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딱 30년이 되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 온 것일까.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김남주 정신이 필요하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지금 여기에서 김남주가 다시 살아 서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24인의 문학인들과 활동가들이 2024년의 한국 사회를 짚어 보며,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
어디서 처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른오징어 쥐어짠다'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이미 마를 대로 말라버려서 더 이상 물기가 없는 상태지만, 거기서도 어떻게든 물기를 더 쥐어 짜낸다는 건데, 굉장히 처절한 표현이다. 그런 무언가 쥐어짜 내는 듯한 가사를 한번 써보고 싶었다. 좀 더 들어가면 쥐어짜는 듯한 '저항'의 느낌으로.
'내가 그런 가사를 쓸 수 있을까?' 라고 고민했지만, 이것 역시 그냥 안 나와도 '마른오징어 쥐어짜서' 시도해 보기로 했다. 김남주, 박노해, 송경동 시인의 시를 꽤 좋아했는데 그분들의 흉내라도 한번 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집에서 술을 먹게 되면 편의점에 파는 페트로 된 맥주를 종종 사서 먹는데, 거기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게 있다. 땅콩이나 과자 같은 가벼운 안주로 정말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다른 안주들보다 간단하고 간편해서 나도 그 '마른안주'류를 꽤 좋아한다. 오징어, 쥐포, 멸치, 바나나, 건포도, 땅콩 등등이 있는데 보통은 짭짤하고 아주 잘 말려져 있어서 먹다 보면 목이 말라서 맥주 같은 술에 아주 딱 맞다. 그렇게 김빠진 맥주를 한잔 두잔 마시면서 다른 가사를 쓰다가 떠올랐다.
대한민국에 누군가는 분명 그렇게 사는 것처럼 보였고,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씹고 있는 '건조된 식품'들처럼. 오징어나 쥐포처럼 납작하게 눌리지 않을까, 멸치처럼 산 채로 말려지지 않을까, 바나나처럼 썰리지 않을까, 건포도처럼 쪼그라들지 않을까... 돈만 벌다가, 일만 하다가, 다른 더 큰 존재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잡아먹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쓰던 가사를 접고 이 생각을 가사로 써보기로 했다.
푸석한 삶은 거대한 '건조기'로, 그 안에 누군가는 '건조식품'으로. 그렇게 하고 보니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 일수도, 기업과 개인의 관계 일수도, 가난과 자본의 관계 일수도, 다수의 편견에 관한 이야기 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난 '건조기'일 수도, '건조식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물기를 뺏어간 딱 그만큼'
'나도 니 몸에 물기를 뺏어 갈 거 라는 걸'
아시라고.
위의 글은 2021년에 발간된 필자의 저서 <대행진>(다시서점, 2021)에 <건조식품>이라는 소제목으로 실려있는 일부 문장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김남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수없이 반짝반짝 빛났고, 수없이 뜨겁게 차올랐으며, 수없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났다.
어떻습니까? 바라던 시대인가요? 시 한 편으로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뭐라고 할 겁니까
시골 촌구석 해먹을 게 없어 서울로 가겠다는데
우리 농사지어봐야 커피 빵집 대기 줄만 길다는데
금 비싼 한우 누가 먹나 미국산 호주산 맛만 좋다는데
신토불이 신토불이 사기꾼들이라는데
Benz Cadillac BMW Toyota 나도 한번 타고 싶고
목숨보다 귀한 내 집 값 만은 제발 강남 불패
부자가 뭐가 나빠 가난이 멍청하고 게으른 죄라는데
뭐라고 할 겁니까
우리 군인 죽어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전작권 미군 떠나가면 전쟁 날까 불안하다 하고
내 피 같은 세금 더 내야 된다는 통일하지 말자는데
뭐라고 할 겁니까
요즘 누가 농민 노동 자본 투쟁이라는 말을 씁니까
촌스럽게
이제 누가 자유 해방 조국 통일이라는 말을 씁니까
덜떨어지게
입이 있다면 말해보십시오
아니 말해주십시오
당신은 지금 뭐라고 할 겁니까 덧붙이는 글 | 공동주최 : 김남주기념사업회·한국작가회의·익천문화재단 길동무
후원 : 더숲문화재단
* 아날로그소년(이병훈) : 뮤지션(래퍼). 앨범 <행진><택배왔어요><현장의 소리> 등이 있고, 에세이집 <대행진>을 발표하였다.
나의 음악은 시멘트와 아스팔트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