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앞바다에 유럽 쓰레기가 떴네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바다①] 국경도 없다... 우리나라 섬의 외국 쓰레기들

등록 2008.07.28 10:17수정 2008.07.2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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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지난 5월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쓰레기 문제를 다뤘고 6월~8월엔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란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가 변함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이번엔 육지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가서 바닷가와 섬을 더럽힌 뒤, 다시 국경을 넘어가는 문제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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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해도서환경센터 한해광 사무국장이 흑산도에서 발견한 외국산 쓰레기들. 각국 쓰레기는 바다를 통해 국경을 넘나든다. ⓒ 한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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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여수 앞 연도 앞바다서 씨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고가 터졌다. 바다에서 생긴 쓰레기는 조류를 따라 아주 먼 거리까지 움직인다. 24일 사고 현장을 찾았다. ⓒ 김대홍


한해광 서남해도서환경센터 사무국장은 2002년부터 온 가족과 함께 서해와 남해안 일대 섬을 돌아다니고 있다. 휴양 목적이 아니다. 쓰레기를 줍기 위해서다.

그가 아내, 자녀 2명과 함께 바다 쓰레기 줍기에 나선 것은 2000년 무렵 엄청난 양의 국제바다쓰레기를 보고 난 뒤다. 당시 한 사무국장은 여수 앞바다의 한 섬에서 바닷가를 뒤덮은 바다쓰레기를 보게 됐다. 중국을 비롯 일본·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러시아에서 온 쓰레기가 그 곳에 있었다.

대한민국의 한 섬이 국제쓰레기장이 됐다는 사실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그 뒤부터 틈 날 때마다 서남해안 섬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2002년부터는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서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국제 바다쓰레기는 대략 삼만 점. 집에 모두 둘 수가 없어, 여수 지역 어느 단체 건물 옥상에 보관하고 있다.

여수 앞 안도에서 5분도 안돼 외국산 쓰레기 30점 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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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를 싣기 위해 여수로 나온 배를 타고 안도에 들어갔다. 사진은 동행한 연안보전네트워크 김환용 상임이사. ⓒ 김대홍

24일 여수 앞 바다 섬 안도(雁島/安島)와 연도를 찾았다. 두 섬은 317개에 이르는 여수 앞바다 섬 가운데 하나로 바다쓰레기가 특히 많이 밀려온다고 알려진 곳 중 하나다. 한해광 사무국장은 그 곳에 가면 국제쓰레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당일 비가 내리면 배가 뜨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다행히 날씨가 맑았다.

오전 6시 10분 여객선을 타야 했지만 놓치고, 어렵게 사선을 탔다. 사선은 개인 배를 말하는데, 마침 여수 시내에서 비료를 실은 배가 다시 안도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여수시민협 오문수 대표와 연안보전네트워크 김환용 상임이사가 동행했다.

김 상임이사는 우리나라 연안과 섬 지역은 안 가본 곳이 없는 바다문제 전문가.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서남해도서환경센터 한해광 사무국장과 함께 외국기인 바다쓰레기(외국에서 비롯된 바다쓰레기) 문제를 꾸준히 다루고 있다.

여수 터미널에서 출발한 배는 정확히 1시간을 달려 안도에 도착했다. 상당히 속도가 빨랐다. 여객선은 1시간 40분 걸리는 곳이었다.

선장은 항구에 비료를 내린 뒤, 근처 연도로 갔다. 연도는 1995년 유조선 씨프린스호가 태풍 페이 경보령에 따라 대피항구를 찾다 암초에 부딪히면서 엄청난 기름유출사고를 낸 곳이다. 당시 일대 양식장이 초토화될 정도로 여수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 때 흘러나온 기름은 인근 남해를 비롯 멀리 울산까지 피해를 입혔다. 바다쓰레기가 위험한 이유는 물길을 타고 시나 도 경계, 심지어 국경을 넘어 퍼지기 때문이다. 기름유출은 바다쓰레기의 엄청난 확장성을 잘 보여준다. 김 상임이사는 충남 태안에서 일어난 기름유출사고 흔적을 안도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씨프린스호 사고 장소에 배를 띄우고 한참 동안 착잡한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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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곳곳 틈새마다 쓰레기가 가득했다. ⓒ 김대홍

잠시 뒤 배가 연도를 한 바퀴 돌았다. 바위와 바위 사이 잠깐씩 뭍이 드러난 곳에는 어김없이 쓰레기들이 있었다.

바닷가는 하얀 모래 때문에 하얀 것이 아니라, 쓰레기 때문에 하얗다. 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쓰레기가 가득 쌓인 바닷가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해안 절벽이라 배를 대기가 쉽지 않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김 상임이사에 따르면 바지(Barge, 바닥이 평평한 배로 화물이나 쓰레기 운반에 쓰임)를 한 번 띄우는데 300만원 정도로 포클레인이 더해지면 비용은 여기서 다시 뛴다. 섬사람들이 쓰레기더미를 보고서도 넋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바다쓰레기는 쓰레기 발생지와 피해지가 다른 대표 사례다. 2005년 해양부와 녹색연합 등이 전개한 '그린맵 대장정' 활동 결과 해양폐기물의 51%가 육상에서 떠내려온 생활쓰레기였다. 섬으로 가면 그 비율이 더욱 높아진다. 김환용 상임이사는 "섬의 경우 85%가 다른 지역에서 나온 쓰레기"라고 설명했다.

김 상임이사는 "상당수 쓰레기가 강을 타고 내려온다"고 말했다. 강을 따라 흘러온 육지 쓰레기가 댐이나 방조제에 막혀 있다가 홍수조절을 위해 갑문을 열게 되면 일거에 바다로 흘러나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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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 누군가가 벽에 시를 적어 놓았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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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밭해숙욕장. 이 곳에서 5개국 쓰레기를 발견했다. ⓒ 김대홍


외국쓰레기를 보기 위해 다시 안도로 발길을 돌렸다. 부두에서 본 섬은 조용하고 아늑했다. 오문수 대표가 "기러기를 닮은 모양이라고 해서 안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두 수로 모양이 한반도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눈높이에서 보니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닮은 것도 같다. 부두 옆에 '한반도를 품은 호수마을'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오문수 대표는 여수문화원 역사연구회 회원으로 몇년 전 이 곳을 조사한 적이 있다.

물길을 따라 걷다 보니 누군가 하얀 벽에 시를 적어놓았다. 제목이 '나의 자리 안도'다.

"언제인지도 모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버지가 사셨고 할아버지께서도 여기에 사신 것을. 말 없이 서 있는 저기 저 소나무…. 언제나 제 자리에 부딪히는 저 파도와 그 파도 위에 나르는 갈매기도 알고 있습니다. 어릴 적 꿈이 담겨져 있는 이 곳 여기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3대째 어쩌면 그 이상 섬에 살았을지도 모르는 누군가가 쓴 시다. 정갈한 동네 분위기와 흰 벽에 쓴 시가 참 잘 어울린다. 잠시 뒤 쓰레기더미를 보지 않았다면 안도는 이 시 느낌 그대로 기억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두에서 10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몽돌밭해수욕장은 한 눈에 봐도 쓰레기가 가득했다. 오 대표, 김 상임이사와 함께 외국산쓰레기 줍기에 나섰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중국 17점, 일본 7점, 러시아 2점, 인도네시아 2점, 말레이시아 1점, 국적불명 1점 등 외국산 쓰레기 30점을 주웠다. 플라스틱병, 사탕봉지, 과자봉지, 라면봉지, 어구, 맥주묶음봉지 등 다양하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김 상임이사는 특별히 많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태풍이 불고 난 다음에 확인해보면 훨씬 많다고.

오 대표가 쓰레기를 줍다가 옷과 가방에 기름이 묻었다. 김 상임이사가 태안 유출기름이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확신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1995년 발생한 씨프린스호와 관련해서 쓰레기나 기름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2006년 남도문화활동네트워크, 푸른신안21협의회, 해남YMCA, 진도풍란보존회, 여수YWCA, 여수환경운동연합은 매년 외국산 바다쓰레기를 조사한 뒤 모니터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세 차례에 걸쳐 모두 1091점의 외국산쓰레기를 주웠다. 이 중 중국산이 911점(83.5%)으로 가장 많았고, 타이완과 일본이 각각 16점, 15점으로 뒤를 이었다. 그 외에 인도네시아(5점), 베트남(4점), 러시아(4점), 독일(2점)이었으며 국적불명이 132점이었다. 각국 쓰레기 무게는 총 126kg이었다.

육지에서 버린 쓰레기, 바다로 가서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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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밭해수욕장에 찾은 여러 나라 쓰레기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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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광 사무국장이 녹도에서 찾은 외국산 쓰레기들. ⓒ 한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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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여수 소호요트장에선 여수시민 해양환경보전의 날 행사가 열렸다. 이날 1987년 6월 항쟁 당시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걸개그림으로, 1992년엔 '쓰레기들'이란 걸개그림이 뉴욕타임즈에 실리면서 유명한 작가 최병수씨가 바닷가에서 펭귄 얼음조각을 만들어 즉석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는 사람의 욕심 때문에 벌어지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서식처가 사라지는 펭귄들이 절규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 김대홍


바다쓰레기 문제가 불거진 것은 채 몇 년 되지 않는다. 처음엔 주민들이 쉬쉬했다. 쓰레기 문제가 불거질 경우 관광업이나 수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 제기를 통해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실제 환경 개선 효과가 있기 때문에 지금은 이해하는 주민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김 상임이사는 말했다.

우리나라 바다쓰레기 문제는 일본이 오히려 먼저 꺼냈다. 쓰시마시 바닷가에서 엄청난 양의 한국산 쓰레기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후 쓰시마시는 모니터링 결과를 통해 한국 정부가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산 쓰레기가 조류를 타고 쓰시마섬에 많이 간다는 것은 한해광 사무국장과 김환용 상임이사도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한해광 사무국장과 김환용 상임이사가 한국 서남해안 일대 모니터링에 본격 나서면서 일본의 주장은 뒤집어졌다. 일본 쓰레기가 한국에서도 적지 않게 발견됐기 때문이다. 쓰시마시 행사에서 쓰인 쓰레기가 경남 통영 앞바다 욕지도에서 발견된 적도 있다.

한 사무국장은 2004년 쓰시마시에서 열린 국제 세미나에서 한국에서 발견한 일본쓰레기를 지적했고, 이후 일본 시민단체가 한국에 와서 서남해안 일대서 공동 조사를 하기도 했다.

국제쓰레기 문제는 한 나라 만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게 김 상임이사와 한 사무국장의 생각이다.

바다쓰레기는 미관상 나쁘다는 점 외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바다를 떠돌아다니면서 인근 지역과 다른 나라에 피해를 입힌다는 게 문제다. 또한 잘게 부서져 가라앉으면 해양 생태계가 더러워진다. 해초와 패조류, 어류가 당연히 영향을 받게 되고, 그 피해는 지역 어민이 입게 된다. 수산물이 도시인의 식탁에 올라온다는 점에서 남 문제라고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자연은 돌고 돈다. 강물이 바다로 간 뒤, 다시 비가 되어 땅에 뿌려진다.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육지를 떠난 쓰레기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가버릴 것 같지만, 다시 땅으로 되돌아온다. 김 상임이사와 한 사무국장이 내내 강조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바다쓰레기 #외국쓰레기 #여수안도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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