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들의 참을 수 없는 치욕

[역사소설 소현세자 2] 나라를 지키지 못한 사내들의 자화상

등록 2008.02.13 18:32수정 2008.02.1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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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서문. 죄인은 남문을 이용할 수 없으니 서문을 통과하라는 청나라의 요구로 인조가 나왔던 문이다. 항복하러 나오던 그 때도 이렇게 눈이 쌓여 있었다. 현재는 보수공사중이다. ⓒ 이정근



세자빈과 왕실 여인이 외간 남자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는 것은 당사자보다도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예의와 명분을 중시하는 사대부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는 일이었다. 차라리 자신들이 삼백 배, 삼천 배를 하고 싶었다. 조선 남정네들의 피가 역류하는 듯했다. 항복하러 남한산성을 나서며 정축하성(丁丑下城)이라 자위하며 내려왔던 사람들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여자들의 목을 조이던 남자들이다. '남녀유별'이라고 여자들을 집안에 가두어두던 사대부들이다. '남녀는 내외해야 한다'고 여자가 문밖 출입할 때는 너울을 쓰게 했던 사내들이다. 그러한 자신들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여 세자빈과 궁실 여인이 외간 남자에게 절을 올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었다.

나라를 지키지도 못한 사내들 "주제파악을 하라"

삼배구고두를 행한 임금은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먼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산천초목을 떨게 했던 위엄은 간 곳이 없다. 나라를 바로잡겠다(仁祖反正)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기상은 찾을 길이 없다. 청나라의 지시로 곤룡포를 벗으라면 벗고 여진족 옷을 입으라면 입고 있는 모습이 허수아비 같았다. 밤새워 만들어 입은 남염의(藍染衣) 자락이 북풍에 펄럭였다.

"세자빈으로 하여금 절을 올리라 하는 것은 너무한 것 같소. 거두어 주시오."

김신국이 상기된 얼굴로 항의했다. 하지만 그것은 간청이었다.


"조선이 동방예의지국이라 하니 황제에게 예를 올리라 하는 것이오."
"우리나라 법도에는 없는 일이오."

"하라면 하는 것이지 왜 그리 말이 많소? 귀국은 신하의 나라라는 것을 잊었소?"

용골대가 눈알을 부라렸다.

"강화조약에 없는 일을 어찌 행하라 하시오?"

김신국이 배수의 진을 쳤다. 맞는 말이다. 강화협의에는 없었던 얘기다. 앞길이 아득했다. 이렇게 밀리다 보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요구할지 모른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했는데 청나라 사람들처럼 머리를 깎으라 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것이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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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남한산성 서문에서 삼전도에 이르는 길은 가파르다. 말을 타고 서문을 나선 임금이 눈길에 말이 미끄러져 내관의 등에 업혀 내려왔던 길이다. ⓒ 이정근



호조판서 김신국은 최명길과 함께 강화협상에 나섰던 인물이다. 용골대와 안면이 있다. 죽일 테면 죽이라는 것이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용골대의 칼이 쩔렁거렸다. 시나리오에는 없지만 죽일 수 있다. 피가 튀면 엄숙해야 할 의식에 티가 되지만 죽는 것은 사람 목숨이다.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도열한 군졸들의 삼지창이 흔들렸다. 왕자를 보내라는 요구에 코웃음 치던 조선군들이 제법 센 줄 알고 잔뜩 겁먹고 천 육백리 길을 달려왔던 청군들이다. 추위에 군졸이 얼어 죽고 식량이 부족하여 임금이 하루 한 끼를 먹으면서도 세자를 내보내라는 요구를 외면했던 조선군들에게 든든한 뒷배가 있는 줄 알았다.

허나, 임금이 내려와 항복했다. 허탈했다. 빡쎄게 한 판 붙어 몸을 풀려고 했는데 조선군이 성안에 들어앉아 나오지 않으니 그럴 기회가 없었다. 조선군이 성첩에 틀어박혀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으니 온몸이 욱신거렸다. 삼지창을 잡은 손이 간지러워 떨렸던 것이다.

"좋다. 내인이 대신하는 것을 허락한다."

빈궁 나인이 대신 절을 올렸다. 크게 인심 쓴 것 같았지만 조정대신들의 기를 꺾어놓기 위한 계산된 수순이었다. 용골대는 마부태와 함께 대화통로였다. 앞으로 전후 뒤처리에 할 일이 많다.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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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눈에 쌓인 남한산성 ⓒ 이정근



나인들이 예를 올리는 동안 용골대가 치장이 요란한 안장을 갖춘 백마를 끌고 왔다. 임금이 친히 고삐를 잡았다. 용골대가 초구를 가지고 왔다. 임금이 받아서 입고 다시 들어가 황제에게 삼배(三拜)를 올렸다. 도승지 이경직이 국보(國寶)를 받들어 올렸다.

"고명과 옥책(玉冊)은 어찌하여 바치지 않소?"

용골대가 힐문했다.

"옥책은 일찍이 변란으로 인하여 잃어버렸소. 고명은 강화도에 보냈는데 전쟁으로 어수선하여 온전하게 있으리라 말하기 어렵소. 그러나 혹시 그대로 있으면 나중에 바치는 것이 뭐가 어렵겠소."

도승지 이경직을 제치고 임금이 변명했다.

"알았소."

임금을 흘겨보던 용골대가 또 초구(招裘)를 가져왔다. 초구는 담비라는 족제비과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여진족의 전통의상이다.

"주상을 모시고 산성에서 수고했기 때문에 이것을 주는 것이다."

용골대가 이죽거렸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과 병조판서 등 5조 판서에게 입게 했다. 형조판서 심즙은 대죄하느라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세도를 부리던 삼공오경(三公五卿)은 거절할 힘이 없었다. 민망한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지못해 입었다. 잠시 사라졌던 용골대가 초구 5벌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승지들도 입도록 하라."

명령이었다. 임금이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정승 판서가 초구를 입는 마당에 승지들은 거역할 힘이 없었다. 강화도에 들어간 한흥일을 제외한 다섯 승지가 초구를 입었다. 의정부의 장관들과 왕궁의 승지들이 하사받은 옷을 입고 뜰에 엎드려 황제에게 삼배를 올렸다.

백척간두의 나랏일보다 가족이 우선이다, 노모를 찾아라

용골대가 부르지도 않은 홍서봉과 장유가 뜰에 엎드렸다. 홍서봉은 최명길과 함께 화의를 주장했던 좌의정이다. 장유는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상용의 사위이며 훗날 효종비 인선왕후 아버지다. 자신의 동생 장신이 훈련대장 이흥립의 사위였던 것을 인연으로 인조반정에 역할을 담당하여 2등 공신에 책록되고 우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노모와 딸이 적에게 포로로 잡혀 있는 셈이다.

"노모를 찾아보도록 해주소서."

강화도에서 붙잡혀온 포로 중에서 자신들의 노모를 찾아보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좋다. 인지상정이다. 갸륵한 효일 수 있다. 하지만 나라가 백척간두에 달렸다. 청군진영에는 수많은 포로가 잡혀 있다. 정승반열에 있는 사람이라면 적진에 사로잡힌 백성들을 먼저 구해내고 자신의 부모를 찾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청나라 장수 김석을시(金石乙屎)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남한산성 #삼전도 #동방예의지국 #초구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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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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