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는 저절로 난사되지 않는다

[군대 내 사고, 이름없는 주검 - 최종회] 우발적인 사고 찾기 어려워

등록 2005.07.19 06:38수정 2005.07.26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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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방 GP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총기 사고와 유사한 사건은 과거부터 계속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과거 독재 시절, 언론 등에 공개되지 못하고 사인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채 유가족들의 가슴 속에만 묻어야 했던 사건이 많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그간 본사에 접수된 군 관련 사건 제보 중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실 등을 통해 사실로 확인된 건에 대해 '군대내 사고, 이름없는 주검'이라는 제목의 제보 취재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기사는 그 마지막회입니다. <편집자주>
연천군 최전방 GP 총기난사가 발생한 지 1개월이 지났다. 지난 1개월만큼 군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뜨겁게 떠오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 사이 "후회하지 않는다"던 '유일한' 가해자 김 일병은 "죽는 날까지 반성하겠다"며 바뀐 태도를 보였다. 부소초장을 지낸 최아무개 하사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명령 위반 혐의로 김 일병과 함께 지난 15일 기소됐다.

김 일병이 잦은 언어 폭력으로 사건을 일으켰다고 했을 때 세상은 크게 놀랐다. 어떻게 말 몇 마디 때문에 사람을 그토록 참혹하게 죽일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거 사고를 보면 언어 폭력은 총기난사의 주된 원인 중 하나였다.

언어 폭력은 총기난사 사고의 주된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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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 사망 병사들 합동영결식 장면. 고인들의 관이 동료병사들에 의해 영결식장으로 운구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990년 10월 19일. 5사단 36연대 10중대에 소속된 이아무개 이병은 저녁 GP 근무를 마치면서 수류탄 하나를 절취했다. 자신보다 1개월 먼저 입대한 한아무개 이병을 살해하기 위해서다. 이 이병은 모든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며 잔소리와 욕설을 퍼붓는 한 이병을 증오했다.

결국 다음날 새벽 3시께 이 이병은 절취한 수류탄을 잠에 빠진 한 이병의 허리 밑에 넣어 터뜨렸다. 1개월을 사이에 두고 선임병과 후임병으로 만난 두 20대 청년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지난 84년 22사단 GP 근무중 내무실에 총기를 난사해 병사 15명을 사망케 한 후 북으로 도주한 조아무개 일병 사건. 대한민국 군 역사상 최악의 총기사고로 기록된 이 사고의 원인 중 하나도 언어 폭력이었다. 이 사건을 조사한 기무사의 문서에는 "병장 한○○의 과격한 언행에 (조 일병의) 평소 억압된 감정이 폭발하여 (사고가) 발생"했다고 적시돼 있다.

이런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어도 군의 폭력 문화는 바뀌지 않았다. 4년이 지난 1988년 9월 16일, 최악의 총기난사 사고를 치른 22사단에서 이번엔 수류탄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강원도 고성군의 한 부대에서 근무하며 평소 두 명의 고참으로부터 온갖 폭행을 당한 이아무개 이병. 모든 소대원을 죽이겠다는 이아무개 이병의 결심이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입대 이후 계속 폭력에 시달린 이 이병은 저녁 8시께 병사 34명이 모여있는 내무반에 수류탄 두 개를 투척했다. 이 사고로 박아무개 병장과 남아무개 일병은 전신에 파편창을 입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나머지 병사들도 모두 수류탄 파편에 맞아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를 일으킨 이 이병은 현재 무기수로 복역중이다.

총기는 저절로 난사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오마이뉴스>가 사실 확인을 거친 군대 내 총기난사 사고를 종합해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사고가 일어난 부대는 사병들 사이에 육체적 혹은 언어적 폭력이 만연돼 있다. 또한 사고는 직접적인 폭력을 당하는 이병이나 일병이 일으킨다. 특히 대부분의 사고는 결코 우발이 아닌 계획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한마디로 총기는 저절로 난사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적이 아닌 동료를 향한 총기난사는 더더욱 그렇다. 지난 6월 최전방 GP에서 동료 8명을 사망케 한 김 일병이 평소에 범행을 계획했다고 했을 때 세상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대한민국 군대의 총기난사 역사를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발적으로 발생한 총기난사 사고를 찾기 어렵다.

2004년에 군 복무 중 사망한 병사는 총 134명이다. 95년 330명 사망한 것에 비하면 10년만에 절반 이하로 준 것이다. 90년대 중반이후 사망자 수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래도 여전히 군대 내 사망 사고는 다른 사회 조직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군대 사망 사고를 줄이는 길은 대한민국 군대 총기난사의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 어떤 분노와 증오가 방아쇠를 당기고 수류탄의 안전핀을 제거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지 '죽음의 기록'은 스스로 웅변하고 있다.

연천군 GP 사건가 일어난 지 1개월. 사고 자체도, 사고를 일으킨 김 일병도 차츰 기억에서 묻히고 있다. 자연스런 일이다. 더 이상 소중한 젊은 병사들이 땅에 묻히는 일만 반복되지 않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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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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