의 재취업을 돕는 기관에서 일했어요. 전업주부들은 경력 단절을 겪고 나면 다시 취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심리적 위축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이 부분을 상담을 통해 해소해줄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이후 부천시 노동복지회관 노동복지팀에서 일했는데요. 인근 영세 사업자분들이 노동법 관련 문제를 마주했을 때 상담을 받으실 수 있도록 노무사를 연결해주고 문화프로그램도 열었어요.
이 기관에서 여성노동자회, 자활후견기관 등과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중장년층 실업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전국 최초의 민관 공동 일자리 희망본부를 만들었는데요. 여기서도 열심히 일했죠. 이렇게 세 곳에서 대략 10년 정도 일했어요. 이후 제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었는데요. 10년 정도 하니까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후 남편과 함께 목포, 순창을 거쳐 광주로 돌아왔어요."
- 이번 지방선거 출마를 결심하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동네 살면서 이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들이 조금씩은 있잖아요? 이런 부분들에 대해 함께 의논해 줄 수 있는 정치,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를 하고 싶어요. 정의당에 입당한 후부터 동네 구의원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강은미 의원님 활동을 보면서 좋은 정치인이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들 때, 시민의 삶에 긍적적인 변화가 생긴다는 걸 배우기도 했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동네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어요.
이번에 제가 출마하는 선거구는 2인 선거구예요. 조금 어려운 지역이죠. 하지만 저는 경기도에서 보냈던 시간을 제외한 삶의 대부분을 이 동네에서 보냈어요. 고등학교와 대학교도 여기서 다녔고요. 그래서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제 동네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최근 길에서 마주치는 많은 분들이 변화를 이야기하세요. 민주당이 광주 정치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정의당처럼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필요하다고 하셔요. 어려운 조건이지만, 이런 마음들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에요."
- 이 지역에서 추진하고 싶은 정책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마을에서부터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구의원이 되고 싶어요. 얼마 전 광주에서 녹색전환을 위한 100인 원탁회의를 열어, 광주에 필요한 환경의제들을 선정했어요. 정부에서 2050 탄소중립을 제시한 상황에서 광주는 2045 탄소중립을 추진해요. 이때 나온 이야기인데요. 2025년까지 전체 가구수의 10%에 해당하는 가구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자는 의제가 있어요. 이러한 것들을 마을 단위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교육도 하고, 태양광 이야기도 하면서 추진해 보고 싶어요.
작년에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34년간 그 자리를 지켜온 은행나무와 메타세쿼이아 118그루가 베어지는 일이 있었어요. 신축 아파트가 들어와서, 도로를 넓히기 위함이었다고 해요. 이 과정에서 수십 년 동안 이 거리를 오가며 나무들과 함께 해온 이들의 정서적인 부분, 심리적인 허탈감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았어요. 이에 대해 광주 서구청에 항의하니까,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답변이 왔어요. 법적 문제와 별개로 34년간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들을 그렇게 쉽게 베어버리는 건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대안을 찾기로 하고 환경단체 분들과 함께 서명운동을 진행했어요. 그렇게 광주시에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겁니다."
-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신다면 가로수와 관련해 더 추진하고 싶으신 일이 있으실까요?
"가로수 강전지라고 있어요. 가로수 가지치기를 할 때,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지치기를 많이 하는 걸 뜻해요. 근데, 이렇게 하면 나무에게 좋지 않거든요. 저는 가로수가 우리에게 주는 행복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광주 서구에서 가로수 트리맵을 만들고 싶어요. 가로수 이름을 짓고, 주민 참여를 통해 지도를 그리는 거예요. 체계적인 가로수 관리를 위해 미국 뉴욕주 등 세계 각지에서 시행되고 있는 시스템이에요. 만약 어떤 가로수가 시민들에게 '은행나무 새싹이'로 불린다면, 쉽게 베어내지 못할 거예요. 저는 가로수 조례에 명시된 숙려기간과 가로수 트리맵을 활용해, 주민분들의 행복감을 지켜드리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동네 공원들을 바꾸고 싶어요. 저희 지역에 조금 조금한 공원이 여럿 있는데요. 요새는 우레탄을 많이 깔더라고요. 순천에 기적의 놀이터라는 게 있어요. 넓은 모래밭에 자연 지형을 활용한 구조물을 둔 놀이터예요. 많이는 못 하더라도, 우리 동네에도 꼭 추진해 보고 싶어요.
제가 막 4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느낀 건데요. 이 나이가 되니까 부모님에 대한 돌봄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이건, 구의원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구의원으로서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보탤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동네 주민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마을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어요. 구의원으로서 시의원들, 국회의원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요. 꼭 당선돼서 마을 문제 해결을 위해 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