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강: 18일 오후 9시 5분]
이태원 참사(2022년 10월 29일)가 일어나기 전 해밀톤호텔 골목에 인파가 몰릴 가능성을 언급했던 경찰 정보보고서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과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에게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18일 서울서부지방법원 11형사부(재판장 배성중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증거인멸교사와 공용전자기록등손상교사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부장과 김 전 과장에게 이같이 구형했다. 상사인 김 전 과장에게 지시를 받고 실제 문건을 삭제한 곽영석 전 용산경찰서 정보관에겐 징역 1년이 구형됐다. 그간 실무자인 곽 정보관만이 혐의를 모두 인정해왔다.
삭제된 경찰의 정보보고서는 '이태원 핼러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2022.10.26), '가을축제 행사 안전관리실태 및 사고위험요인 SRI'(2022.10.4), '핼러윈데이 온오프 치안부담요인'(2022.10.7), '핼러윈, 경찰 제복으로 파티 참석 등 불법 우려'(2022.10.7) 등 모두 4개다. 이중 특히 '이태원 핼러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 보고서엔 해밀톤호텔 인근 인파를 우려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검찰에 따르면 이같은 정보보고서 삭제 지시는 이태원 참사 직후인 2022년 11월 1~2일 사이 총 4회에 걸쳐 상급기관인 서울경찰청(박성민 부장)에서 용산경찰서(김진호 과장)로 내려갔다. 검찰은 "(참사 이후) 강도 높은 감찰과 수사가 진행되고 정보보고서가 물적 증거가 됐음이 명백해지자 관련 정보활동의 위법 또는 부당성 여부 등이 객관적인 판단대에 오르게 될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내부규정을 빙자해 보고서를 임의로 삭제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 박성민(전 서울청 부장)으로부터 시작됐고, 명시적으로 수사 및 감찰에 대비하라고 언급했다", "피고인 김진호(전 용산서 과장)는 박성민의 지시로 범행을 하긴 했지만, (부하) 정보관들을 압박하는 등 적극적으로 범행을 했다"라며 두 경찰 간부에게 각각 징역 3년을 구형한 이유를 밝혔다.
곽 전 정보관에 대해선 "이태원 핼러윈 데이 관련 정보보고서 등 유의미한 자료를 삭제한 삭제자에 해당하지만, 박성민-김진호의 순차 지시에 따라 범행에 이르게 된 점, 범행 전부를 인정하며 반성하는 점 등을 참작해 징역 1년을 선고해달라"고 했다.
혐의 부인한 박성민-김진호… 유족 "아무도 책임 안 져"
박성민 전 서울청 부장과 김진호 전 용산서 과장 측은 재판 마지막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정보보고서 삭제는 대통령령인 '경찰관의 정보수집 및 처리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른 것이었다는 논리였다.
박 전 부장 측 변호인은 "해당 규정 7조 3항에 따르면 경찰관은 수집, 작성한 정보의 목적이 달성됐을 땐 그 정보를 폐기하게 돼있다"라며 "증거인멸 등이 성립하지 않고, 4개 보고서를 삭제해 피고인(박 전 부장)이 얻는 이익도 없었기에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부장과 김 전 과장은 서로에게 보고서 삭제의 책임을 돌리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박 전 부장은 "(문서 관리를 지시했을 뿐) 보고서를 특정해서 삭제하라고 한 적은 없다"고 했다. 김 전 과장은 "(박 전 부장에게) 지시를 받고 삭제했다는 것은 다 인정한다"고 했다. 김 전 과장은 그러면서 "(지시를 받고 보고서를 삭제했다는 것은) 다 인정하지만, 언론 보도처럼 (삭제 지시를 반대하는 하급자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회유하지는 않았다. 그 부분은 꼭 소명하고 싶다"라며 울먹였다.
김 전 과장은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용산)대통령실 이전 이후 (집회 시위 관리에 따른 용산경찰서의) 살인적인 초과 근무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서 이임재 용산서장으로부터 초과근무 관리 지시를 받았나'라는 질문에 "네 그렇다. 당시 (용산경찰서) 직원들에게 경비·교통·정보 등 많은 부서의 초과근무 실태현황이 관심사안이었고, 국회에서도 요구자료가 많이 왔다"라며 "자칫 부정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임재 서장이) 직원들의 초과근무를 (관리)하라는 지시를 했다"고도 했다. 그는 '이임재 서장으로부터 초과근무 지시를 받고, 2022년 10월 29일 집회가 끝나면 A 정보관에게 귀가하고, 핼러윈 축제에 문제점이 있으면 우발 대비 근무자를 주겠다는 지침을 준 것이냐'는 질문에도 "네 그렇다"고 했다.
법정 뒤쪽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태원 참사 희생자 임종원(1987년생)씨의 아버지 임익철(67)씨는 깊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궜다. 4시간여 진행된 재판 말미에 발언 기회를 얻은 임씨는 "경찰은 대통령실 주변 집회에만 집중하라고 하고 예상된 10만 인파의 시민 안전을 무시하다 참사를 일으켰다"라며 "참사 후 1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 어느 한 사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임씨는 "사법부가 제대로 판단해달라"고 발언을 끝마친 뒤 눈물을 훔쳤다.
박 전 부장, 김 전 과장 등에 대한 1심 선고는 내년 2월 14일로 잡혔다. 이태원 참사 관련 주요 4건 재판,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사건 ▲공용전자기록등손상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 등 사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사건 ▲공전자기록등위작 혐의로 기소된 최재원 용산구보건소장 사건 중 최초로 선고가 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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