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함성에 묻힌 수류탄 폭음

[제보취재-군대 내 사고, 이름없는 주검 ①] 88년 육군 22사단

등록 2005.06.30 03:25수정 2005.07.1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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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방 GP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총기 사고와 유사한 사건은 과거부터 계속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과거 독재 시절, 언론 등에 공개되지 못하고 사인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채 유가족들의 가슴 속에만 묻어야 했던 사건이 많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그간 본사에 접수된 군 관련 사건 제보 중 사실로 확인된 건에 대해 '군대내 사고, 이름없는 주검'이라는 제목의 제보 취재 기사를 내보냅니다...편집자주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9월 16일. 온 나라는 첫 올림픽 개최 흥분에 들떴다. 16년만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모두 참가한 사상 최대의 서울올림픽. 많은 국민들이 열광했던 건 당연했다.

모두가 기뻐하던 그날 밤, 강원도 고성의 전방 GOP 부대 내무반에 수류탄 2개가 폭발하고 총기가 난사되는 사고가 벌어졌다. 병사 6명이 사상을 당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올림픽 열기에 휩싸인 탓인지, 아니면 군 당국이 은폐를 했는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올림픽이 개막된 17일자 많은 신문들은 평소보다 두 배 많은 지면을 발행했다. 그러나 올림픽 소식만 가득할 뿐 전방 병사들의 죽음은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그렇게 22사단에서 일어난 사고와 병사들의 죽음은 조용히 묻히고 말았다.

무기고 열쇠가 이등병의 손으로

88년 9월 16일 밤에 이뤄진 총기난사 사건은 박아무개 이병이 일으킨 것이다. 박 이병은 입대 4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고참들로부터 수많은 구타를 당했다. 결국 박 이병은 수류탄과 실탄을 자신의 손에 넣는 순간 고참들에 대한 분노를 '무서운' 방식으로 표출했다.

88년 당시는 올림픽 개최 탓에 군부대에서는 '북한 남침설' 등이 나돌며 많은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나 무기고의 열쇠가 박 이병의 손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상식 이하로 허술했다.

그날 일몰이 시작될 즈음 전체 소대원 3분의 1일의 대원들은 전방 GOP 근무를 마치고 다음 조와 교대했다. 근무 복귀를 마친 이들은 상황병에게 탄약을 반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대에서 고참이었던 상황병은 탄약 반납 업무를 후임병에게 맡기고 올림픽 전야제 시청을 위해 사라졌다.

그 후임은 또 후임병에게 맡기는 과정이 이어져 결국 무기고 열쇠는 입대 4개월 차인 박 이병에게 전달됐다. 결국 박 이병은 무기고에 있던 수류탄 두 개를 내무반에 투척했다. 그리고 아수라장이 된 내무반에 총기를 난사했다.

육군의 한 관계자는 "당시 사건으로 두 명의 병사가 사망했고, 네 명이 다쳤다"며 서울올림픽 전야제 때 일어난 이 사건의 실체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오마이뉴스>에 알려온 전아무개씨는 "이번 연천군 GP 사건과 비슷한 규모의 희생이 있었다"며 육군과 다른 주장을 폈다.

사고 은폐는 무서운 재앙을 불러온다

전씨는 "당시에는 서울올림픽 탓에 복무기간을 채운 병사들의 전역 명령이 잘 내려지지 않았다"며 "많은 선임병들이 길게는 3주일 동안 전역이 늦춰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전씨는 "사고 희생자 중에는 전역 만기를 초과한 병사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사고가 일어난 내무반 바로 옆 소초에서 근무하고 있어 화를 면했다. 전씨는 "당시 사고의 보안과 관련 특별히 지시받은 것은 없지만 밖에서 사고를 이야기하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고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이 사건은 군에서 사고사례교육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 사건보다 앞선 84년 같은 22사단에서는 조아무개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 3개를 던지고 총을 난사해서 병사 15명이 숨진 사건도 있었다. 역시 이 사건도 은폐된 채 최근에 와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군대 내 총기 난사 사고의 대부분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고를 일으킨 병사들은 이번 연천군 GP의 사고처럼 일병이거나 이병이다. 은폐된 군대 내 사고는 더욱 큰 재앙으로 찾아와 소중한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지난 19일 연천군 GP 총기난사 사고가 일어난 28사단은 20년 전 비슷한 사고를 은폐한 전력이 있다. 이번 22사단도 마찬가지다. 은폐는 무서운 반복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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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취재 2] 84년 육군 53사단 - 하사가 고참사병 한 명씩 불러내 '처형'


"한번은 맞아야 잠이 오던 숨죽인 세월"
은폐된 군대 사건사고 제보 일주일 동안 70여건

"선임들의 지나친 괴롭힘에 동료 ○○ 하사는 소총으로 자살"
"선임은 항상 취침. 후임은 쪼인트 까이면서 후방경계. 북한 공작원 몇 번은 넘어왔을 것"
"사고가 발생하면 무조건 쉬쉬 하며 덮어두려던 간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순서대로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역시,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할 이야기가 많았다. 자살한 동료의 이야기에서부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알몸 진급식' 사연까지.

<오마이뉴스>는 지난 22일부터 '은폐된 군대내 사망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70건에 가까운 제보가 접수됐다. 물론 여기에는 중복된 제보도 있다. 지난 84년 전방 내무반에 수류탄 3개를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해 병사 15명이 사망한 22사단 사건은 동일한 사건이 7건이나 제보됐다.

제보는 총기 난사에 의한 사망사고에서부터 고참들의 가혹행위까지 다양했다. 또한 이미 세상에 알려진 사망 사고지만 군 당국의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며 의문사를 제기한 사람도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중대에서 사격 훈련 중 소대장이 '사격을 제대로 못한다'며 병사들을 세워 놓고 총질을 했다. 물론 조준 사격은 아니었으나 부하를 향한 총질은 몰상식하기 그지없는 짓이다."

80년대 서울 인근에서 군대생활을 한 윤아무개씨의 말이다. 윤씨는 "필요하다면 당시 가해자와 대질을 할 용의가 있다"며 치를 떨었다.

<오마이뉴스>가 은폐된 군대내 사망사건 제보를 받는 것에 불쾌감을 표시한 사람도 있었다. 4년 전 인사 장교를 지냈다는 장아무개씨는 "군대에서 사고는 매일 일어나는 일"이라며 "자꾸만 군대에서 일어난 사고를 외부에 폭로하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보자들은 "이번 GP 사고를 기회로 밝힐 것은 밝히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 군대 내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는 젊은 장병들이 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동료 장병들의 사고사를 전한 김 아무개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루에 한번은 맞아야 편하게 잠을 자던 세월이었다. 다들 그렇게 말도 못하고 살았고, 그것을 말하면 영창 간다고 했기 때문에 숨죽이고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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