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백만 지구인 양성론 - 3

<김현종의 영국이야기 5>

등록 2000.11.28 16:54수정 2000.11.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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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國(개국)이 아니라 開民(개민)이다.

내 얘기는 따라서 단순히 내압을 낮추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내압으로 인해 피지도 못하고 져버리는, 소모적 경쟁에 에너지를 다 소비하는 현재의 경쟁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는 얘기다. 직접 공략이 어려우면 우회해서 판을 키워 재진입을 시도하자는 주장이다.

사회가 기회를 부여하지 않으면 해외에서 창출하자는 주장이다.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주저 앉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아깝고 나라가 처한 현실이 급박하다.

대대적인 제2의 開國(개국)이 필요하다. 정확히 말하면 開民(개민)이다. 개개인이 세계에 문을 열고 다시금 자신과 가족의 21세기를 설계해야 한다.

당신은 직장에서 학교에서 내압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가. 발전을 위한 비전을 찾는데 실패하고 있는가. 흔히 말하는 2류 인생인가. 그럼 밖으로 나가라. 이게 내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다. 나가서 새로운 차원의 경쟁력을 확보해 돌아오라. 그것으로 당신을 괴롭힌 사이비 1류들을 제압하라. 또는 밖에서 사는 게 좋으면 거기서 만족하고 살면서 2세를 키워라. 돌아오지 않는 히스클리프도 충분히 멋있다.

당신은 이른바 1류 인생인가.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바라는가. 그럼 나가라. 조만간 당신의 1류 인생을 위협할 많은 신인간들이 나타날 것이다. 경쟁없는 세상은 이미 지났다. 판을 키워 국제적인 게임을 한국인들끼리 하자. 좁은 땅덩어리에서 너 가르고 내 가르고 살기에는 세상은 넓다.

이렇게 애기하면 어떤 분은 김우중식 사고의 연장이라고 지적할 것이다. 김우중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그의 중진국 진출 전략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 그의 잘못은 국내 시장이냐, 세계 시장이냐, 세계 시장이라면 그중에서도 어느 쪽이냐는 방향을 잘못 선택한데 있지 않다. 그의 세계경영 전략은 기본적으로 우수한 개념이다. 다만 불필요하게 사업을 방만하게 벌인데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향이 시골인 사람들에게 묻겠다. 서울 가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인가. 김우중의 잘못은 외국으로 간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외국에서 분수에 넘치게 땅사고 공장사고 빚낸 게 잘못이다.

우주로 나갈 수 없으면 해외로 나가야 한다. 어떻게 나갈 것인가. 무작정 나가면 되는가.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은 어떻게 나가느냐에 대한 내 나름의 소견이다.

주특기가 두 개여야 하는 힘든 사회

나는 '시작이 반이다'는 속담과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다소 상반된 속담 중에서 뒤의 것을 주장하고 싶다. '시작이 반이다'며 일단 벌여놓고 보는 것도 훌륭한 전술이다. 다만 최소한도의 기초 준비는 긴요하다는 점에서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에 더 기운다.

일단 대상 국가를 선정하고 익혀야 한다. 언어를 익히고 그 나라에 대한 자료를 모아야 한다. 그것이 공부하러 가는 것이든, 사업하러 가는 것이든 알아야 한다. 그 뒤에 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은 쓸만한 보조수단일 것이다. 언어 공부를 하면서 인터넷을 서핑하는게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이제 인터넷 포르노는 덜 보자. 인터넷 상의 GI문화는 이제 청산할 때가 됐다.

다음으로 당신은 더블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미장이를 예로 들면 미장이 일만 할 줄 알아서는 안 되고 색깔 감각까지 있어야 한다. 개개인이 주특기를 복수로 보유해야 한다. 참호병으로서 소총만 쏠 줄 알아 가지고는 안된다. 소총수라 하더라도 통신이나 위생병 특기, 주방 특기가 있어야 한다. 두 개를 할줄 알면 참호에서 벗어나 인생의 각개 전투를 좀더 쉽게 치를 수 있을 것이다.

때로 당신은 인도의 신흥공업도시에서, 아프리카의 가봉에서, 파리의 패션가에서, 혹은 캐나다의 냉대림 속에서, 남미의 빈민촌에서 각개전투를 치를 수 있다. 나는 다행히도 한국 사람은 그런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한국 사람은 기회를 주면 붙잡을 줄 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기회이지 능력이 아니다.

언어를 익히고 정보를 모으고 제2의 주특기를 개발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당신의 일생에서 외국어, 해당국가에 대한 정보수집, 제2의 특기 개발에 필요한 2-3년은 짧은 시간이다. 혹 나가지 않더라도 먼저 나간 사람들의 국내 거점 역할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다.

분노 에너지를 성과로 연결하기

나가는 사람들은 가급적이면 젊은 사람이면 좋겠다. 젊음과 체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물리적 연령보다는 한국에서 속이 많이 끓는 사람이면 더 좋을 것이다. 사람을 분발시키는 데에는 기쁨보다 분노가 더 큰 역할을 한다고 나는 믿는다.

20대 인구 8백50만명 중에서 일시에 1백만이 나가도 국내에 7백50만명이 남는다. 20대 8백50만명이 3부 교대로 3년씩 나갔다 오고, 그중 3분의 1이 현지에 상주한다고 치면 대한민국 전체적으로는 1백만명의 純減(순감)에 불과하다. 10대에서 50대까지 각 세대별로 1백만명이 항상 나가 있고 그만큼의 수자가 해외 체류 경험을 갖고 있다면 이미 8백만명이다. 10년을 한 주기로 계산할 때 통산 '7백만의 한국계 지구인'은 그리 많은 수자가 아니다. 어렵지 않다.

아울러 이들이 다 경제동물이 될 필요는 없다. 해당국가에 대한 종합적 이해 자체가 가장 큰 자산이다. 7백만중 2백만 정도는 현지에서 사업이나 봉급쟁이로 종사하고 2백만명 정도는 그 나라의 전반적 문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봉사활동이나 학업에 주력해도 좋을 것이다. 3백만명은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서 외국과 관계된 업무에 종사한다면 한국의 국제 경쟁력이 훨씬 증가하지 않을까.

한번 이렇게 길을 뚫으면 먹고 살 자리는 많이 생긴다. 모든 사람이 다 무역해서 먹고 사는 것은 아니잖은가. 성직자, 교원, 여행사, 하다못해 하숙을 치고 구멍가게를 해서라도 수많은 부수적 고용이 창출된다.

한국만이 가진 숱한 장점

생각해보라. 한국에 제대로 된 브라질 전문가가 20만명이 있다면 우리 마음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주변 4대 강국에 각각 50만명씩의 전문가를 할애하더라도 5백만명이 남는다. 10만명의 아르젠틴 전문가, 10만명의 스페인 전문가, 8만명의 우크레이나 전문가, 3만명의 라오스 전문가.

한국의 정치-경제- 문화 지도는 전혀 달라진다. 정치-경제-문화 뿐만이 아니라 정신과 사회, 제도의 지도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한국어와 한국인이라는 공통의 생태계 안에서 다양한 문화간의 상호 충돌과 접촉은 한국을 총체적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한국이 유엔이 되고 한국의 실질적 영토가 전세계로 확장된다.

한국계 지구인의 구체적 활동 방향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화교와 유태인 모델에 대한 벤치 마킹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한국이 중간 크기의 국가라는 점을 나는 희망적으로 본다. 유태인의 모국 이스라엘은 너무 작다. 반면 중국인의 모국은 너무 크다. 한국은 큰 나라나 작은 나라나 골고루 상대할 수 있다. 각종 무역 외에 관광과 학술 분야에서 협력을 할 수 있을뿐더러 한국의 국가 현대화 경험, 정보통신, 컴퓨터, 전자, 요리 등 눈에 보이는 교환목록만 해도 보따리가 무겁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문화를 거래하는 상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문화가 바로 財貨(재화)다.

나는 로마의 한국 사람 민박집에 묵으면서 만난 우리의 젊은 친구 김 씨를 잊지 못한다. 30대 초의 부부가 서울에서 섬유 업체에 다니다가 이태리어를 배우러 2년 예정으로 건너왔다. 왜. 영어로 무역하는 것보다 이태리어를 할 줄 알면 훨씬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는 말했다.

이태리어를 배우고 이태리 섬유 제품의 생산과정과 유통 경로에 대해 알게 되면, 그래서 이태리 제품의 장점과 단점을 알게 된다면, 그는 이태리 옷을 한국에 파는게 그치지 않고 이태리가 현재 점유하고 있는 세계 시장을 잠식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의 꿈이었다. 이를 위해 부인과의 합의아래 아이 낳는 것도 미룬 채 동굴같은 1.5평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태리 말을 배우기 위해 학원이 끝나면 집에 와서 무료전화번호를 돌리면서 산 회화공부를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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