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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나는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이라는 제목으로 어르신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첫 시간에 수업 이름을 들으신 어르신들은 대부분 피식 웃으신다. 누구나 한 번은 들었을 법한 '말'을 '글'로 박제한 것에 대한 낯섦이 주는 웃음일 것이다. 강사 입장에서는 수업 시작을 수강생의 미소로 열 수 있으니 이보다 고마운 제목이 없다.

[관련기사 :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 이 흔한 말이 현실이 됐을 때 https://omn.kr/27c66]

지난 수업 시간, 나는 어르신들께 10분 동안 시간을 드리고 열 살 이전 이야기를 써보자고 했다. 77살 어르신은 이런 글을 쓰셨다. 

"양조장에 그릇을 들고 가기 창피해서 양은 주전자에 술찌기를 가져왔다. 나는 여덟 살이었다."(술찌기 : '술지게미'의 경상도 방언.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

다른 어르신이 '맞아. 창피해' 하시며 웃으시니 다들 따라 웃으셨다.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는 나는 어르신께 여쭤봤다. 그릇을 들고 가는 건 남들 보기에 선착순 공짜를 '얻으러' 가는 꼴이라 어린 마음에도 창피한 일인 반면, 주전자를 들고 가는 건 '사러' 가는 모습이기에 당당할 수 있다나. 
 
 '이렇게 하찮은 걸 써도 되나?'라는 자기 검열은 모든 글의 통로를 막아버리는 강력한 방해꾼이다.?
'이렇게 하찮은 걸 써도 되나?'라는 자기 검열은 모든 글의 통로를 막아버리는 강력한 방해꾼이다.? ⓒ elements.envato
 
설명이 끝나자마자 글 쓰신 어르신이 다시 말을 이으셨다.

"선생님, 이건 글로 쓰기 너무 시시하지요? 나만 이러고 산 것도 아닌데 뭐."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 나온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쓰려고 보면 내 소재는 한없이 하찮아 보인다. 자서전을 쓰는 모든 어르신이 똑같이 말씀하신다. 그럼 나는 꼭 이렇게 말씀드린다.

"어르신들, 이렇게 추운 아침부터 굳이 글쓰기 수업을 오신 건 혼자 보는 글 쓰시려고 온 거 아니잖아요. 독자가 있는 글을 쓰고 싶으신 거잖아요. 지금 저는 독자가 되어서 읽었고요. 그릇과 양은 주전자에 실린 감정이 너무 신선했어요. 이런 소재는 30, 40대에게 절대 나올 수 없는 특별한 소재라서 정말 귀해요."

모든 어르신 얼굴이 밝아지면서 여기저기서 툭툭 소재가 튀어나온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 딱 좋겠지만 수업인지라 나는 추임새로 끊는다. 

"어, 맞아요. 그런 것도 제게는 신선해요. 그래서 특별하고요. 그거 잘 기억하셨다가 조금 더 자세히 써주세요. 이번주 숙제입니다."

숙제라는 단어가 그리 반갑지는 않을 텐데 어르신들 표정이 산뜻하다. 자신의 소재가 특별하는 말에 그런 표정이 나왔겠다. 부디 일주일 동안 그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란다. '이렇게 하찮은 걸 써도 되나?'라는 자기 검열은 모든 글의 통로를 막아버리는 강력한 방해꾼이다. 글쓰기를 하려는 모든 어르신들에게 매일 외치고 싶다.

"방금 떠오른 그 소재, 하찮지 않아요!!"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자서전#시니어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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