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에 테러위험 인물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수집을 허용한 '테러방지법(국민보호와공공안전을위한테러방지법)' 제정 당시, 인권 침해 우려를 줄여보고자 인권보호관 제도가 함께 도입됐지만 그동안 인권보호관에 제기된 관련 민원은 전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 사이 국정원은 테러위험 인물을 퇴거 조치하고 일부를 기소했다. 다만 모든 조사가 '깜깜이'로 이뤄진 탓에 국정원이 조사 과정에서 어떤 정보를 수집했고, 왜 특정인을 테러위험 인물로 추정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테러방지법이) 테러 대응'이라는 명목 아래 국정원의 권한만 강화한 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정원 '테러위험 인물' 추정에도 인권침해 민원 '0건'
17일 <오마이뉴스>가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국가테러대책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테러방지법 시행 이후 인권보호관에게 제기된 인권침해 관련 민원은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테러방지법 시행령 제8조에 따르면, 인권보호관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국정원 등 업무 기관의 인권 침해 사실이 대책위원회에서 확인됐을 때 ▲인권 보호를 위한 자문 및 개선을 권고하거나 ▲대테러활동에 따른 인권침해 관련 민원을 처리하고 ▲관계 기관을 상대로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민원은 전무했고 자문·개선권고 업무도 2017년 1월 집계 이래 28건에 불과했다. 국정원의 직무 수행 중 인권침해 행위가 있다고 판단할 충분한 사유가 있을 때 조치할 수 있는 '시정 권고' 역시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관계기관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 교육 사례는 118건에 달했다.
인권보호관 제도는 테러방지법이 테러로부터 국가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기본권을 제한할까 봐 탄생했다. 하지만 그간의 활동을 보면, 인권보호관이 인권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못한 채 '예방 교육'에만 치중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는 새 국정원은 테러위험 인물 195명을 특정해 강제 퇴거하고 18명을 기소하는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국정원이 정보를 수집한 범위나 특정인을 테러위험 인물로 추정한 근거 등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테러위험 인물에 대한 추적을 허용하면서도, 사전 또는 사후에 추적 사실만을 대책위원회 위원장인 국무총리에게 보고하도록 한 테러방지법 9조 때문이다.
대테러 인권보호관 지원반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국가정보원이 이른바 '내사'를 진행할 때 인권보호관이 배석할 수 없다"며 "인권보호관은 국정원이 테러위험 인물이라고 추정한 인물과 관련 정보를 사후적으로 알게 될 뿐"이라는 한계를 지적했다. "인권보호관의 업무는 주로 사전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도 덧붙였다.
해당 관계자는 그동안 인권 침해 민원이 전무했던 데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민원이 제기되기 어려운 구조"라며 "(테러위험 인물로 추정된) 당사자가 국정원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조회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인권 침해 민원을 제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설령 민원이 제기된다 하더라도 국정원에서 테러 관련 사안을 밝혀내면 대부분의 사건은 수사 단계로 넘어간다"며 "하지만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민원처리법)에 따라 수사 중인 사안에 민원을 처리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박상혁 의원은 "현행 테러방지법은 '테러 대응'이라는 명목하에 국정원의 권한만 강화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태"라며 "민주적 통제를 위한 조항들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