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백만 지구인 양성론 - 4

<김현종의 영국이야기 5>

등록 2000.11.28 16:55수정 2000.11.2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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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빠져야 성공한다

7백만 지구인 양성계획에서 정부와 민간 단체의 역할은 무엇일까. 나는 이 계획이 대대적인 국책사업으로 추진할 경우 생길 여러 부작용을 우려한다. 에컨대 한낱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고 특정국가와의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대신 민간 단체, 민간 기업,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우리 공직사회의 단점 중 하나가 바로 뭐 하나 괜찮은 게 있다 싶으면 지원책을 퍼붓는 것이다. 助長(조장)한답시고 사실은 웃자라 말라죽게 했다. 벤처기업 지원이 대표적인 예이다. 정부의 올바른 역할은 조장이 아닌 誘導(유도)일 것이다. 해외로 진출하는데 막힌 것을 뚫어주는 역할 정도를 기대한다. 예컨대 까다로운 미국 비자 발급절차를 개선하기 위해 무비자 국가로 인정받도록 적극 힘쓴다든지. 일단 출국한 교민 보호에 총력을 기울인다든지.

정치권과 언론은 그간 뭔가 괜찮고 새로운 것을 공급하기보다는 그러한 것이 나타나면 그간의 경과를 주욱 설명한 뒤 "정부의 대책은 뭐냐"고 따졌다. 변명을 많이 하고 싶은 정치인, 매체일수록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사정없이 정부를 닥달했다. 만만한 공무원은 혈세 퍼붓는 제도를 수없이 마련했고, 그러면 이들은 "음 좋아, 나도 내 할 일 했어" 해왔던 게 지금까지의 일반적 추세였다. 이제 이런 건 탈피하자. 그러지 말자고 지구인을 양성하는 것이니까.

민간이 한다면 어떻게 할까. 우선 경제단체, 대학, 방송사 등은 외국의 현실에 대한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많이 공급하는게 가장 간단하고 의미있는 협조일 것이다.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세계 1백90개국에 대해, 큰 나라는 각 민속-인종단위 지역까지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는건 방대한 작업이다. 대략 전 세계를 3백개 정도의 국가-민속-인종 단위로 구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공지영과 이문열이 국민에게 빚 갚는 길

관광 안내 책자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굳이 새로 할 필요 없다. 역사, 지리, 풍습까지 깊이 있게 공급해야 한다. 다 망한 북한정권 만큼은 치밀함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코미디같은 북한 정부도 특수부대원들에게 훈련소 내에 서울 시내 모형을 만들어놓고 도상 침투 훈련을 시켰다. 명색이 한국의 내로라는 기관, 학교에서 하는 일이 그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국내에 사장된 국제 인력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전직 외교관, 상사원, 해외 거주 교민중 고급 인력이 자신의 경륜을 못 살리고 다른 종류의 생업에 종사하거나 놀리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사람들이 마음껏 지구인 희망자들과 만날 공간이 만들어져야 한다.

학자들과 예술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왜 시오노 나나미같은 작가겸 학자가 없는가. 시오노 나나미는 당대의 유럽을 얘기하는 게 아니지만 그의 작품 하나 하나가 훌륭한 국제화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우리 작가들중 상당수는 언제까지 개인의 감수성을 향유하고 자극하는 글로써 생업을 영위할 것인가. 환갑이 지난 박완서 씨에게 티벳 기행문 이상을 기대하기는 육체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공지영 씨나 최영미, 이문열, 장정일 씨 같은 사람은 현재 자신의 명성이 한국어와 한글을 사랑하는 국민으로부터 받은 은혜라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평소 관심있는 나라로 가서 최소한 몇 년 살다가 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빛나는 감수성으로 직접 체험한 경험담을 국민의 것으로 만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제발 한국 문학에 등장하는 형용사와 부사와 동사는 충분하니 이제 名詞(명사)를 늘려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왜 우리 학자들은 외국의 이론을 가져와 곶감 빼먹듯 소개만 하고 자신이 유학시절 보고 느낀 문화적 경험과 진취적 자세는 보급하지 않는가. 학자들도 살아 있는, 실용성 있는 국제화에 주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문적 순혈주의라는 배타적 성벽에 안주해 보고 싶은 현실만 보지 말고 시민의 옆으로 다가와 세계와 지구를 주제로 토론하고, 책을 쓰고, 감수성을 개발시켜 주면 좋겠다.

甲男乙女 당신이 주인공이다

방송사는 특히 "이 나라에는 이렇게 희한한 풍물이 있다"는 식으로 토막 정보를 제공하지 말고 장기간에 걸친 심층 취재물, 현장 학습서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재미보다는 지식에 치중한 탐사물을 보고 싶다.

그리고 한국에 카네기같은 부자는 없는가. 자신의 전 재산 수천억원을 기부해서 대규모 국제 교류재단을 만들 사람은 없는가. 돈없는 젊은이들이도 원하기만 하면 1-2년 평화봉사단 나갈 기회를 만들어줄 독지가는 없는가.

정치권과 언론에는 특히 당부를 많이 하고 싶다. 제발 "대규모 이민 사태", "젊은 층 한국 탈출"식으로 문제를 감성적으로 접근하지 말아달라. 아울러 일단 나간 사람들이 부당한 상황에 놓이면 공론화해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이끌어낼 일이지만 "어느 나라에 나간 아무개가 이렇게 웃기는 꼴을 당했더다라"며 짐짓 분개하는 논조로 상업행위를 하지 말아달라. 그런 사례는 차라리 모두 모아 유형별 교본으로 만들어 대처토록 해주는게 성의있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국가 중대 국면을 맞아 능력있는 한국계 지구인이 긴하게 요청된다. 그리고 그 주역은 이땅에서 별로 빛보지 못했던 평민의 아들딸 바로 당신, 甲男乙女(갑남을녀)다. 임진란 때에나 병자란 때에도 나라를 지킨 평민이었다.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 존엄성을 지키고 가족과 친지를 책임지기 위해. 인간으로서 창피당하지 않고, 최소한 쪽팔리지 않고 살기 위해 국민이 먼저 깨자. 밖으로 나가자.

그렇지 않으면 1876년의 굴욕적인 문호개방에 이어 두 번째로 타의에 의한 개방이 올지 모른다. 마치 임진란 뒤에 지도층의 무능력과 안일이 병자란을 불렀듯.

글로벌 경제는 결국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일반 대중의 고혈을 쥐어짜내려는 국제금융자본의 음모다. 이에 먹히지 않는 길은 현재의 제도 내에서 경쟁력을 유지 보수하는 한편 우리 스스로가 세계인과 더 많은 교분, 더많은 관계를 맺어 돌파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선의 수비는 공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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