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명탐정 어린이, 학교의 비밀 알아냈어요

[나홀로입학생에게 친구를 28] 경남 밀양 단산초등학교 최종원 학생

등록 2008.11.21 10:26수정 2008.11.21 10:2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짝궁 없이 홀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2008년에만 100명이 넘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농어촌 지역의 분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과 <아름다운 재단>은 나 홀로 입학생들의 친구가 되고자 기획 '나 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시작했습니다. 이 기획을 통해 독자여러분들과 함께 농어촌 공동체 복원을 고민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그 28번째로 경남 밀양 단산초등학교 최종원 학생을 만났습니다. 이 글은 종원이와 기자가 나눈 이야기를 종원이 목소리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편집자말]
a

단산 초등학교를 걸어나오는 저, 종원이 모습이에요. 점퍼에 손을 넣고 걸어가는 폼이 예사롭지 않죠? 지금부터 제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 이유하


안녕하세요. 저는 밀양시 산외면 금곡리에 있는 단산초등학교 1학년 최종원이라고 합니다. 같은 반 친구는 없어요. 저 혼자 입학했거든요.


아차차, 이렇게 말하면 진우가 속상해할지도 모르겠어요. 진우가 누구냐고요? 짝꿍이었는데, 3개월 정도 우리 학교에 다녔어요. 만날 같이 카드 따먹기도 하고, 축구도 하고, 정말 재미있었는데요. 얼마 전에 전학을 갔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집은 가까워서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으니깐요.

짝꿍이 얼마 전 전학 가서 형아들이랑 놀아요

a

학교 뒷편에 있는 놀이터를 소개할게요. 저는 이제 다 커서 어린이 놀이터에선 놀지 않아요. 그래도 참 예쁘죠? ⓒ 이유하

우리 학교는요. 전교생이 14명이에요. 그냥 다 좋아요. 담임선생님은 단풍잎이 너무 예쁘다고 주워가시곤 하는데요. 저는 만날 봐서 모르겠어요. 그래도 형아들이랑 놀면 참 재미있어요. 저는 카드가 별로 없는데 형아들은 이~만큼 있어요.

그런데 오늘 서울에서 이상하게 생긴 선생님이 놀러왔어요. 가죽 부츠를 신고 와선, 서울에서 말을 타고 여기까지 왔대요.

근데 말이 차보다 빨라요? 좀 거짓말인 거 같긴 해요. 말을 못 봤거든요. 그 선생님은 밀양역에 가면 말을 보여준댔어요. 어서 밀양역에 갔으면 좋겠어요.


담임선생님이 말씀해주셨는데, 절 보러 서울에서 왔대요. "왜요? 왜요?"하고 제가 자꾸 물어도 웃기만 해서, 서울 선생님은 아무래도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요.

혹시 제가 어제 엄마 몰래 밥 대신 과자를 사먹은 걸 알기라도 하는 걸까요? 막 사진도 찍고, 수첩에 뭘 적는 거 있죠? 저한텐 절대로 안 보여줘요. 분명 엄마한테 이를 건가 봐요. 조금 걱정이 돼요.

그것뿐이면 좋게요? 자꾸 귀찮게 자기를 기억하냐고 물어봐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뭐 '더불어입학식' 어쩌고 하던데, 생각이 날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아무튼 잘 모르겠어요. 점심시간 되면 축구를 해야 하는데, 괜히 이상하게 생긴 선생님 때문에 축구도 많이 못했어요. 저는 지금 그게 제일 불만이에요.

a

초상권 침해라고요! 밥 먹는데 찍지 마세요! 입술에 붙여 놓은 밥풀은 내일 먹을려고 아껴둔 거예요. 신경쓰지 마세요. ⓒ 이유하

벌써 점심시간이에요. 밥맛이 별로 없는데, 자꾸만 선생님이랑 형아들이 밥 안 먹으면 비실비실 쓰러진대요. 곁눈질로 살짝 보니까 오늘 반찬에 어묵이랑 만두도 있어요.

저 만두 좋아하는데, 조금만 먹어볼래요. 아, 먹으니까 맛있네? 조금 더 주세요! 잠시만요. 밥 좀 먹고 이야기해요. 밥 다 먹고 나면 스티커를 붙일 수 있거든요.

밥 먹고는 텔레비전에서 '더불어입학식'이라는 걸 봤어요. 재미있는 만화영화일 줄 알았는데, 이상한 거예요. 별로 재미없어 보이는데, 자꾸만 앉아서 보래요.

아… 근데 저거 문지오 아냐? 지오는요. 옛날 옛날에 입학식 갔을 때, 거기서 본 친구예요. 아! 오늘 온 이상하게 생긴 선생님도 생각났어요. 저번 저번에 본 것 같기도 하고, 저 사람 아녜요?(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킨다)

저 근데 사실 입학식에서 친구들이랑 춤출 때, 구석에 숨어있었어요. 화면에 제가 없죠? 숨어있는 게 훨씬 재미있었어요. 그래도 불만인 건요. 제가 세어봤는데요. 저는 텔레비전에 딱 두번 밖에 안 나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어어, 방금 저 나온 거 봤어요?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나홀로 입학생이 뭐예요? 전 단산초등학교 입학생인데요? 1학년은 저 밖에 없어요. 2학년 형아도 없어요. 그래서 이 가방이랑 옷도 선생님들이 사주신 거예요. 그러고 보면 전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자꾸만 사람들이 맛있는 거 많이 사줘요. 이상한 건요. 이렇게 좋은데 이제 학생들이 이 학교에 안 들어온대요.

조금 있으면 학교가 없어져 전학가야 해요

이건 비밀인데요.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조금 있으면 학교가 없어진대요. 어떻게 알았냐고요? 저는 눈치 백단 명탐정 어린이거든요. 내년에는 우리 모두 산외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대요. 근데 전 좋아요. 짝꿍이었던 진우가 산외초등학교로 전학을 갔거든요.

진우 말이 거기는 학생들도 많고 좋대요. 저번에 한 번 놀러갔는데, 반이 '육반'이나 있어요. 우리는 '삼반'인데 말이에요. 지금은 5학년 형아랑 누나랑 같이 공부해요.

그런데 막상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려니 좀 싫기도 해요. 여기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형아들은 이 학교에 있는 게 더 좋대요. 학교도 가깝고 선생님들도 좋다고 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내년에는 단산초등학교가 '교통안전관리' 뭐시기가 된데요. 차로 빵빵~ 하면서 왜 그거 있잖아요. 사실 저는 뭔지 잘 모르겠어요.

a

오늘은 오마이뉴스에서 예쁜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이 내 일기를 볼라고 하셨다. 내가 안된다고 해서 안 보셨다. 그리고 사진을 계속 찍었다. 밥을 먹을 때도 오마이뉴스에서 온 선생님이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은 사진에 관심이 너무 많이 있다. 난 사진을 안 찍고 싶다. ⓒ 이유하

그리고 이건 진짜진짜 비밀인데요. 오마이뉴스에서 온 이상하게 생긴 선생님이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꾸 일기장을 보여달라는 거예요. 싫다고 하니까 보여주면 사진 찍을 수 있게 해준댔어요. 사진 찍는 법도 배웠는데 그냥 동그랗게 생긴 걸 누르면 번쩍하고 찍혀요.

일기 쓰는 건 재미있어요. 학교에서 수업 마치면 일기를 쓰고 집에 가는데요. 저는 오늘 온 선생님이 '오바일뉴스'에서 온 줄 알았는데, 담임선생님이 '오마이뉴스'래요. 이름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일기는 잘 썼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요. 근데, 저보다 제 동생이 더 잘 그려요. 5살인데 말이에요. 저는 내년에 9살이 돼요.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요? 음……. 처음에는 부자가 되고 싶었는데, 나중에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다가. 지금은 박태환처럼 수영 선수가 되고 싶어요.

네? 뭐라고요? 정말요? 전 못해요. 하루에 10시간이나 수영을 해야 한다니요. 전 9시간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10시간은 절대 못해요. 그래도 수영선수 할래요.

근데 쌤은 언제 집에 가요? 빨리 갔으면 좋겠냐고요? 음… 몰라요! 이 '빼빼로' 저만 먹는 건데, 선생님도 하나 드릴 게요. 다음에도 꼭 우리 학교에 놀러오세요. 학교가 없어져서 저를 찾기 힘들면 엄마한테 전화하세요. 제가 받을 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 아이야. 앞으로 네 꿈은 얼마나 많이 변할까? 그래도 8살 때 작은 학교에서 형아들과 누나들과 함께 지낸 날들을 잊지 말렴. 그리고 날 만나고, 더불어 입학식을 했던 것도 마음 한 쪽 서랍에 고이고이 간직했으면 좋겠구나."

a

점심을 먹으면 우리들은 어디든 몰려가서 카드놀이를 해요. 요즘 최고 유행이에요. ⓒ 이유하


[최근 주요 기사]
☞ 쇠고기 원산지 위반 식당? 비밀입니다
☞ [현장] 아들 잃은 어미는 국회 앞에서 울었다
☞ 삐라 10만장, 경찰 호위 받고 북으로
☞ 홍준표, 종부세 당정회의에서 강만수에게 일침
#나홀로 입학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검찰의 돌변... 특수활동비가 아킬레스건인 이유
  3. 3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4. 4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5. 5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