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산사에서 마음 속 찌꺼기를 흘러 보냈다

김구 선생이 숨어 지낸 공주 태화산 마곡사

등록 2007.07.07 14:48수정 2007.07.0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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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 앞에서 바라본 충남 문화재자료 66호 해탈문의 뒷모습. 천왕문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영산전이 있다. ⓒ 안병기

마음을 두 번 씻은 후에야 비로소 닿는 절

아침 일찍부터 비가 내린다. 비 내리는 산사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나를 충동질 한다. 십여 년 전이었던가.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처마에 서서 갑자기 쏟아지던 소나기를 피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덧없는 마음이 일으킨 한 생각이 내 발길을 공주 태화산 기슭으로 이끈다.

마곡사는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614m) 기슭 남쪽에 몸을 감추고 있다. <택리지> '팔도총론' 충청도 편은 이곳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산 위에 맺혀 된 터이나 둔덕이 낮고 평평하여 험하거나 뾰족한 모습이 없으며 산허리 위로는 돌이 한 조각도 없어 살기(殺氣)가 적다. 그러므로 남사고의 <십승기>에 유구·마곡사 두 골짜기 사이를 피란할 만한 곳이라 하였다.

마곡사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걸어간다. 십여 년 전과는 완연히 달라진 사하촌의 풍경이 나를 잠시 낯설게 한다. 비를 맞고 있는 울창한 숲 가운데로 난 길을 걸어간다. 마음이 차츰 숲이 가진 싱그러움으로 채워진다. 아마도 예로부터 '봄마곡 추갑사'라 했던 것은 어쩌면 봄꽃보다 태화산을 둘러싼 신록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뜻인지 모른다.

마곡사는 백제 의자 왕 때 신라 사람인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확한 창건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하였다고 한다. 가장 먼저 나그네를 반기는 것은 해탈문과 천왕문이다. 천왕문 왼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간다. 영산전과 태화선원과 흥성루라는 강당이 있고 그 바로 옆에 명부전이 있다. 이곳이 바로 마곡사의 태자리인 남원 영역이다.

처음 이곳에서 마곡사가 생겨났지만 가람의 규모가 점점 커지자 확장할 수 있는 평지가 있는 북원으로 확대돼 나간 것이다. 그렇게 마곡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자연스럽게 남원과 북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해탈문과 천왕문은 남원 영역에 자리한 영산전 등과는 직각으로 놓여 북원 영역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이 두 개의 건축이 비록 위치적으로는 남원에 가깝지만 실질적으론 북원에 속한 건물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마곡사는 마음을 두 번 씻어야만 닿을 수 있는 절이다. 처음엔 남원 영역에서 씻고 다리를 건너기 전에 다시 한 번 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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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중심이 되는 건물인 보물 802호 대광보전. 뒤로 보이는 건물이 대웅보전이다. ⓒ 안병기

남원 영역을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 빗방울이 더욱 커진다. 억수 같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천왕문을 지나 극락교를 건넌다. 잠시 개울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수많은 동심원들이 물 위를 번져간다. 마곡사의 북원 마당으로 들어선다. 쏟아지는 비 때문인지 마곡사 경내는 텅 비어 있다.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오층석탑과 그 뒤 일직선상으로 놓인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발아래 철벅거리는 빗물을 지르밟으며 대광보전 앞으로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현판의 글씨는 표암 강세황의 글씨다. 약간 흘려 쓴 글씨가 오늘 같은 날씨와 아주 잘 어울리는 듯싶다.

신발을 벗은 후 대광보전 안으로 들어선다. 서쪽으로 마련된 불단 위에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이 동쪽을 향해 앉아 있다. 보통 불상이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고 앉아 있는 경우는 영주 부석사처럼 서방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이 앉아 있는데 이 대광보전의 경우는 특이하다.

바닥에는 참나무 껍질로 짠 30평 정도 되어 보이는 삿자리가 깔렸다. 100일 동안 기도드리며 참나무 자리를 짠 앉은뱅이가 일어서 걸어 나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삿자리다. 이런 류의 전설은 아마도 흐트러지기 쉬운 대중의 발심을 북돋고자 만들어진 신앙적 장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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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보전 좌측 금강역사 벽화. ⓒ 안병기

내가 오늘 마곡사에 온 이유 중 하나는 전에 계룡산 갑사 개산대제에서 만난 법진 스님을 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포함돼 있다. 그때 만난 법진 스님은 범패를 부르는 목 구성이 참 좋았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인 범패는 인도의 소리라는 뜻이다.

언젠가 마곡사를 찾게 되면 스님을 만나 그가 범패를 배우게 된 내력과 소리 공력을 조용히 들어 보리라 생각했다. 종무소에 가서 법진 스님의 거처를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비가 내려 사방이 축축한데 서로 번거로울 일을 사서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마곡사는 그림을 잘 그리는 스님이 많은 도량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볼만한 불화도 많다. 비로자나불 뒷벽엔 수월백의관음보살이 그려져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직접 들여다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대광전 앞뒤를 한 바퀴 돌다가 왼쪽 벽에 그려진 금강역사 그림에다 시선을 맞춘다. 어느 때 누가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채색이 너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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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전과 일본인장교를 살해한 뒤 체포돼 감옥살이를 하시던 김구선생이 탈옥하여 승려로 지내던 당시 거처하시던 건물. ⓒ 안병기

절 마당 오른쪽에 있는 한 그루 향나무를 향해 다가간다. 1896년 명성황후 시해범을 처단한 후 백범 김구 선생께선 이곳 마곡사에서 사미승으로 3년을 은거 수도하셨다.

선생은 이곳에서 득도식을 치르고 원종이라는 법명을 받고 후 하은 스님의 상좌가 되어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부목의 소임을 맡은 그는 나무도 하며 종노릇도 하며 지내셨다고 한다. 이 향나무는 해방 후 이곳에 다시 오신 백범 김구 선생이 은거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심은 것이라 한다.

향나무를 바라보고 섰노라니 김구 선생께서 쓰신 <백범일지>의 부록인 '나의 소원'편 세 번째 장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글이 생각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이 하신 말씀의 취지를 살려 내 어릴 적 친구 임동창은 십수 년 전, <우리가 원하는 나라>라는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한 바 있다. 굿거리장단에 실린 이 노래는 따라 부르기도 쉬운데다 노랫말도 아주 좋다. 임동창의 첫 음반 <신아위(神我爲)>에 실려 있는 이 노래는 역시 군산 출신의 출중한 소리꾼인 김수연이 불러서 노래에 한결 감칠맛을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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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올라가는 계단에서 바라본 비 내리는 풍경.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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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801호 대웅보전. 겉으로 보면 2층이지만 통층으로 뚫려 있다. ⓒ 안병기

대웅보전으로 오르는 계단에 잠시 멈춰 서서 다시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본다. 앞에 보이는 산이 구름에 덮여 있다. 구름은 제행무상을 설하고 거침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영혼의 고단함을 씻겨주는 씻김의 노래 같다. 저 비가 그치고 나면 내 영혼의 무지개가 떠오를까.

대웅보전은 마곡사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서 있다. 건물 크기는 1층 앞면이 5칸, 옆면이 4칸이며 2층은 앞면 3칸, 옆면 3칸 크기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 2층에 걸린 현판은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라고 한다.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이곳 대웅보전의 기둥을 얼싸안고 한 바퀴 돌면 6년이나 수명이 연장된다는 속설이 있어서인지 기둥들이 손때가 묻어 하나같이 반질반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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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앞 벚나무 아래 모여 있는 올망졸망한 돌탑들. ⓒ 안병기

대웅보전 마당 아래로 내려서서 마당 곳곳에 도랑 져 콸콸 흘러가는 빗물을 바라본다. 벚나무 아래에는 올만졸망한 돌탑들이 모여 있다. 이곳이야 말로 민초들의 소박한 꿈이 건설한 불국토인지 모른다.

돌탑을 이루는 작은 돌멩이 속엔 스님의 목탁 소리도 들어 있을 것이고, 태화산 바람 소리도 들어 있을 것이다. 이 형형색색 돌 색깔은 태화산 저녁노을이 물들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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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라마교 풍의 5층석탑과 심검당(정면).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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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검당과 함께 충남 유형문화재 135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고방과 굴뚝. ⓒ 안병기

절 마당 오른쪽 심검당에는 현판이 두 개나 걸려있어 눈길을 끈다. 하나는 청백리로 이름난 송하 조윤형이 쓴 심검당 현판이며 다른 하나는 이응노 화백의 스승이기도 한 해강 김규진이 초서로 쓴 마곡사 현판이다.

심검당은 홑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담 너머로 홑처마 맞배지붕을 목조 건축인 고방을 바라본다. 통나무를 아무렇게나 다듬어 발 디딜 곳을 만든 다음 비스듬히 걸쳐놓은 고방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아주 멋지다. 멋이란 본디 기교를 부린 듯 만 듯한 수수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심검당 담장 가까이에는 기와 조각으로 쌓은 굴뚝이 서 있다. 우리나라 굴뚝은 기능과 함께 멋들어진 조형성을 갖춘 게 특징이다. 경복궁 교태전 뒤뜰 아미산 굴뚝과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 그리고 창덕궁 낙선재의 굴뚝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심검당 옆 굴뚝은 정사각기둥의 형태이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게 하여 바라보는 이에게 상승감을 느끼게 한다. 굴뚝 꼭대기는 연가를 얹어 눈비를 막고 있다. '연가'는 굴뚝 꼭대기에 한옥의 기와지붕처럼 장식된 것을 말한다.

그대 옛 친구이니 푹 젖어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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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좌측으로 난 사잇길로 나가면 청정 계곡과 계곡을 건느는 징검다리가 있다. ⓒ 안병기

다시 대광전으로 올라가 처마 끝에 서서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빗방울은 날줄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렴을 짠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다시 끊어지는 날줄들이 아득한 그리움을 엮는다. 내가 본래 가진 진면목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왔구나. 그리움은 금세 뉘우침으로 변해서 텅 빈 절 마당을 흘러간다.

김구 선생이 은거한 곳으로 전해지는 곳은 마곡사 말고도 한 군데 더 있다. 마곡사에서 500m 거리에 있는 부속암자인 백련암이 그곳이다. 길을 조금 돌아가게 되겠지만 대웅보전 왼쪽 계곡에 가로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백련암으로 가기로 한다.

계곡물이 아직 크게 불지 않아 징검다리는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다. 팔짝팔짝 뛰어서 징검다리를 건너간다. 징검다리는 삶의 은유이다. 사는 것은 이렇게 매순간 조심조심 건너가는 것이다. 이 돌에서 저 돌로 건너가는 순간과 순간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를 건널 때 아무런 아픔이나 뉘우침 없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부딪치고 때로는 굽이치다가 때로는 서로 어깨를 감싸면 흘러가는 계곡물을 바라본다. 때맞춰 고은 시인의 시 '그대 순례' 가 떠오른다.

좀 느린 걸음걸이면 된다
갑자기 비가 오면
그게 그대 옛 친구이니
푹 젖어보아라

가는 것만이 아름답다
한 군데서
몇 군데서 살기에는
너무 큰 세상

해질녘까지
가고 가거라
그대 단짝
느린 그림자와 함께
흐린 날이면
그것 없이도
그냥 가거라 - 고은 시 '그대 순례' 전문


계류를 내려와 천왕문을 지나 해탈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백련암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옛 친구가 자꾸만 몸속을 파고드는 바람에 옷이 다 젖었다. 시인은 그림자 없이도 가라지만 이젠 우산 없이도 가겠다. 온몸으로 비를 맞는 마음이 유쾌, 통쾌, 상쾌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일(월요일)에 다녀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2일(월요일)에 다녀왔습니다.
#태화산 #마곡사 #김구 #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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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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