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49) '다름'과 '차이'

[우리 말에 마음쓰기 374] '사랑이야기-사랑소설'과 '연애소설'

등록 2008.07.17 11:57수정 2008.07.1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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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랑이야기, 사랑소설

 

헌책방에서 책을 봅니다. 겉은 비록 헐거나 때가 탄 책이라 하지만, 알맹이까지 헐거나 때가 타지 않습니다. 오히려 겉이 조금 헐하거나 때가 탔다고 하여 값을 싸게 쳐 주니, 똑같은 알맹이를 한결 눅은 값에 읽을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도서관 나들이를 해 보면, 도서관 책이 헌책방 책보다 지저분할 때가 잦은데, 헌책방 책도 사람손을 거치는 책이지만, 으레 ‘한 사람 손’만 거치기 일쑤이고, 도서관 책은 ‘수많은 사람 손’을 거치기 때문인지, 낡고 지저분함이라는 잣대로 보자면, 헌책방 책은 무척 ‘깨끗한 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고 느낍니다. 더욱이, 책을 깨끗이 간수하며 보신 분들이 내놓은 헌책은 ‘헌’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반들반들합니다.

 

출판사 헛간에 잔뜩 쌓여 있다가 풀린 책이라든지, 문닫은 헛간에 쌓여 있다가 흘러나온 책들은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책이니 무척 깨끗합니다. 또한, 언론사에 들어갔던 보도자료, 또 글쓴이가 누군가한테 선물해 준 책은 더할 나위 없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자그마치 스무 해나 서른 해 앞서 나온 책임에도, 엊그제 나온 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김이연사랑소설 …

 

 명지대 앞에 있던 헌책방에 가도 보였고, 용산에 있는 헌책방에 가도 보이며, 인천이나 제주에 있는 헌책방, 춘천이나 원주에 있는 헌책방에도 으레 꽂혀 있는 소설책을 더듬더듬 살피다가, ‘김이연사랑소설’이라는 머리글에 눈이 박힙니다.

 

 음?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뭐가 다르지? 책시렁을 두루 살피던 눈길을 잠깐 거두고 ‘김이연사랑소설’이라는 말을 다시 읊어 봅니다. 사랑소설, 사랑소설, 사랑소설 …….

 

.. TV영화를 보았다. 어네스트 헤밍웨이 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사람의 심리가 이상하다. 애정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잔잔한 마음에 파문이 일어난다. 나도 저런 사랑을 해 봤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될 수 있으면 애정소설 같은 것은 보지 말아야겠다 ..  <노동자 글모음-비바람속에 피어난 꽃>(청년사,1980) 203쪽

 

 아, 그렇습니다. 흔히들 ‘연애(戀愛)소설’이라고 말하지 ‘사랑소설’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애정(愛情)소설’이라고도 하고, ‘로맨스(romance)소설’이라고까지 합니다.

 

 ┌ 사랑소설 : 사랑을 다루는 소설.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

 ├ 사랑이야기 : 사랑을 다룬 이야기

 │

 └ 연애소설 / 애정소설 / 염정소설 / 로맨스소설 ……

 

 문학평론을 하는 분들이 소설 갈래를 나눌 때 ‘사랑소설’ 같은 말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소설을 쓰는 분들이 스스로 “나는 사랑소설을 한 번 써 보았어요” 하고 말할 수 있을는지 곱씹어 봅니다. 사랑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펴내는 출판사에서 ‘사랑소설’을 펴냈다고 밝힐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해 봅니다.

 

 

ㄴ. 다름

 

..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다름’을 참지 못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기 중심적 사고에 빠져있는지를 성찰하고 통일, 화합, 평화의 문제를 보는 눈을 새로 뜨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  <북한에서 온 내 친구>(우리교육,2002) 4쪽

 

.. 그 갓난아이는 다른 아기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읍니다. 빨갛고 조글조글한 묘하게 생긴 아기였읍니다 ..  <도올리/오형태-미생물 사냥꾼 파스퇴르>(동서문화사,1976) 12쪽

 

 남녘과 북녘은 다릅니다. 한겨레라는 대목에서는 같지만, 서로 다른 자리에서 다른 틀거리로 살아왔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같은 남녘땅이지만 남녘사람들끼리도 다릅니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다르기도 하지만, 서울과 경기도가 다르고, 강원과 충청이 다릅니다.

 

같은 서울에서도 강웃마을과 강아랫마을이 다릅니다. 같은 강웃마을이라지만, 서로 어떤 집에서 어떤 살림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러나 강웃마을과 강아랫마을로 나뉘었어도 서로 같거나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강원과 제주이지만, 서로 같거나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어요.

 

 ┌ 차이(差異) :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   - 성격 차이 / 능력 차이 / 세대의 차이 / 차이가 나다 /

 │     그와 나는 견해 차이가 크다 / 큰 차이가 없었다

 ├ 다르다

 │  (1) 함께 놓인 여럿이 한 모습이나 빛깔, 느낌 들이 아니다

 │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  (2) 보통보다 남다르거나 눈에 띄거나 훌륭한 데가 있다

 │     <슬기는 진짜 다르다니까. 야구를 얼마나 잘하는데>

 │  (3) 무언가 바뀐 게 있다

 │     <어젯밤과 오늘 아침이 너무 달라요>

 │  (4) 어디에 들지 않는 나머지거나 어떻게도 이어지지 않다

 │     <넌 다른 길로 와 / 이건 좀 다른 얘긴데요>

 └ 다름 : 다르/다 + ㅁ

 

 우리 말과 한자말은 다릅니다. 같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이 쓰는 말과 일본사람이 쓰는 말하고 중국사람이 쓰는 말은 다릅니다. 세 나라에서 한자를 쓴다고 하여도, 한자 씀씀이가 다르고, 한자가 제 나라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다릅니다. 중국사람으로서는 한자로 살아가고, 일본사람으로서는 한자 없이 못 삽니다. 그러면 우리들 한국사람은 어떠한가요. 한자 없이 말을 못하나요? 한자 없이 글을 못 쓰나요?

 

 ┌ 성격 차이 → 성격이 다름

 ├ 능력 차지 → 재주가 벌어짐

 ├ 세대의 차이 → 세대가 다름

 └ 차이가 나다 → 다르다

 

다른데 억지로 같거나 비슷하게 꿰어맞출 수 없습니다. 다 다른 아이들인데, 다 똑같은 지식을 머리에 쑤셔넣어야 하지 않습니다.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일감과 놀이감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아이는 농사꾼으로, 어떤 아이는 출판사 편집자로, 어떤 아이는 기계공으로, 어떤 아이는 그림쟁이로, 어떤 아이는 회사원으로, 어떤 아이는 공무원으로, 어떤 아이는 장사꾼으로, 어떤 아이는 운전수로 자라야 합니다. 때때로 교사가 되는 아이가 있으며, 어버이가 하던 일을 물려받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 다 다른 아이들한테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모두 ‘다른’ 아이들을 무턱대로 ‘똑같이’ 짜맞추는 지식을 가르쳐야 하는가요.

 

 ┌ 그와 나는 견해 차이가 크다 → 그와 나는 생각이 크게 다르다

 └ 큰 차이가 없었다 →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자를 쓰거나 안 쓰거나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말하고 글쓰고 살아가는 동안에 한자를 따로 써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한자도 외국글입니다. 한문으로 된 책은 외국말을 익히듯 살피면서 읽어내어야 하고, 우리들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번역이 되어야 합니다.

 

번역이 되지 않은 한문문학은 한국문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정약용이고 이규보고, 한글로 적히는 토박이말로 옮겨졌을 때 비로소 한국문학으로 받아들여지지, 한문으로만 적혀 있으면 우리 문학이 아니라 중국문학, 또는 어중간한 문학일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임을 깨닫는 일은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 얼마나 값이 있고 뜻이 있고 아름다우며 보람이 있는가를 마음에 새기는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먼저 제대로 깨닫는 눈을 키워야 비로소 우리 아닌 이웃을 이웃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새기면서 껴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웃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겠습니까. 한국말과 한국땅과 한국사람을 모르면서 미국말과 미국땅과 미국사람을 알겠습니까. 한국 역사를 알아야 일본 역사가 보이고, 한국 사회를 알아야 미국 사회가 보입니다.

 

 우리 말은 어떠하고 한문은 어떠하며 미국말은 어떠한지를 가만히 살피는 가운데, 다 다른 말과 글임을 살갗으로 느끼면서, 우리가 발딛고 있는 우리 땅에서 우리 이웃과 나눌 말은 무엇인가를 찬찬히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17 11:5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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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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