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쏟아내며 논란이 되고 있다.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합리적으로 평가하고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다만 김영호 장관의 발언은 통일부의 수장으로서 부적절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관계도 왜곡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최악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안보 위기 속에 통일부 장관의 냉정한 성찰과 결단을 요구하려 한다.
한 것 없이 전 정부 비난만
사실 윤석열 정부의 문재인 정부 탓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이 지난 총선에서 무능한 정부에 심판을 내렸지만 여전히 복지부동이다. 특히나 남북관계가 중단되고 한반도 정세가 얼어붙어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통일부 장관의 전 정부 탓이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 20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2023)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의 말에 "북한은 핵·미사일을 개발해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능력을 무시한 채 북한의 의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정세를 오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관련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핵은 철저하게 자기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사용할 생각 전혀 없다"며 "비핵화 의지를 나름대로 절실하게 설명"했고, "상응 조치가 있다면, 비핵화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약속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조건부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김영호 장관은 북한의 "의도와 능력을 명확하게 구분해 봐야 한다"면서 "북한의 의도를 전적으로 믿는다면 대단히 부정적인 안보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 회고록에서 문 대통령이 당시 '북한의 의도를 전적으로 믿었다'라거나, '북한의 핵 능력을 무시했다'고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은 찾기 힘들다. 사실 '상응 조치'를 통한 '비핵화'는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과 함께 동시적,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추진하자는 윤 정부의 '담대한 구상'과도 상통하는 이야기다.
이뿐 아니라, 당시 문재인 정부는 4·27 판문점 회담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폐기 등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 내고,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가능성을 열었다. 2018년 9월 평양정상선언과 함께 체결된 9·19 군사합의를 윤석열 정부가 일부 정지시킨 것을 감안하면 '부정적인 안보상의 결과'는 윤 정부의 몫에 가깝다. 결국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비아냥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은 꼴이다.
통일부 장관이 남북 관계 걸림돌
우리 법률에 따르면, 통일부 장관은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 통일교육,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정부조직법 제31조). 그렇다면 질문해 보자. 통일부 장관은 과연 우리 법이 규정한 통일부 장관 본연의 임무에 얼마나 충실했나?
관련하여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원칙에 입각해 남북관계를 정립하면서도 남북 간 접촉을 유지하고 관리해 나가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그간 북한의 도발과 불법 행태에 단호히 대응하면서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남북 간 대화에 열려있단 입장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고 강조했다. 다만 "북한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점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변명했다.
솔직히 말해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말 만큼이나, 김영호 장관이 '남북대화에 열려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 그의 '의지'뿐만 아니라 그럴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안타까운 것은 김영호 장관 본인이 '남북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호 장관은 과거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북한 전체주의 체제 파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며 "북한이 안고 있는 이런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하는 것은 김정은이가 정권에서 쫓겨나는 그 길밖에 없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한 마디로 북한 체제의 전복 없이 북핵 문제 해결은 불가하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김영호식'으로 말하자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김정은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무리 김정은 위원장이 궁하다 하더라도 자신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 장관과 북한이 대화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노골적인 흡수통일론은 '반통일 구상'
김영호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통일방안을 모색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주장하는 통일은 이전에 없었던 노골적인 흡수통일론이며, 현실성 없는 '반통일 구상'이다.
관련하여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은 여전히 전체주의 체제와 억압 통치를 이어가며, 최악의 퇴보와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며, "우리의 통일 노력이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이 되고 등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치 윤석열식 '민족해방론'을 보는 듯하다. 북한의 체제 붕괴를 유도하고 흡수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김영호 장관은 윤석열식 '민족해방론'을 마치 통일의 기본 헌장처럼 전파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흡수통일론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기로 한 남북기본합의서를 부정하는 시도이며,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통일이 전쟁이나 상대방에 대한 전복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직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도 위배되는 주장이다.
왜 흡수통일을 추진하면 안 되는가? 한국의 국력이 북한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흡수통일을 '상정'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 이유로 흡수통일의 상황을 '준비'하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이다. 다만 북한의 체제 붕괴와 흡수통일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북한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에 호응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그 속내가 어떻든 '북한 체제의 붕괴나 흡수통일을 꾀하지 않는다'고 말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가적으로 윤 정부가 유독 북한을 향해서만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것도 난센스다. 지난 4월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가 발표한 <민주주의보고서 2024>에서 한국은 '독재화 진행' 국가로 '지명'됐다.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윤 정부의 통일부 장관이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외치는 모습이 민망하다. 이율배반의 좋은 사례라 하겠다.
남북대화에 진심이라면 장관 스스로 물러나야
문 정부 탓, 북한 탓으로 점철되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과연 무엇을 했나? 비핵화를 진전시켰나? 아니면 대화를 통해 한반도 긴장을 완화했나?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아니 한반도는 더 위험해졌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증강했으며, 우리 국민의 통일 인식은 전에 없이 부정적이다.
안타깝게도 김영호 장관은 현재의 시점에서 이전에 없었던 최악의 통일부 장관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김영호 장관이 진심으로 남북관계 회복을 바라고 남북대화를 통해 한반도 긴장을 해소하고 싶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감히 제안드린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