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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가 지금 우리 사회의 아프고 뜨거운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이고 해법을 고민하는 특집 인터뷰 시리즈 <희망마이크-할 말 있소>를 시작합니다. 첫 희망마이크는 교육 현장을 찾아갑니다. 지난 7월 18일 서이초 교사가 사망한 뒤 군산, 용인, 대전에서도 교사들의 부고가 이어졌습니다. 무너져가는 교실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장 선생님들과 학부모, 전문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눕니다.[기자말]
40년 교직생활 내내 학교를 새롭고 즐거운 교육공동체로 만들고자 애써온 선생님은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1982년 처음 초등교사가 된 서길원 선생님은 2001년 경기도 광주 남한산초등학교를 "공부하는 자유로운 놀이터"(각주1)로 바꿔내며 공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고, 2009년에는 경기도 성남 보평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혁신학교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2014년에는 경기도교육청으로 자리를 옮겨 현장의 경험을 반영한 학교혁신 정책을 만드는 데 힘썼고 경기도여주교육장과 교육국장, 경기도교육연수원장을 지낸 후 지난 2022년 교직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습니다.

새로운 시도로 우리 교육에 희망을 불어넣은 교육혁신가인 서길원 선생님은 지난 9월 14일 지금의 상황이 "2015년 무렵부터 불거진 지속적인 위험신호를 간과한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서길원 선생님
서길원 선생님 ⓒ 희망제작소
 
-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위험신호'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2014년, 2015년 즈음부터 명예퇴직하는 교사들이 부쩍 늘었어요. 원인은 학생 생활지도가 어렵고 학부모 민원 응대가 힘들다는 것이었죠. 2019년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 스승의 날을 맞아 실시한 인식조사를 보세요. 당시 설문에 참여한 교사의 89%가 '학생 생활지도 붕괴 등 교권 추락'을, 73%가 '학부모 등 민원 증가에 따른 고충'을 명예퇴직 이유로 꼽았어요. 나이가 있으신 교사들은 이렇게 명예퇴직이라는 방법으로 탈출을 했지만 젊은 교사들은 그럴 수가 없잖아요. 특히 경력 10년 미만 교사들은 경험이 적은데도 힘들고 기피하는 업무를 도맡게 되니 완전히 코너에 몰린 거죠.

그간의 여러 위험신호에 대해 교육당국이 너무나 안일하게, 대증적으로 대처한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또 교원단체를 비롯한 여러 교육 주체들이 이 문제와 관련해 집요하게,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어야 하는데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내가 우리 젊은 교사들의 상황과 어려움을 속속들이 이해하지는 못했구나, 하는 반성을 해요. 교육청으로 갈 것이 아니라 학교 현장에 더 오래 있을 걸 그랬다는 후회도 남아요."

민주주의가 아닌 시장주의로 대체된 교육 현장

- 선생님은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5·31 교육개혁(각주2)으로 우리 교육의 기조가 크게 바뀌고 나서 30년 가까이 달려왔어요. 5·31 교육개혁과 4·15 학교자율화조치는 1960년~80년대 국민정신교육 시대의 전통적인 권위적 교육을 교육경쟁력과 수월성 강화를 위한 학교교육 서비스, 소비자(수요자) 중심 교육으로 바꿔 놓았어요. 그렇다면 이걸 계기로 이전의 권위주의적인 규범과 전통적 사제관계를 대체할 새롭고 민주적인 규범, 생활양식, 문화가 정립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됐어요.

권위주의를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장주의가 대체했어요. 학생과 학부모는 수요자, 학교와 교사는 공급자로 보는 일련의 교육 정책들이 시행됐지요. 교육기관정보공개법과 교원평가제가 도입되면서 교육은 국가통제에서 교육수요자(학생·학부모) 통제로 바뀌었어요. 교사의 생활지도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개인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고 자유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하도록 권장됐어요. 학교를 중심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뢰와 합의에 기반한 민주적인 규범과 생활양식을 만들기보다는, 학생-학생, 학생-교사, 교사-학부모 등 개인 간의 권리충돌과 침해행위를 어떻게 조치할지에 주목해 설계된 학교폭력예방법, 아동학대처벌법, 교원지위법이 새로운 규범이 된 셈이에요.

학교교육이 사법화되고 생활지도가 실종됐어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려내고 처벌에 중점을 둬요. 그런데 학교폭력은 가해자를 심판하고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거든요. 사법적 관점이 아니라 교육적 관점에서 보면, 폭력을 당한 아이나 폭력을 가한 아이, 그리고 이를 지켜본 아이들 모두가 연관된 문제이고 다시 그런 일이 없게 하려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배우고 깨닫고 바뀔 수 있어야 해요. 그렇게 만드는 게 교사의 역할이고, 교사 누구나 해야 할 생활지도예요.

하지만 지금은 교사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없어요. 누구 편든다는 소리 나올까 조심하고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조서 쓰고 가해자-피해자 부모 양쪽에서 고소당해요. 힘드니까 기피업무가 되고 학교에서 가장 약한 교사, 공동체의 약자에게 떠넘겨요. 나이 어린 교사, 갓 전입한 교사, 중등은 계약직 교원에게 초등은 초빙교사에게…. 모두가 함께해야 할 업무를 약자에게 독박 씌우고 회피하고 각자도생하는 상황이에요. 교사들은 저마다 외롭게 교실에 갇혀 있는데, 그 교실이 안전하지가 않아요.

이번에 서이초등학교 선생님 돌아가신 걸 보고, 저는 악성민원도 문제지만 그분이 그렇게 고통받을 때 손 내밀 곳이 없었다는 것, 홀로 고립된 상태에서 절망적인 선택을 하셨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어요. 그만큼 교사 공동체가 무너졌다는 얘기니까요. 나는 교권이 교사 개인의 권위가 아니라 학교교육의 권위, '학교권'에 가깝다고 봐요. 지금까지 해왔던 교육정책과 방향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면서, 무너진 학교교육, 교육공동체를 바로 세워야 우리 교육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요."
 
 ‘보평문화 나누기: 함께하는 교사 공동체’ 안내 책자
‘보평문화 나누기: 함께하는 교사 공동체’ 안내 책자 ⓒ 희망제작소
 
학생-교사-학부모 서로 존중하는 '3무3행' 약속

- 혁신학교인 보평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임하시면서, 앞서 말씀하신 '학생-교사-학부모가 함께 만드는 민주적인 교육공동체'를 구현하고자 애쓰셨어요. 당시 경험에서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당시 학교폭력이나 교권침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셨는지요.

"혁신학교에서 학교폭력과 같은 문제를 풀 때는 교사와 학생들 간의 상호존중과 교수학습 관계 정립이 먼저라는 인식으로 접근했어요. 학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토론을 통해 규칙을 만들고 실천하면서 문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인데요. 예를 들면 2009년 개교 때부터 시작한 보평초의 '보평문화 나누기: 함께하는 교사 공동체'는 교사들이 함께 만든, 보평초 교사공동체의 규범과 문화를 담고 있는 안내 책자예요.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학생들을 대하고, 민주적인 학급을 만들기 위해 교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수업방해 학생은 어떻게 지도하며, 학부모 상담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 자세히 나와 있어요. 공립학교는 교원순환제로 매년 교사의 4분의 1가량이 바뀌기 때문에, 새로 부임해온 교사들이 책자를 매개로 보평초 교사들의 규범과 행동양식을 이해하고 학습하게 되는 거죠.

보평초에는 또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만든 공동체 생활강령인 '3무3행'도 있어요. 교사들의 3무는 금품·향응을 제공받으면 안 되고, 체벌을 가해서는 안 되고, 수업에 태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 3행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하고 모두에게 배움이 일어나도록 가르치고, 학생들에게 친절하고 상세한 학습 안내와 안정된 학습환경을 조성하고, 모든 학생이 자신의 능력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학부모의 3무는 일과시간에는 교실출입을 하지 않고, 지정된 급식 외에 음료·다과를 학급에 제공하지 않고, 청소나 미화 등의 목적으로 학교출입을 하지 않는 것, 3행은 경쟁보다 협력을 통해 배우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며, 학부모 상담과 교육에 적극 참여하고, 학부모지원단에 가입해 우리학교 '모든' 학생을 위해 봉사한다는 내용이에요. 교장이 듣기 좋은 말을 써놓은 게 아니라, 이런 규범을 지켜야 할 교사와 학부모들이 함께 만들고 지키는 행동강령이에요. 물론 13년이 지난 이 규범도 이제 시대 상황에 맞게 부분적으로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가 되는 학생의 생활지도는 4단계로 이루어지는데, 담임교사의 학급 생활교육이 우선되고, 다음은 학년군 부장 교사가 책임을 맡는 학년생활교육협의회, 그리고 학교 차원의 생활교육(선도)위원회를 거쳐 마지막 4단계가 교육청 학교폭력위원회예요. 특히 학년군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생활협의회가 중요한데 각종 생활지도가 필요한 사안에 대한 학생의 교육적 지도 방법을 정하고 공동실천을 통해 학교 규범과 문화로 자리 잡도록 합니다. 또한 학교 차원의 생활교육위원회를 활성화하여 학교폭력위원회 사안을 최소화하고 교육적 대응을 통해 가정과 연계지도 방안을 모색합니다.

학생생활교육위원회는 교감, 생활부장교사, 학년(학년군)부장교사 포함 5-6인으로 구성되는데, 학칙위반 행위와 교사의 생활지도를 따르지 않은 중대 사안, 교사의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를 모두 다루어야 하고 징계수위를 결정하고 심리치료와 상담을 명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리고 징계는 생활교육(선도)위원회에서 담당하지만, 과제 부과나 캠페인 참여, 청소, 성찰문 작성과 같은 '교육벌'은 담임교사가 부과할 수 있도록 했어요.

보평초등학교가, 또는 혁신학교가 문제의 해답이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하지만 혁신학교에서 학교폭력이나 교권침해 사례가 현저히 적었던 이유를, 지금 다시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고 봐요. 학생과 교사 사이에 존중하고 신뢰하는 문화가 형성되면, 학부모가 교사를 대하는 태도와 양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에요. 악성민원을 하고 교사를 괴롭히는 학부모가 혁신학교에도 있을 수 있죠. 그런데 다양한 학부모 모임이 활발하면, 과도한 이야기와 행동을 하는 학부모를 다른 상식적인 학부모들이 막아내고 걸러내요.

나는 학교가, 스스로 생각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을 키워내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교과를 배우고 학력을 신장하는 것, 당연히 중요하지요. 그런데 자유로운 개인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태도와 규범을 배우는 것도 그만큼 중요해요. 학교폭력과 교권침해 대책으로 자꾸만 인성교육과 심리상담을 이야기하는데, 상대방을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되는 행동을 바꾸는 데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어라'는 식의 전통적인 품성 교육이나 상담과 같은 개인적 차원의 치유와 회복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 국회에서 '교권보호 4법'이 통과되고 교육부는 '교권 회복과 보호를 위한 종합방안'을 내놓았습니다. 교육 현장에 변화가 있을까요?

"뜨거운 여름, 광장에서 지속된 집회에서 상처와 분노, 공감 속에 동료 교사들과 유대감과 동질감을 느꼈던 교사들이 학교 일상으로 돌아와서 마주치는 현실은 크게 달라져 있진 않을 거예요. 법이 바뀌고 교육부 방침이 달라진다고 문제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으니까요. 교사들이 불안과 무기력, 고립감을 느낄 것이 염려돼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학사운영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사들이 많아지면 이것이 곧장 교직문화의 위기로 나타날 수도 있어요. 교사들이 학교 공동체 안에서 동료성을 바탕으로 치유와 회복 그리고 교사 자존감과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학교장의 리더십이 중요하고, 학교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해요.

바뀐 법과 지침에 맞춰 학교별로 학칙개정이 이루어지겠지요. 이 과정이 문제학생 분리지도, 민원처리 전담팀 구성과 같이 폭탄 떠넘기기식 해결책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 간의 민주적인 토론과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학교 공동체의 규범을 바로 세우는 과정이 되었으면 해요."

각주1) "공교육 혁명, 남한산 초등학교" <한겨레> 2005.09.04
각주2) 1995년 5월 31일 김영삼 문민정부가 권위주의 시대의 위계적이고 공급자 위주인 교육체계를 자율과 경쟁, 다양화와 특성화에 기초한 수요자 중심 교육체계로 바꾸겠다는 목표로 단행한 교육개혁. 이후 2년여에 걸쳐 120개 교육 정책이 발표·시행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뷰 및 정리: 이미경 희망제작소 시민이음본부 팀장. 해당 글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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