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대사건 '민주화 인정' 못한다면
'내 안의 폭력' 뒤늦게 눈뜬 자 착시"

'부미방 사건' 주모자의 '치열한 자기성찰'을 보고

등록 2002.07.13 12:13수정 2002.07.1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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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7월 12일자에 실린 문부식 씨 인터뷰 기사.


선생을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글을 먼저 쓰게 되는군요.
이 지면에는 원래 다른 글을 쓸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법무부의 미군당국에 대한 여중생 살해 미군에 대한 재판권 포기 요구와 관련한 조선일보 사설을 꼬집을 생각이었는데 우연히 오늘 자 다른 기사들을 검색하다가(저는 조선일보를 인터넷상으로만 읽습니다) 내일 자 사설 “한 지식인의 치열한 자기성찰” 운운하는 제목을 보고 “어이쿠 또 누가 조선일보 밥이 되나”하고 보았더니 거기 천만 뜻밖에 문부식 선생의 이름이 있더군요. 그리고 서둘러 선생의 대담기사를 찾아 읽었습니다.

'80년대의 폭력과 광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큰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는 그 대담, 나는 읽어보기도 전에 가슴이 떨렸습니다. 곧이어 눈에 띤 것이 “동의대 사건 민주화 인정은 납득할 수 없다”는 말….

그때서야 무슨 이야긴지 감이 잡혀오더군요. 그렇군요. 선생이 주간으로 있는 계간지 <당대비평>에서 얼마 전부터 ‘우리 안의 파시즘’이 말해지는 것을 보고 이제 ‘우리 안의 폭력’, ‘우리 안의 광기’도 조만간 말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동의대 사건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되는 것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할 말’은 있겠지요. 그리고 선생은 용기 있게도 자신이 저지른, 우리가 오래도록 ‘부미방(釜美放)’이라 부르던 그 사건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고 그때의 희생자에게 합당한 사죄를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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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7월 13일자 사설

나는 조선일보 사설자가 이름 붙인 대로 선생의 이런 ‘치열한 자기성찰’에 경의를 표합니다. 반성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치열한 자기성찰은 언제나 빛나는 것이지요. 설사 그 성찰이 섣부르고 성숙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성찰과 반성 그 자체는 언제나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선생의 성찰과 그 성찰을 표백하는 용기, 그리고 그 성찰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는 뜻 자체는 높이 평가합니다.

문부식 선생, 그런데 나는 선생의 성찰 행위 그 자체에는 이처럼 경의를 표하지만 불행히도 그 성찰의 내용에도 또 그 형식에도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입장이 갈리는군요.

나도 개인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할까요? 선생이 부산 미문화원에 불을 질러 ‘반미의 봉화’를 높이 올렸던 1982년, 나는 전주교도소에서 2년째 징역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미방’만큼은 충격적이지는 못했겠지만 아시겠지요? ‘무림사건’이라고. 그 사건의 주동자가 되어 ‘이근안 경감’의 손을 거쳐 국가보안법 사범이 되어 있었지요.

그때 ‘부미방’ 소식을 들었습니다. ‘반미자주화운동의 선구’라구요? 내가 보기보다 심약한 편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나는 솔직히 말해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바로 지금 선생이 말하고 있는 ‘폭력’을 먼저 느꼈습니다. 그것도 ‘성숙하지 못한’ 폭력을 말입니다. 물론 ‘광기’까지는 아니었지만요. 다만 나는 그때 선생과 동갑내기로서 선생 그룹의 ‘내면의 불가피성’을 이해했기 때문에 하나의 상징적 사건으로 ‘수리’하기로 했을 뿐 그 사건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반미자주화운동의 선구’로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나와 같은 ‘학생 사범’들의 도를 넘는 ‘투쟁’에도 늘 못마땅했던 나로서는 이미 ‘우리 안의 폭력’에 대해서는 일정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았군요. 물론 나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한편으로는 내가 진정한 ‘혁명적 인간’이 못되는 것을 자책하기도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위 중에도 전경의 곤봉에 맞으면 맞았지 돌 한번 제대로 겨누어 던지지 못했던 나는 이른바 ‘우리 안의 폭력’에 대한 거부감에 관한 한 선생보다는 20년은 더 선배인 것 같군요.

문부식 선생, 이렇게 보면 선생과 나는 이제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군요. 하지만 선생과 나는 많이 다릅니다. 나는 선생이 저지른 ‘부미방’에 대해서 선생처럼 우리 안의 ‘폭력’을 읽어냈고 그것 때문에 그 사건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데 매우 주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그런데 나는 동의대 사건에 관해서는 선생과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이 ‘목적범’이라면 동의대 사건 관계자들은 일종의 우발적 ‘과실범’아니었던가요. 이 문제는 달리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인간이란 원래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늘 행동 앞에서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성과 결락이, 그 존재의 틈새가 인간을 행동으로 몰고 갑니다. 상황이 너무나 압도적으로 자신을 짓누를 때는, 그 틈새만이 인간을 움직이게 합니다. 그 틈새와 결락과 불완전성에 대한 충분한 인식에 도달하는 순간, 그는 성숙할 수는 있어도 그 상황에 대해서는 패배자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은 40대의 자기 자신으로 20대의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의 인간으로서 80년대의 인간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20대의 자신과 80년대의 삶들을 못 견디게 했던 그 거대한 폭력에 대해서는 마치 남의 일처럼 멀찍이 관조하면서 말입니다.

민주화운동 보상이라는 것, 개인적으로는 명예로울 것도 자랑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선생이 그런 것처럼 부끄럽고 때로는 욕된 것이지요. 다만 그것은 역사의 몫일 뿐입니다. 망각이 심한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조금 더 옳았던 일들과 그렇지 못한 일들을 변별해 남기는 일에 불과합니다.

선생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적어도 80년대를 그래도 엄청난 폭력과 맞서 싸워 온 모든 사람들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그 시절 자기 안에 들어있던 폭력과 심지어는 광기와 때로는 어설픔에 대해 다들 나름의 성찰과 반성을 지불했거나 지불하고 있습니다. 다만 드러내 중뿔나게 말하지 않을 뿐이지요.

지금 만일 한국사회가 조금이라도 성숙했다면 그것은 민주화 ‘투쟁’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이미 그에 대한 성숙한 성찰의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선생은 조금 늦었군요. 혹시 선생 안에 특별히 많이 내장되어 있던 폭력과 광기에 새삼 눈이 뜨이면서 세상사람 모두가 선생과 같은 수준인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착시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엄살떨지 마세요. 다들 선생만큼은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더 많은 말을 나누기에는 이 지면은 너무 짧습니다. 다른 지면, 다른 자리가 필요할 듯합니다. 하지만 꼭 한 마디 더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니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선생과 김기철 기자 사이에 이루어진 이 7월 12일자 조선일보 인터뷰는 물론 조선일보 측의 요청에 의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조선일보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군요. 폭력에는 국가의 폭력과 나의 폭력만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폭력을 사주하는 말과 글의 폭력도 폭력이라면, 폭력을 문제 삼는 인터뷰를 수 십 년간 파시즘적 폭력의 사주와 고무, 최소한 묵인에 앞장서온 조선일보의 기자와 마주앉아 진행하는 동안 좀 불편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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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문학평론가 ⓒ 희망네트워크

그리고 조선일보가 선생의 이 때늦은 대오각성을 어떻게 대서특필할지 그리하여 존재의 온 무게를 걸고 잘못된 상황에 맞섰던, 그리하여 때로는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을 모욕하고 매도하는 데 이용할지 생각해 보지 않았나요? 좀 스스로 철없다는 생각 들지 않나요? 마치 새 사탕을 손에 쥐면 쥐고 있던 다른 사탕을 손에서 놓치는 아이처럼 하나를 반성하는 데 골몰한 나머지 중요한 다른 하나를 잊은 것은 아닌가요?

쓸데없는 소리가 너무 길었군요. 아직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동년배의 전직 혁명가에게 아직 한번도 혁명가가 되어보지 못한 심약한 문사가 이렇게 예의 없는 글을 불쑥 내밀어 미안합니다. 부디 편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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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 4>는 7월 16일(화) 방인철(前 중앙일보 문화부장)씨의 글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가 7월 9일(화) 출발로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릴레이로 이어간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김명인씨 외에도, 방인철 전(前) 중앙일보 문화부장,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남북문제 전문가 김창수씨,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최민희 사무총장, 권오성 목사, 상지대 서동만 교수, 김택수 변호사, 한서대 이용성 교수, 소설가 정도상씨, 대학생 오승훈씨 등 각계 전문가가 참여한다.

이처럼 다양한 구성을 가진 '13인위원회'는 일간신문을 주요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작업과 함께 칼럼 형식의 신문비평을 오마이뉴스에 지속적으로 기고할 예정이다. - 편집자주

덧붙이는 글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가 7월 9일(화) 출발로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릴레이로 이어간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김명인씨 외에도, 방인철 전(前) 중앙일보 문화부장,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남북문제 전문가 김창수씨,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최민희 사무총장, 권오성 목사, 상지대 서동만 교수, 김택수 변호사, 한서대 이용성 교수, 소설가 정도상씨, 대학생 오승훈씨 등 각계 전문가가 참여한다.

이처럼 다양한 구성을 가진 '13인위원회'는 일간신문을 주요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작업과 함께 칼럼 형식의 신문비평을 오마이뉴스에 지속적으로 기고할 예정이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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