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만화독립출판지원사업으로 선정된 최인선의 <너를 그리며>는 동시대의 기후위기 시대에 환경과 자연의 쓸모를 노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탁월하게 담아낸다. 그 누구든 이 텍스트를 읽고 함부로 나무를 베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텍스트는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대상과의 소중한 관계를 설득력있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이런 시대의 당위성과 만화적 장점을 품고 있으니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이 텍스트를 추천한다. 그렇다면 이 텍스트는 무슨 내용을 품고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 나무의 쓸모를 이야기하는가. 답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풀어 놓아야 할 것 같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살다
나는 운좋게도 학창 시절 마당 있는 집에서 살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된 뒤에도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오래도록 그 마당을 누렸다. 그러니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나중에 새롭게 이사 간 집은 처음엔 어색했다. 그 서먹함을 밀어내고 천천히 정을 붙일 필요가 있었다. 도시 소음도 낯설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자 자연스럽게 정이 쌓이게 되었고, 내가 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그곳은 점차 나만의 공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낯설었던 공간이 어느새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공간이 되기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건설업체의 요구로 정든 집을 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파트에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는 우리 가족은 아파트라는 현대적인 공간에 대한 동경, 겨울에 춥다는 단점 등을 빌미로 아파트로 이사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여기서 오래 살았으니까 밝고 편한 아파트로 가는 것도 괜찮겠군요."(103쪽)라는 <너를 그리며> 한 구절처럼 집을 판 뒤 이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이면에는 정든 곳을 떠나야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20년 동안 살았던 집을 등지고 다른 곳으로 이사한다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았다. 모서리 모양의 집 형태와 겨울에 몹시 춥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내게는 소중한 공간이었음은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하는 전날과 당일 느꼈던 여러 감정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이사를 한다는 것은 나의 학창 시절 전부를 헐값에 헌납하는 느낌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마냥 좋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신발을 신은 채 방안에 들어와 살림을 나르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어느새 텅 빈 공간에 서 있게 되었을 때, 느꼈던 복잡한 심경은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부모님이 집을 판 후에도 그 집을 잊지 못해 종종 찾아가거나 멀리서 바라보기를 몇 번 한 후에야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그런 행동은 정든 공간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였던 것 같다. 내가 살던 옛집은 이제 존재하지 않지만, 그 공간과의 추억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옛집을 떠날 때 힘들었던 것은 20년 전 이사 오기 전부터 우두커니 마당에 서 있었던 목련 나무 때문이었다. 나무는 내게 계절을 가르쳐 주었고, 밖에서 치이고 돌아온 날에는 위로가 됐다. 봄에는 화려한 꽃으로 봄기운을 느끼게 해주었고 여름에는 넓은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줬다. 가을에는 소리 없이 떨어지는 잎의 낙하로 삶과 죽음을 알려주었고 겨울에는 털로 덮인 목련의 꽃눈 형태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삶의 순환을 알려주었다. 마당에서 성장하는 꽃들과 나무는 오랜 시간 병든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었던 셈이다.
그래픽 노블 <너를 그리며> 이야기 속 어린 선우도 창문 너머 보이는 마당 앞 은행나무를 보며 성장한다. 나처럼 <너를 그리며>의 주인공 선우도 은행나무 옆에서 여러 사연을 쏟아냈다. "너무 슬퍼서 계속 읽어줄 수가 없어!! 미안해."(61쪽), "나 오늘 농구선수 봤어. 키 엄청 크고 TV로 보는 것보다 훨씬 잘생겼다고.", "넌 나무라서 좋겠다. 학교 안 가도 되고", "봐!! 눈사람이야. 귀엽지? 얜 이제부터 널 지켜주는 수호신이다!!"라는 등.
이런 선우의 마음 때문이었는지 은행나무의 정령 또한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선우와 은행나무 정령은 그렇게 소통하며 친해지기 시작한다. 물론, 여기서 이들의 소통은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음이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 서로에게 이로운 영향력을 발휘한다.
뿌리내린 식물의 운명
나무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잎이 지고 자라기를
반복하며
변해가는 주변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처음 사람들이 내가 살아가는 곳에 집을 지었을 때에도
나는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생명은 언젠가는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널 만나기 전까지...
나무의 입장에서 쓰인 105쪽과 107쪽의 이 글귀는 뿌리내린 식물의 운명을 잘 담아 놓았다. 인간의 의도에 의해 심어졌지만, 자신의 의지로 떠날 수 없는 나무의 처지는 안쓰럽게 다가온다. 시인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에서 등장하는 '나룻배'처럼 인간들은 자신을 놔두고 늘 항상 떠나기 때문이다. 1000년 정도의 수명을 가진 은행나무의 생을 생각한다면 오랜 시간 한곳에 있어야 하는 삶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인연을 스쳐 보내야 하니 고독이 친구였겠다. 하지만 이런 은행나무의 숙명이 한 소녀에 의해 바뀌게 된다. 나무를 향한 선우의 진솔한 마음 덕분에 은행나무 정령은 한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신념을 깬다. 선우 곁에서 선우의 처지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나를 남기고 서서히 작아지다가 결국엔 없어지는..."(79) 이로운 나무의 운명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모두 '선우'라는 인물과 만나게 된 사건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이 텍스트는 이런 포근한 감정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선우 가족이 이사하게 된 후, 은행나무와 더 이상 교감이 불가능한 시간도 다룬다. 이사로 인해 은행나무의 존재를 잊고 살던 선우는 어느 날 옛집에 갑자기 방문하게 되고 그 장소에서 인간의 편리로 인해 잘려나간 은행나무의 존재를 목격한다. 그 순간 선우는 눈물을 흘리며 은행나무의 부재에 가슴 아파한다.
최인선의 <너를 그리며>는 형식상 1쪽에 '한 컷'을 기준으로 연출된다. 그러니 책을 펼쳤을 때 '두 컷'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연출은 유년 시절 은행나무와 소통하며 성장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농도 있게 표현하기에 적합한 구도로 보인다.
만약 이런 이야기가, 성소수자 이야기를 다룬 앨리슨 벡델의 <펀홈>처럼 수많은 배경 묘사가 1쪽에 6컷으로 빡빡하게 채워진다면, 독자가 그 슬픔의 깊이를 가늠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선우와 은행나무 정령과의 내밀한 독백을 직설적이고 긴밀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대상과의 '거리'를 밀어낸 앞선 연출이 더 효과적이다.
물론, 이런 형식이 사진으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동시대 플랫폼이자 최근 유행하는 '인스타그램'의 영향일 수도 있으나, 한 장면에 여러 이야기를 담아내기보다는 한 컷에 집중한 것은 내용과 형식에서 잘 어울린다. 이런 연출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좋은 텍스트임에도 현재 교보문고나 알라딘과 같은 대형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만화 전문 독립출판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고 하니 한 명의 독자로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동시대의 좋은 만화를 지키고 유통하는 독립책방과 최인선 작가를 응원한다. 작품이 좋으면 어떤 방식이든지 살아남는다는 믿음을 작가와 독립책방이 증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 블로그에 수록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