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앉을까 전전긍긍, 컴퓨터는 일수네 보물 1호

[소원우체통 취재기①] 컴퓨터를 갖고 싶었던 '일수' 이야기

등록 2008.12.03 15:40수정 2008.12.0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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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 뚜벅, 뚜벅. 조용한 시골길에 성인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작은 꼬맹이의 발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르게 소의 긴 울음소리만이 조용한 허공을 가득 메웠다.

 

이상했다. 이쯤이면 집이 나올 법도 한데? 갑자기 내 시야에서 아이가 없어졌다. 분명히 내 앞에서 종종 걸어가고 있던 아이의 뒤통수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다시 한 번 소가 "음메~"하고 길고 구슬픈 소리를 내었다.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삐~걱하고 낡은 대문이 열린다. 아이는 어느새 그 집 안에 쪼르르 들어갔는지 사라지고 없다.

 

"어서… 오세요."

 

두 부부는 우리를 힐끔 쳐다본 후 방으로 안내했다. 싸늘한 방에는 보자기로 싸인 정체모를 물건이 방 한편에 놓여있었다. 혹시, 저건!

 

컴퓨터였다.

 

"컴퓨터를 왜 보자기로 싸 놓으세요?"

"아, 먼지가 앉을까 봐요."

 

낯선 발걸음의 정체는? "컴퓨터 보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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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선생님에게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일수의 모습. ⓒ 이유하

담임 선생님에게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일수의 모습. ⓒ 이유하

다소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사실 나는 <오마이뉴스>와 아름다운 재단이 함께 진행하는 '

소원우체통' 사업차 지난 11월 25일 경북 김천에 들렀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부항초등학교의 1학년 학생인 일수(8)가 얼마 전 아름다운 재단으로부터 근사한 컴퓨터 한 대를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일수네 집엔 컴퓨터가 없었다. 일수도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아서 막 컴퓨터 사용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방학이 되면 스쿨버스가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컴퓨터를 하기 위해 학교까지 가기엔 무리가 있던 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8월 취재차 들러서 (관련기사 :[나홀로 입학생 24] "선생님, 일어나요! 방학 때도 학교 갈래요~") 소원이 뭐냐고 물었을 때, "컴퓨터요!"하고 서슴없이 말했던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어머니께서 컴퓨터 위에 고이 보자기를 덮어놓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확인할 것이 있었다. 맹렬하게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기습적인 질문을 했다.

 

"일수 너! 컴퓨터로 게임만 하지?"

"네?"

"맞아, 아니야?"

"…네."

 

너무 순순히 내 물음에 답하는 일수, 너무 귀여웠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한다는 게임은 인터넷에서 같은 그림을 맞추는 수준의 '놀이'였다. 어린이들은 그냥 '노는 것'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도 관심이 가나보다.(하긴, 나도)

 

온 가족이 컴퓨터 때문에 설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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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마치고 나와 함께 만든 작품(?)들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일수. ⓒ 이유하

수업을 마치고 나와 함께 만든 작품(?)들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일수. ⓒ 이유하

내가 취조(?)하는 사이 선생님은 컴퓨터를 싸고 있는 보자기를 벗기고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 부팅되는 걸 기다리는 동안에 커피 두 잔을 타서 내미는 일수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도 가끔 컴퓨터 하세요?"

"아… 네 저는 잘할 줄 몰라가지고요."

"에이, 그래도 일수 없을 땐 인터넷도 하고 그러세요."

 

어머니는 일수가 컴퓨터 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기 위해서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일수의 담임선생님인 장일호 선생님은 준비해온 DVD를 꺼내들었다.

 

"일수야, 이거 학교에서 수업한 거 기억하지?"

 

글자를 익히기 위한 학습용 DVD이었다. 시디롬에 넣자 일수는 자연스럽게 클릭을 해서 해당 페이지로 들어갔다. 대한민국, 교무실 등의 글씨가 쓰여 있는 페이지였는데, 모르는 글자를 클릭하면 그 글자를 컴퓨터가 읽어주는 방식이었다.

 

일수는 더듬더듬 모니터 속 글씨를 읽어나갔다. 옆에서 보던 어머니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졌다. 일수가 글을 읽는 모습이 기특한 모양이었다.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여기 와보세요. 일수 읽는 것 좀 보게."

 

그 사이 한 쪽 편에선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동생 민수(6)가 유치원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곧 온 가족이 컴퓨터 앞에 쪼르르 서게 되었다. 

 

선생님은 인터넷으로 공부하는 법을 시범 보이시곤, 어머니에게 하루에 몇 단어라도 꾸준히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위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사이트, 기사를 읽을 수 있는 <오마이뉴스> 홈페이지도 즐겨찾기에 추가했다.

 

컴퓨터를 할 때는 진지해지는 일수?

 

직접 보니, 단지 일수를 위해서 사용되는 컴퓨터는 아닌 것 같았다. 평생 컴퓨터랑 담 쌓고 살았던 일수의 부모님이었지만, 이 기회에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과 두런두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일수에게는 다양한 '꺼리'들을 만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다.

 

그나저나 컴퓨터를 배우는 일수의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좀 전과는 달리 사뭇 진지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해볼까요?', '할까요?', '우리집에 갈래요?', '맛있는 거 많아요'하며 끊임없이 내 손에 매달려 재잘 되던 아이였는데 말이다.

 

전교생이 32명인 작은 학교에서 올해 혼자 입학한 일수. 그래서 가져보지 못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근함, 순식간에 마음의 품속을 파고드는 포근함, 그리고 순수함을 가진 일수의 매력은 도시에선 배우지 못할 소중한 장점인 것 같다. 거기에 똑 부러지는 실력이 더해진다면 완벽한 조합이 되지 않을까?   

 

"이제 선생님이랑 약속했으니까, 컴퓨터로 공부도 하고, 타자연습도 하기다. 알겠지? 그리고 민수랑 컴퓨터로 싸우기도 없기! 약속, 도장,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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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항초등학교 학생들. 해맑은 표정에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 이유하

부항초등학교 학생들. 해맑은 표정에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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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3 15:40 ⓒ 2008 OhmyNews
#소원우체통 #나홀로 입학생 #부항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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