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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명 조식 선생을 기리는 용암서원 앞에는 1555년 조선 명종이 내린 단성 현감직을 사직하며 뇌룡정에서 쓴 상소문(乙卯辭職疏?을묘사직소)이 새겨져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을 기리는 용암서원 앞에는 1555년 조선 명종이 내린 단성 현감직을 사직하며 뇌룡정에서 쓴 상소문(乙卯辭職疏?을묘사직소)이 새겨져 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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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의 <단성소>를 소개하기 위해 상소에 관해 다소 먼 길을 돌아온 것 같다.

"남명은 단성현감의 사직소와 함께 당시의 정치제도가 군신간의 절대적인 분열, 즉 왕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규정짓던 시대에 상소문을 통해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파천황의 극언을 왕에게 올렸다. 왕과 대비를 진노케하고, 조정의 중신들을 놀라게 하고, 사림들까지 겁에 질려 손에 땀을 쥐게 한" (주석 1) 것이 <단성소>이다. 요지를 소개한다.
 
 합천 용암서원 앞에 있는 남명 조식 선생의 흉상과 을묘사직소를 새긴 비석
 합천 용암서원 앞에 있는 남명 조식 선생의 흉상과 을묘사직소를 새긴 비석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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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소

전하의 국사가 그릇된 지는 이미 오랩니다. 나라의 기틀은 이미 무너졌고,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났으며, 백성들의 마음 또한 이미 전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비유컨대 큰 나무가 100년 동안이나 그 속을 벌레한테 파먹혀 진이 빠지고, 말라 죽었는데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 폭풍우가 닥치면 견디어 내지 못할 위험한 상태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실정에 있은 지가 오랩니다.

소관들은 아래서 히히덕거리며 주색이나 즐기고, 대관은 위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오직 뇌물을 긁어 모으는데 혈안입니다. 뿐만 아니오라 내신들은 파당을 세워 궁중의 왕권을 농락하고 외신들은 향리에서 백성들을 착취하여 이리떼처럼 날뛰면서 가죽이 다 닳아 없어지면 이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신은 깊이 생각해보면 탄식만 길게 나올 뿐, 낮이면 하늘을 우러르기 수차례였고, 눈물과 한숨을 누를 길 없어 밤이면 잠 못 이룬 지가 오랩니다.

나라가 이 지경이고 보면, 자전대비(慈殿大妣)는 밖의 소식이 막힌 깊은 궁궐 안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는 나이어린 선왕의 한 외로운 자식일 뿐입니다. 저 많은 천재, 천갈래 만갈래로 흩어진 민심을 무엇으로 막고, 어떻게 수습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런 때를 당해서 비록 재주가 주공(周公)과 소광(召公)을 겸하여 삼공의 위치에 있다 해도 손을 쓰기 어려운 형편이온데, 하물며 미신(微臣)과 같이 아무 힘도 없는 자야 더 말해 무엇하리이까.

위로는 나라의 위태로움을 조금이나마 부지할 수 없을 것이며, 아래로 터럭만큼도 백성들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니, 전하의 신하되기 또한 어렵지 않습니까.

추호라도 헛된 이름을 팔아 전하의 벼슬을 도적해서 그 록만 먹고 하는 일 없이 지내는 그런 신하가 되는 것을 신은 원치 않습니다.

근자에 변방에 일이 있어 여러 대신들이 밥도 제때에 먹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신은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찍이 20년 전부터 이 일이 생겼던 것을 전하의 영명하심에 힘입어 이제야 발각된 것이오, 하루 아침에 된 것은 아닙니다.

평소 조정에서는 매관매직을 하고, 재물을 수탈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므로 민심이 흩어져 결국 쓸만한 장수도 없게 되고 성안에 병사 한 사람 남아 있지 않기에 이르렀으니 적이 무인지경으로 처들어 온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것은 하찮은 피부병에 지나지 않고 마음과 속의 병은 이보다 더 심각합니다. 국사를 정돈하는 요결은 구구한 정령(政令)에 있지 않고, 오직 전하께서 한번 크게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오나 전하께서는 홀로 전하가 하시려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시지를 못합니다.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성색을 좋아하십니까? 궁마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그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냐에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습니다.

진실로 전하께서 활연히 깨달으시어 분연히 학문에 진력하사 명덕(明德)·신민(臣民)의 덕을 얻으신다면 거기에 만선(萬善)이 구재(具在)해 있어 백가지 응변책이 연이어 나올 것이니 그것으로 조치를 취하신다면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고, 백성을 평화롭게, 위기를 평안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석 2)


주석
1> <행장 및 사적>, 378쪽.
2> 앞의 책, 378~37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진짜 선비 남명 조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조식평전#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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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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