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석이네 삼남매, 퐁퐁 날아라

[나홀로입학생에게 친구를 27] 경남 진해 웅천초교 연도분교장 최효석

등록 2008.09.21 11:57수정 2008.10.0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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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을 타다가 친구와 다툰 효석이가 분이 안 풀리는지 귀퉁이에서 한동안 애꿎은 인형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 이유하

"연도에는 어떻게 가는데요?"
"진해 속천으로 오면 바로 오는 버스가 있어. 그거 타고 오면 돼야. 11시에 있응께 늦지 마이소."


진해에도 섬이 있었나? 내가 가는 곳은 진해에서도 배를 타고 20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 연도. 통영에서 진해로 가는 길이 막막했다.

진해 웅천초등학교 연도분교 1학년 최효석군의 아버지가 진해 괴정과 연도를 운행하는 배의 기관사였기 때문에 쉽게 찾아갈 줄만 알았다.

하지만 통영에서 마산으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빙빙 돌아서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 이미 10분 전에 배가 출발한 상태였다.

사방을 둘러보니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거리는 한산하고, 집은 많지만 이상하게도 썰렁했다. 지나가는 몇 안 되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니 "대부분 고기 잡는 사람들이라 집에 있을 땐 밖에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 쳐도 썰렁한 진해의 괴정 부두는 왠지 쓸쓸했다.

그 와중에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비수기라 이용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기름값도 치솟아서, 하루 8번까지 운행하던 배가 지금은 하루 3번만 왕복한다는 거였다.


나는 서둘러 기관사 아저씨께 전화를 걸었다. "4시 반까지는 배가 없어! 거서 쪼매만 기다렸다가 타랑께." 아, 이 황량한 선착장에서 혼자 무얼 한단 말인가.

'연도의 마지막 희망' 효석이네 삼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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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장인 효석이 아버지. 화끈한 말투로 동네 주민들에게 장난을 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이유하


오후 1시쯤 "뿌우~" 하고 작은 고동을 울리며 배가 선착장으로 들어왔다. 기쁜 마음에 한 달음에 달려갔지만 배가  오후 4시 30분까지는 출발하지 않는단다. 파도에 울렁이는 배에 미리 올라 효석이 아버지이자 이 배의 기관장 최지돌(35)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언제부터 연도에서 사신 거예요?"
"평생 살았지라. 나도 연도분교의 37회 졸업생이야. 큰이모는 2회고."
"진짜요? 그럼 연도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겠어요."
"나는 뭍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이해를 못 하겄던데."

최씨는 "더 이상 아이들이 들어올 일이 없으니, 이 섬에서 효석이가 마지막 졸업생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연도분교는 전교생이 5명, 그 중 세 명이 효석이네 식구다. 효석이네 삼 남매는 연도의 마지막 희망인 셈이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려운 집안 사정도 들었다. 중풍에 걸린 아버지와 시력을 잃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효석이 아버지는 한 달 수입은 100만원 남짓. 일곱 식구가 살기엔 벅찰 것 같았다. 거기에다가 얼마 전 작은 불이 나서 그을린 천장은 비만 오면 물이 샌다고 했다. 하지만 서글서글하게 웃는 통에 나도 그저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후 2시쯤 되자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씩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배로 찾아왔다. 장을 보고 오는 모양이었다. 뱃머리에 '모든 안부는 이 곳에서'라는 슬로건을 붙여야 할 정도로, 배 안은 금방 왁자지껄해졌다.

"근데 이거 4시 반까지 우째 기다리노. 지겨바(지겨워) 죽겠네."
"우리 마 배 대절해서 가삐자. 짐(지금) 사람도 많구만."
"저기도 한 너댓명 있다이가. 빨리 불러봐라."

배 시간이 아닐 때 운행하려면 4만원 정도를 주고 대절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열댓 명 모이자 "대절해서 가자" "기다리자"는 소리에 시끌시끌해졌다.

결국 원래 마을주민 특별가 2000원 배삯에 조금씩 더 갹출해서 오후 3시 반에 연도로 출발하기로했다. 나로선 조금 더 빨리 섬에 도착한다는 기쁨도 있지만, 동네 주민들의 구수한 입담이 재미있어서 한참을 킥킥거렸다.

진해 섬 중 인구가 가장 많지만, 걸어서 다 돌아볼 수 있는 섬

연도는 부두에서 배로 20분 정도. 도착하자마자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서울에서 왔서예?"

8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연도는 진해의 섬 중에서는 인구가 가장 많지만, 걸어서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작았다. 젊은 사람들은 뭍으로 나가버리고 지금은 3분의 1 가량이 비어 있다고 한다.

아주머니를 쫄래쫄래 따라가니 효석이네 집은 코 앞이었다. 아주머니께서 주신 물 한 잔을 들이켜고 숨을 고르는데, 옆에선 효석이 삼남매가 '4자 꺾기'를 하는 중이었다. 엎치기·배치기·휘돌아차기 등 무술(?) 권법도 다양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 노는 데 끼려고 슬쩍 운을 띄워봐도, 효석이네 삼 남매는 나를 본체 만체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아줌마는 못생겨서" 싫단다. 어이쿠! 졸지에 '아줌마'가 되어버린 나는 날다람쥐 같이 뛰어 도망가는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뛰어서 1분 거리의 연도 분교에 '퐁퐁(트럼블링)'을 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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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연도분교. 교실 세 개에 교무실이 하나다. 학교 오른편에는 아이들이 놀다 가는 '퐁퐁'이 있다. ⓒ 이유하


효석이네 집 뒤로 나있는 작은 골목을 돌아서니 아담한 연도분교가 한 눈에 담겼다. 달랑 교실 3개에 교무실 한 개가 전부인 학교는 정말이지 작았다. 분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효석이네 삼 남매가 잠시 '퐁퐁'을 타고 있자니 나머지 학생인 '태양수퍼'네 3학년 태양이와 쬐깐한 아이들 사이에서 성숙함을 뿜어내는 6학년 나래가 왔다.

다른 아이들은 천둥벌거숭이 마냥 뛰어놀아서, 내 말은 들은 체 만 체했다. 가장 대화가 될 만한 6학년 나래에게 다가갔다.

"섬에서 학교생활 하니까 어때?"
"좋아요. 1대 1 수업이라 물어보기도 좋고요. 얼마 전에는 본교 아이들이랑 수학여행도 다녀왔어요."
"진짜? 재밌었겠네?"
"네, 근데 서울에 또 가고 싶어요."
"이제 중학생이 되겠네?"
"네, 진해로 나가야 해요."

학생 수는 적지만 자격증도 많이 딸 수 있고, 선생님과 1대 1 수업할 수 있어 따로 학원 다닐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나래. 하지만 연도에 중학교는 없기 때문에 내년에는 진해에 있는 중학교로 매일 배를 타고 통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퐁퐁' 타면서는 티격태격 서로 싸우고... 천방지축 아이들

퐁퐁을 타면서는 티격태격 서로 싸우고 천방지축이지만,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려주니 활활 타는 연탄에 물을 뿌린 듯 조용해졌다. 조용한 틈을 타서 마침 순찰(?) 나온 효석이 어머니 주현희(33)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자고로 뛰어놀면서 자라야 한다"고 말문을 연 어머니는 섬 생활, 특히 1대 1 교육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어딜 가도 이런 교육을 받을 수는 없다며, 아이들이 자라는데 도시 아이들처럼 과외나 학원에 다니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고 했다.

3일에 한 번 물이 나와서 물탱크에 받아써야 하고, 배도 하루에 3번밖에 없는 데다가 어업 말고는 별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작은 섬. 거기에 중풍에 걸린 시아버지가 입원하시는 통에 틈나는 대로 김해에 있는 병원에 가야 한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한 발짝 느린 삶이다.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선 어쩌면 팍팍한 삶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계속 섬에서 살고 싶다"라고 말하는 효석이네 가족들의 싱그러운 웃음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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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에서 뛰어노는 효석이와 효정이.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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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위의 세 남매. 둘째 효진이가 화려한 덤블링을 보여준다. ⓒ 이유하


"우리 아빠는 할아버지 때문에 힘들어 한디. 그래도 내 생각에는 우리 집이 참 재미있는 것 같다."

큰딸 효정이는 내 손을 잡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금방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금세 풀어지고, 산과 들을 뛰어다니느라 온 몸에 생채기가 끊이질 않지만 그들은 알까? 지금 다른 어떤 아이들보다도 특별한 것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집에 가는 길, 효석이 엄마는 돌아서는 내 손에 얼린 바지락 한 봉지을 쥐여줬다. 나는 그날 손에 들린 검정 비닐봉지에 바지락과 함께 따뜻한 정을 담뿍 담아서 돌아왔다.
#나홀로 입학생 #연도 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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