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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할 때 언제든 병·의원에 가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을 수 있다'는 건 현대사회의 공통감각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이나 성별, 직업,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농촌 의료의 지금을 조명합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충북 옥천 안남보거지소.
충북 옥천 안남보거지소. ⓒ 월간 옥이네

김홍묵(88)씨는 종종 충북 옥천 안남면사무소 옆에 있는 안남보건지소를 찾곤 한다. 허리나 무릎 따위가 쑤셔 힘이 들 때 침이라도 맞아두면 통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부쩍 쌀쌀해진 공기에 감기 기운이 돌면 찾는 곳도 안남보건지소다.

보건지소는 보건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의 보건의료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운영되는 의료기관으로, 공중보건의사(아래 공보의)가 배치돼 마을에 일차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흔히 '의료사막', '의료절벽' 등으로 설명되는 농촌의 열악한 의료 접근성으로 인해 이러한 공공의료기관은 더욱 중요할 터. 실제로 면 주민들에게 공공의료기관인 보건지소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지난 9월 23일, 연주리를 찾아 주민들의 안남보건지소 이용기를 물었다.

집에서 걸어서 5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22년 발표한 '농촌지역 방문진료 실태와 개선과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병의원에 방문할 필요가 있었으나 받지 못한 경험의 원인'으로 '거동의 불편'을 답한 농촌 주민은 100명 중 약 16명이다. 이는 같은 사유로 병·의원에 가지 못한 도시 주민 수(7명)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의료기관이 멀어 병의원에 가지 못했다'는 농촌 주민 역시 100명 중 7명에 달한다(도시의 경우 100명 중 1명).

"석 달에 한 번씩 혈압약 타러 가지. 다달이 오면 귀찮다고 한 번에 석 달 치 약을 줘. 나이 드니까 아플 일이 더 많은데, 보건지소가 마을에 있으니까 걸어가면 되잖아. 그게 좋아."

"허리가 구부러졌어도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이라는 이동월(89)씨지만 "약을 타기 위해 매달 옥천읍에 있는 병원까지 나가기는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1시간에 한 대꼴로 있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높은 계단을 올라 버스에 타고, 30여 분의 이동 후 하차해 병원까지 걸어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짐이 있거나, 몸이 유달리 아픈 날이면 그 난이도는 몇 배로 증가한다. 그에 비하면 집에서 보건지소까지는 동월씨의 걸음으로도 5분이면 도착하는, 제일 쉬운 의료시설 이용 방법이다.

 김정순, 전방자, 곽계환, 강구월, 주재순, 이상순, 신영순, 김홍묵씨.
김정순, 전방자, 곽계환, 강구월, 주재순, 이상순, 신영순, 김홍묵씨. ⓒ 월간 옥이네

마을 주민들이 입을 모아 '보건지소 최다 이용자'라고 칭한 김홍묵씨도 동월씨와 같은 이유로 보건지소를 찾곤 한다.

"나는 침 맞으러 (안남보건지소) 자주 가지. 마을에서는 보행보조기 끌고 다니면 걸어 다닐 만한데, 옥천읍으로 가려면 버스도 한참 타야 하고, 보행보조기를 싣고 갈 수도 없잖아? 아이고, 힘들어서 못 가. 허리랑 무릎이 아프니 어디 걸을 수가 있나. 자식들이 와도 주말이나 공휴일에 오니 병원도 휴무일이라 진료를 볼 수가 있어? 보건지소까지는 천천히 걸어가면 갈 만해. 근데 요즘은 그것도 힘이 들어서 쉬었다 가."

보건지소는 지역보건법 제13조에 근거한 공공의료기관이다. 주로 읍·면 지역 등 보건소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설치되며 공보의가 상주한다. 하지만 일반 병·의원처럼 다양한 진료과목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인력과 예산의 한계가 가장 큰 이유인데, 그래도 이 같은 보건지소는 그 존재만으로도 농촌 주민들의 마음에 위로가 된다.

안남보건지소에서는 의과와 한의과 순환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월·수·금요일은 한의과 진료(침 시술 및 진료 처방)를, 화·목요일은 의과 진료(만성질환자 관리 및 진료 처방)를 보는 식이다. 주민들이 안남보건지소를 찾는 가장 많은 이유는 한의과에서 침 시술을 받거나 외과에서 혈압약, 고지혈증약, 감기약 등의 간단한 약 처방을 받기 위함이지만, 때론 긴급한 상황에 응급처치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정식 진료는 큰 병원으로 가야 하지만 다친 직후 빠르게 처치하느냐 마느냐가 또 중요하잖아요. 보건지소에서 응급처치하고 이송하면 예후도 훨씬 좋죠. 그런 식으로도 종종 이용들 해요." (김순화 씨, 63)

보건지소는 안녕한가

 김순화씨.
김순화씨. ⓒ 월간 옥이네

허리 통증 치료를 위해 보건소에 종종 들르곤 하는 김순화씨는 "마을에 보건지소가 있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지만 "옥천군에서 근무하는 공보의 수가 줄며 매일 운영하던 외과와 한의과가 이젠 번갈아 운영되는 건 아쉽다"고 덧붙인다. 자주 보건지소를 이용하던 주민이기에 느끼는 아쉬움은 더 클 테다.

올해 옥천군에서 근무하는 공보의 수는 14명으로, 이는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2022년엔 17명, 2023년엔 15명이 근무). 이중 보건지소 소속으로 근무하는 인원은 8명(의과 4명, 한의과 3명, 치과 1명), 여기에 보건소 소속 한의과 공보의가 동이보건지소 순환근무를 서며 8개 보건지소 운영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

공보의 인원 축소는 매년 제기되어온 문제이지만, 지난 2월 시작된 의료파업의 여파로 4주마다 1명의 공보의가 인근 대형 병원으로 파견되는 등 그 부담은 또다시 농촌에 지워지고 있다.

인력 부족은 곧 보건지소의 역할 축소로 이어져 왔다. 한 달에 한 번은 보건지소에 방문해 혈압약과 고지혈증약을 처방받는 박정희(81)씨는 "예전엔 의사(공보의)들이 보건지소에 늘 있었고, 물리치료도 받을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전에 있던 물리치료실 정말 잘 이용했는데, 없어지고 나서는 약 탈 때 빼고는 안 가게 됐지. 10년 전에 양 무릎 수술을 하고, 4년 전엔 허리 수술을 했어. 물리치료를 받으면 후유증으로 생긴 통증이 좀 가시는데, 이젠 치료를 받으려면 옥천읍까지 가야 해."

 박정희씨.
박정희씨. ⓒ 월간 옥이네

안남보건지소는 2002년 한 차례 증축을 거치며 상설 한방진료실이 신설되는 등 역할 확대에 기대감이 모아졌다. 당시 보건지소 1층에는 진료·처치실, 물리치료실, 민원대기공간이, 2층에는 치과실, 한방진료실 등이 배치됐으니, 실제로도 주민들이 가장 활발히 보건지소를 이용한 때였을 테다.

1995년 연주리에 정착해 자녀를 키운 조명숙(64)씨는 "아이들의 간단한 치과 진료는 보건지소에서 받았다"며 "당시 어린이들 또한 보건지소를 자주 이용하곤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자녀들이 초등학교 2, 4학년이던 때 보건지소 소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기억도 있다고.

"부모들은 일을 나가니까 낮에는 마을에 아이들끼리 놀고 있잖아요. 어느 날 아이들 둘이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넘어져 턱이 찢어진 거죠. 보건지소에서 치료할 수 없는 수준이라 119를 불렀는데, 애들이 구급차는 무섭다고 하니 소장님이 자차로 아이들과 옥천읍 소재 병원까지 같이 다녀와 주셨어요."

마을 주민들이 보건지소를 자주 오가며 친밀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을 어린이들이 다치면 보건지소로 쫓아갔을 정도"였던 관계는 이제 "안 간 지 오래 돼서 언제 어떤 진료를 보는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변했다.

"관공서 중 제일 먼저 쪼그라드는 게 보건"

조명숙씨는 "마을 인구가 줄면서 면 소재 관공서 중 제일 먼저 쪼그라드는 게 보건소"라 말했다. 고령 주민의 증가로 마을의 보건의료 수요는 증가하지만, 주민 건강에 긴밀한 역할을 하는 보건지소는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보건지소가 활발히 운영될 때는 저도 젊었으니, 필요를 덜 느꼈어요. 아플 일도 적고, 기동력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아플 일이 많고, 보건지소가 더 필요하거든요. 지금의 보건지소를 가장 많이 이용하시는 연령대도 60대 이상, 병·의원으로의 이동이 쉽지 않은 주민들이고요."

각 면 소재지에 1개소씩 운영되는 보건지소 중 안남면처럼 보건지소가 사실상 유일한 면 지역 의료기관인 곳은 5개 지역(▲안남면 ▲안내면 ▲동이면 ▲군서면 ▲청성면)이다. 이원보건지소는 8개 보건지소 중 유일하게 월·수·금요일 외과 진료와 함께 상시 치과 진료를 제공하는데, 이를 제외한 7개 보건지소에서는 안남보건지소와 동일한 의과, 한의과 순환 진료만 제공한다(각 지소마다 요일별 진료 항목은 상이).

 충북 옥천 안남보거지소.
충북 옥천 안남보거지소. ⓒ 월간 옥이네

옥천군보건소 보건행정과 이응주 과장은 "보건소에서도 마을에서의 보건지소와 진료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주민 인구 감소로 진료 인원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감안해 현행대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보건지소나 진료소의 주요 역할은 치료가 아니라 상시로 주민 건강을 확인할 수 있는 접근성에 있기에 방문 검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보건지소 운영을 추진할 것"이라 덧붙였다.

송윤섭 옥천군의회 의원은 "지역은 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의료기관이 축소되고 있지만, 실거주자 중 고령 주민의 비율이 늘어나며 의료의 필요성 또한 강화되는 추세이기에 공공의료만큼은 시장 경제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현행 유지가 아닌 공공의료 강화"를 주장했다.

현재 옥천군의회는 공공의료기관의 수행 영역 확장을 목표로 옥천군에 보건지소 및 진료소 처방 영역을 확인할 수 있는 행정감사 목록을 요청한 상태다. 송윤섭 의원은 "최근 들어 보건지소에 갔다가 상주하는 공보의가 없어 돌아오는 주민 경험이 늘어나고 있다"며 "해당 자료를 기반으로 주민들이 병원에 가기 전 간단한 응급처치와 만성질환에 대한 약 처방 등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진료 서비스를 편리하게 누릴 수 있도록 지자체와의 소통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월간옥이네 통권 88호(2024년 10월호)
글‧사진 이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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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지소#의료사막#의료절벽#충북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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