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은 청년 정치인, 현직은 동네 파스타 식당 주방보조가 현실 정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눈살 찌푸리는 정쟁 속에서도 우리 삶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선의에 기대는 정치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편집자말] |
"국가의 밤이 되었네. 싱가포르의 출생률을 끌어올려 보세"
실제로 싱가포르 정부가 만든 노래의 가사다. 저출생을 극복하겠다는 절박함이 오죽 컸으면 이런 노래까지 만들어 보급했을까. 이뿐만이 아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의 밤'을 지정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며 안정적이고 헌신적이며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남녀 성인들에게 잉태를 위한 관계를 맺을 것을 촉구하는 밤"을 만들어 홍보했다. 케겔 운동이 저출생 극복 방안이라는 어느 서울시 의원의 대책만큼이나 참신(?)하다.
그럼에도 효과는 없었다. 심지어 싱가포르는 낙태 혹은 불임 시술을 원할 경우 상담을 의무적으로 받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2023년 합계출산율이 0.97명에 불과했다.
'합계출산율'에 대한 맹목적 집착이 만드는 오류
얼마 전 한국 정부는 '국가의 밤'에 비하면 선진적인 방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것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서 전망한 올해 연간 합계출산율이 0.68명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타계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이는 표현이다.
정부는 부모 1인당 육아휴직 급여를 첫 3개월 동안 최대 250만 원으로 상향하고, 육아휴직 실질 사용을 늘리기 위해 대체인력지원금 120만 원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5세까지 무상돌봄 시스템과 11세까지 국가보육책임, 신혼·출산·다자녀 가구에 대한 주택 공급을 대폭 늘리기 위한 주택 마련 대출요건 완화 등 구체적인 대책들을 함께 발표했다.
그동안 '양육' 분야에 집중됐던 예산을 '일·가정 양립'으로 전환하겠다는 방향성은 긍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KDI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저출생과 직결된 예산 중 87.2%가 '양육' 분야에 집중됐지만, '일·가정 양립'에는 8.5%만 지원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신규 정책은 국비 사업의 80% 이상을 '일·가정 양립'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아이를 많이 낳게 하기 위한 유인책으로서 정책과 사회적 육아를 국가책임으로 보는 관점에서의 권리 보장 정책을 현실에선 선을 딱 긋고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정부의 저출생 정책은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향상시키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는 '국가비상사태'라는 표현에 비해, 정부가 발표한 내용들은 여러 한계가 존재하고 부족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예산투입과 현금지원의 규모가 미흡하다는 점, 고용보험 미가입자 혹은 경제 취약계층 등 사각지대가 명확하다는 점 등이 대표적인 비판이다.
실제 OECD 평균 가족 지출(아동수당, 육아휴직 급여, 보육 서비스 지출 등)이 GDP의 2.12%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1.37%에 불과하다. 현금 지원 영역으로 가면 OECD 지출 평균이 1.1%인데 비해, 한국은 0.2% 수준으로 더 열악하다. 또한 정부의 주택마련 대출요건 완화의 대상은 집을 구할 수 있을 만한 경제력을 갖춘 신혼부부만이 그 대상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이 중 주목하고 싶은 지점은 바로 '사각지대'다. 사실 저출생 정책에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저출생' 대책 그 자체에 원인이 있다. 정부는 애초에 '저출생'을 해결하겠다고 했지,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실제로 합계출산율만 올리면 된다는 목표라면 중산층 대상 정책이 투입 대비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추정은 충분히 가능하다. 2019년 출산 가구 가운데 상위층 비중은 54.5%, 중위층은 37%인데 반해 하위층은 8.5%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출산 가능성이 높은 상위층과 중위층에 예산을 집중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밝힌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금 및 보육 지원 정책은 소득 4분위(상위 60~80%) 가구의 합계 출산율만을 높였다고 한다. 주택마련 대출요건이 핵심 저출생 정책인 것을 보면, 정부는 합계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오히려 그 대상을 명확히 한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한국 사회는 기혼 가정의 출산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합계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면 결혼을 시켜야 하고, 되도록 빨리할 수 있도록 유인해야 하며, 비혼 출산 혹은 한부모 가정 등에 대한 지원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아이를 출산하기 어려운 동성커플에 대한 사회적 권리 역시 관심받기 어렵다. '저출생'이 사회적 과제의 최우선이라면 발생하는 부정적 요인들이다. 국책연구기관이 여성을 조기 입학시켜 사회진입 시기를 앞당기는 것을 저출생 정책이라고 내놓는 것 역시 합계출산율에 대한 맹목적 집착에서 발생하는 오류다.
인구위기 시대, 공포를 넘어 대안으로
인구위기는 인구 감소와 인구 구조변화라는 두 가지 현상을 의미한다. 인구 감소는 말 그대로 전체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고, 인구 구조변화는 저출생과 더불어 고령 시대가 함께 온다는 것이다. 이 자체만 보면 문제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사람 수가 적어지는 것이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노인은 많아지는데 아이가 적은 시대가 어떤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 되는지를 같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국가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요인이 미미하거나, 합계출산율을 올리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 부정적 영향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인구위기를 바라보는 관점은 달라질 수 있다.
먼저 질문이다. 인구 감소와 저출생 고령 시대는 과연 나쁘기만 할까? 기본적으로 고령 사회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는 의미다. 보건의료 기술과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었다는 뜻이고, 위생적인 주거 및 도시 환경을 갖추고 국민적 소득수준도 일정 부분 도달했기 때문에 노인 인구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출생도 마찬가지다. 자녀 돌봄의 시간 대신에 자기계발과 사회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다. 인구 1인당 노동에 대한 가치도 증가한다. 실제 흑사병 시대에 인구수가 급감하면서 영국은 농민들의 노동가치가 올라가면서 영주들과 협상력이 높아졌고 사회변화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인구감소와 인구 구조변화라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할 것인지에 달렸다. 무작정 인구감소가 위기라며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은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합계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확신 있는 해답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일반적으로 저출생 극복의 모범이라고 언급되는 국가는 스웨덴과 프랑스 정도다. 그런데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저출생 극복'이 아니라 '사회개혁'이다.
스웨덴 모델의 선구자인 뮈드달 부부는 인구문제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저작 <인구위기>를 통해 스웨덴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사회개혁'에 있음을 설파했다. 이를 전통으로 삼아온 스웨덴 정부는 출산율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이다. 정부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양육 등 국가로서 기능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프랑스는 저출생을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프랑스는 OECD 평균 지출 예산의 두 배에 가까운 GDP의 4%를 저출생 문제 해결에 쏟고 있다. 누군가는 훌륭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투입한 예산에 비해 1.8%라는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그 결과가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이런 종류의 과도한 예산 투입 정책이 일시적으로 합계출산율을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 전체를 저출생 극복에 최대 초점을 맞추어 예산 편성하는 것이 지속가능하고 장기적 시스템이 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방법을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저출생 고령 시대의 핵심 문제는 '경제'라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청년층이 부양해야 하는 고령층이 많아지면서 인구부양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지금은 청년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는데, 곧 청년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오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꼭 청년 3명 몫을 더 낳으라는 것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저출생 극복 대신, 인구 3천만 국가를 준비할 수 있다면
일도 구직도 안 하는 대졸자가 올해 상반기 400만 명으로 역대 최대라고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공개한 2018∼2022년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주요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5년 동안 청년층(15~29세) 중 비경제활동 청년은 전체 청년 중 52.1%에 달한다. 청년 중 절반이 노동을 쉬고 있다는 뜻이다. 과도하게 비약을 해보자면, 이미 우리 사회는 청년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청년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통계청에 의하면 2023년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55.6%에 불과하다. 앞서 복지국가 모델로 언급한 스웨덴의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 80.8%인 것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그렇다면 인구 자체는 감소하더라도, 노동인구를 확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인구 감소를 노동인구 감소라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물론 완전한 대안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합계출산율이 지금 당장 올라가더라도 20년 동안 밀어닥칠 수밖에 없는 노동인구감소로 인한 경제둔화 문제를 해소하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인구확대'가 아니라 '인구관리'를 중점으로 한 정책을 재설계하고, 연금과 교육 등 사회 전반을 재구성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청년과 여성이 노동을 쉬는 이유는 일자리 자체가 부족해서는 아니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일·가정 양립 정책은 꼭 저출생이 아니더라도 필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해소되어야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에 진입할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노동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규모가 증가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방향성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다른 외국들에 비해 경쟁력 있는 노동 시장이 되기 위해선,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권리 확대와 처우 개선이 필수적이다.
노동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인구 5천만 명에 맞추어 설계된 지금의 사회적 제도와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뜨거운 화두 중에 하나인 국민연금 제도를 비롯해서, 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할 것으로 전망되는 의료 및 복지 시장에 대한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교육받을 아이는 적은데, 평생교육 시대에 진입해 교육 요구가 늘어난 고령 인구에 대한 교육 시장 전반의 개편도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애만 많이 낳으면 해결되는 문제를 왜 이렇게까지 많은 변화를 감수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이를 계기로 사회 전반을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물론 애만 많이 나으면 해결된다는 관점 자체가 옳지도 않다고 보지만.
가장 비관적인 경우, '인구 3천만' 국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지속가능한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첫 단계는 노동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이것이 더 현실적이고 사회정의 관점에서도 더 바람직한 방향이다. 물론 육아휴직 급여 확대 등 윤석열 정부의 저출생 정책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저출생 극복의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 육아의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다. 합계출산율을 올리기 위한 목표보다, 노동불평등 해소를 통한 노동인구 확대와 사회적 육아 책임이라는 방향을 잡고 3천만 대한민국 시대를 준비해 보자는 발상의 전환이다. 인구가 5천만이든 3천만이든 시민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괜찮은 것 아닐까.
덧붙이는 글 | ※ 본 글은 아래 책들을 참고했습니다.
- 대한민국 인구 정책, 길은 있는가(해남)_이재인
-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위즈덤하우스)_이철희
- 저출산 고령사회와 그 적들(EM실천)_정재훈
- 축소되는 세계(사이)_앨런 말라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