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지난 봄에 온 가족이 야구 직관을 간 이후로 6학년 딸이 야구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집에 오면 방문을 닫고 음악을 듣던 아이의 방문이 열렸다.
아이는 거실에서 야구를 본다. 아이돌 굿즈존은 응원 야구팀 굿즈존으로 바뀌었다. 아이는 하교할 때마다 나에게 전화를 해서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보고를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 보고 끝에 다른 말이 덧붙는다.
"엄마, 롯데 서튼 감독 그만뒀대!"
"엄마, 9월, 10월 잔여 경기 일정 나왔어."
매일 야구에 대한 새로운 뉴스를 나에게 전해준다. 화요일에서 일요일은 정규리그 야구를 보고 경기가 없는 월요일은 JTBC <최강야구>를 보고 경기가 우천 취소되면 은퇴한 투수 유희관의 유튜브를 보거나 몇 년 전 방영했던 야구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본다. 볼 거리가 금세 없어질 것 같아 아껴서 보고 있다.
그 중 <최강야구>는 은퇴한 야구 선수들을 모아 '최강몬스터즈'라는 팀을 만들어 경기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프로야구를 볼 때는 알 수 없었던 선수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선수들이 서로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격려를 하는지도. 난 설거지를 하면서 빨래를 개면서 홈트를 하면서 그 이야기를 엿듣는다.
많은 말들이 내 귀를 통과해 지나갔는데 이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어느 순간 내 귀로 쏙 들어왔다. 실점을 한 투수에게, 자신의 실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타자에게 동료들은 이렇게 말했다.
"신경쓰지 마. 니 꺼만 생각해. 니 꺼해, 니 야구해."
'멘탈 나간 동료에겐 항상 저렇게 말하네. 자기 꺼 하라고.'
그렇다, 그 사람들은 자기 것이 있는 것이다. 옆에서 손톱을 깎으며 TV 보는 아이에게 말했다.
"너도 니 꺼해. 지금 네가 해야 할 걸 하라고."
공부하라는 말이었는데,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어깨를 으쓱하며 "난 내 꺼 하지. 지금 아무도 뭐라고 안 했는데 긴 손톱을 스스로 깎고 있잖아?"라고 대답한다. 당당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내 것은 뭘까' 생각했다. 습작만 계속하고 있는 요즘,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없는 요즘,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무엇이 있을까.
갑자기 내 손에 쥐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훅 가라앉는다. 그러다 고개를 젓고 다시 정신을 차린다. 내 것이 별건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내 것이지.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내 것이지. 더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롯데 자이언츠 감독인 서튼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 잔여 시즌은 이종운 코치의 감독 대행 체제로 이뤄지게 된다. 포스트 시즌까지는 30경기가 조금 넘게 남았다. 현재 롯데 순위는 7위(8월 31일 기준).
스포츠 전문가 및 언론 그리고 팬들은 기다렸다는 듯 서튼 감독의 사퇴에 대해, 이종운 감독대행에 대해, 롯데의 프런트 야구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 모든 말들을 뒤로 하고 감독 대행은 감독의 일을, 프런트는 행정을, 야구 선수는 야구를 하면 좋겠다.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히 할 때 모든 일은 어느 정도 무리 없이 돌아간다. 문제는 자기 일을 소홀히 하거나 자기 일이 아닌 것에 무리하게 관여할 때 발생한다.
올해는 유독 비가 많이 또 자주 내린다. 경기는 자꾸 우천 취소가 된다. 주말에 부산 사직 야구장 경기 예매를 했는데 또 비 소식이 있다. 매일 부산의 주말 날씨를 확인하다 기차표와 숙소와 야구 티켓을 취소했다.
너무 아쉽지만 한편으론 피곤한 선수들이 쉴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천 취소가 되는 이 시간들이 선수들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낮은 순위도 어수선한 상황도 신경쓰지 말고 마음을 집중해 부디 자기 것만 생각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