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정확한 한국어 사용이 필요하다

등록 2007.10.01 10:09수정 2007.10.0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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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중국 등지에서 한국으로 지식이 이동하는 정보유통 체계로 인해 한국어가 외국어에 의해 계속 오염되고 있다. 이는 주로 영어·일어·중국어 서적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어 오염문제는 주로 외래어 남용이라는 차원에서만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외래어 남용보다도 더 본질적인 문제는 한국어 문법의 파괴에 있는 듯하다. 그중에서 그동안 제대로 지적되지 않은 두 가지의 문제점만 다루어보기로 한다.

첫째, 한국어 어순의 파괴가 미세하게나마 일어나고 있다. 한국어 문장은 기본적으로 <주어+목적어+술어>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다음 문장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이질적인 구조가 한국어 문장에 침투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한국 대통령의 방중을 환영했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기본적으로는 <주어부+목적어부+술어부>의 어순을 띠고 있다.

그런데 이 문장 속에는 <목적어+술어>가 아닌 <술어+목적어>의 구조를 이룬 부분이 있다. 영어식으로 말하면, <동사+목적어>의 어순을 가진 부분이다. 바로 ‘방중’이라는 부분이 그것이다.

순서대로 하면 ‘방문하다+중국’이 되는 이 표현은 기본적으로 영어식 혹은 중국어식 표현이다. 정통 한국어 문법대로라면, 이 표현은 “중국 정부는 한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환영했다”가 되어야 마땅하다.


이는 특히 중국어나 한문 문장을 번역하면서 원문 표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데에서 기인한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중국 방문’보다는 ‘방중’이 더 짧고 간편하다는 실용성 등이 작용하여 한국인들이 이런 표현을 선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방중’이 한국어 문법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그 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관용적 혹은 습관적 이해에 불과할 뿐, 과학적 이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표현은 한국어의 과학화에 지장을 줄 것이다.

아직까지는 <주어+목적어+술어>라는 기본 구조가 흔들리지 않고 있지만, 이처럼 미세하게나마 <주어+술어+목적어>라는 영어 혹은 중국어 문법의 요소가 한국어 문장 속에 서서히 침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영어의 전치사(preposition) 혹은 중국어의 개사(介詞)에 해당하는 요소가 한국어 문장에 침투하고 있다. 전치사나 개사는 명사나 대명사의 앞에 붙어서 다른 품사와의 관계를 표시하는 품사다.

전치사의 예를 들면 잘 알고 있다시피 to나 for 또는 on 등을 들 수 있고, 개사의 예를 들면 대(對)·종(從)·재(在) 등을 들 수 있다. 중국어에서 ‘뚜이’로 발음되는 對는 ‘~에 대하여’, ‘총’으로 발음되는 從은 ‘~로부터’, ‘짜이’로 발음되는 在는 ‘~에서’의 뜻을 갖고 있다.

이 중에서 현재 한국어에 이미 침투한 것은 영어의 for나 to 혹은 on에 상당하는 중국어 뚜이(對)다. 다음 문장에서 그 실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대북정책을 수정하고 있다.”

모든 한국인들이 이런 표현을 아무 의심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이 문장은 한국어에서는 이질적인 영어 전치사 혹은 중국어 개사의 요소를 담고 있다. ‘대북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북’이라는 명사 앞에 전치사 대(對)가 붙는 것은 한국어 문법에서는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위 표현을 한국어 문법으로 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정책을 수정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정책을 수정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정책’ 혹은 ‘북한 정책’이라는 한국식 표현을 사용하게 되면, 대북정책이라는 표현을 쓸 때보다도 음절이 길어지는 문제점이 있는 동시에 ‘폼’이 안 난다는 문제점이 있다.

간결한 명사를 만드는 점에서만큼은 중국어를 따라갈 수 있는 언어가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간편하고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어 문법의 근간을 파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 여기서 언급한 어순 파괴라든가 전치사 유입 등의 요소는 어떤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까? 여기서 파생되는 중요한 문제점 중에서 두 가지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고체계와 언어체계의 통일성을 기할 수 없다.

언어체계는 단순할수록 좋다. 또 언어체계는 사고체계와 일치할수록 좋다. 그런데 <주어+목적어+술어>로 된 문장 속에서 <주어+술어+목적어>라는 이질적 구조를 접하게 되면,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주어+술어+목적어>로 된 부분을 <주어+목적어+술어>로 변경하는 또 한 번의 불필요한 사고 과정이 일어나게 된다. 한 번만 사고하면 될 것을 두 번 사고하게 되는 것이다.

‘방중’이나 ‘대북’ 등의 표현은 글자 수를 줄이는 면에서는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머릿속에서 또 한 번의 사고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사실은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세대 간의 정보전달을 저해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어 문법 속에 이질적이고 파괴적인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현재 이 언어를 사용하는 21세기의 한국인들은 별 어려움 없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영어에 대한 기초 이상의 지식을 갖고 있고, 또 중국어를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의 한문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후손들이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 뒤에 지금의 문장을 읽게 되면 ‘방중’이나 ‘대북’ 같은 이질적인 요소에 혼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늘날의 한국인들처럼 영어나 중국어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먼 훗날의 후손들이 오늘날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두 가지를 포함한 한국어 오염의 문제점들은 몇몇 사람들만의 노력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또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안다 해도, 자기 혼자만 그런 표현을 쓰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한국인 전체의 의식적 노력에 의해서만 고칠 수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인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 한, 이런 문제를 고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한국어와 외국어의 교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언어 간 교류를 통해 한국어의 부족한 어휘를 보충할 수도 있고 한국어 문법 속의 비과학적 요소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류가 한국어의 근간을 뒤흔드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영어·일어·중국어 등의 영향을 받아 잡탕 언어가 되고 있는 한국어를 순화시키려면, 한국어 문법에 맞는 문장을 쓰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한편,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지식을 창조·개발하는 풍토를 조성함으로써 외국어 번역의 필요성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어 #한글 #언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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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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