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형아는 핸드폰이 있긴 하던데..."

[소원우체통 취재기②] 경북 청도 방지초등학교 문명분교 준상이

등록 2008.12.11 10:10수정 2008.12.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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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초등학교 문명분교의 전교생 단체사진. ⓒ 이유하

방지초등학교 문명분교의 전교생 단체사진. ⓒ 이유하

순수. 어떤 걸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 취재를 다니면서 여러 아이들을 만났지만, 경북 청도에 위치한 방지초등학교 문명분교의 박준상군은 조금 특별한 아이였다.

 

혼자 입학하는 1학년 학생들을 위한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참여했던 당시에도 웃으면 시소처럼 아래로 기우는 눈 때문에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몇 개월이 지나 다시 만났는데도 그 웃음은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반가운 마음에 교실 문을 열자마자 "안녕?"하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준상이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쿨하다니까! 조금만 있으면 기억할 거야'라며 마음을 위로하고 있는데, 10분이 지났을까? 준상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얘가 반가워서 그래요. 반가워서. 아까는 누군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니까 우는 거예요."

 

아이 대신 선생님이 답했다. 내가 달랠 새도 없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저 멀리로 달음박질치는 준상이. 엄마처럼 푸근한 담임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부산 해운대로 놀러간 적이 있는데요. 준상이가 뭐랬는지 아세요?"

"뭐라고 했는데요?"

"누가 저렇게 물을 많이 받아놨노."

 

아! 이 기발한 발상. 캄캄한 방에 불을 밝히듯 준상이의 섬세한 내면이 보였다. 곧이어 나를 감동시키는 멘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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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준상이. ⓒ 이유하

선생님과 준상이. ⓒ 이유하

 

"전 예쁜 목련나무가 되고 싶어요."

 

"선생님, 전 목련나무가 되고 싶어요."

"왜?"

"예쁘잖아요."

 

작고 고운 단풍잎을 보고는 할머니 드려야겠다고 품에 넣는 준상이. 내가 사준 과자를 다 먹지 않고, 내일 친구와 나눠 먹겠다던 준상이. 하지만 섬세하고 수줍음이 많아서 처음엔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정도 많고 마음도 약한 아이는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마음이 아프면 울고, 울어서 존재를 알렸다. 하지만 지금은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사랑 속에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운동장에서 형, 누나들과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한테 어떤 선물을 받고 싶어?"

"……"

 

참고로 <오마이뉴스>에서는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소원 우체통'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준상아, 네 소원은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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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는 준상이의 모습. 그 풋풋한 웃음에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이유하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는 준상이의 모습. 그 풋풋한 웃음에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이유하

나는 준상이의 소원이 궁금했다. 아무리 물어도 우물우물 대답이 없었다. 

 

"너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얼른 말해봐."

"음… 진짜 없어서 그런 건데."

"진짜?"

"3학년 형아는 핸드폰이 있긴 하던데…."

 

요 조그만 게 핸드폰은! 이 누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핸드폰을 가졌단 말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들 하는 건 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건 가지고 싶은 아이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옆에 계시던 담임선생님은 "핸드폰은 아직 안된다"며 준상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나 블럭을 추천했다.

 

선생님은 도시 아이들처럼 누릴 수 있는 게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자신의 장난감을 가지지 못했다는 준상이는 소원이 없는 게 아니라, 소원을 모르는 거라며 문화 혜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아이는 예의 그 반달눈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을 가리고 조곤조곤 웃는 아이의 눈매로 보는 세상이 궁금하다. 장난감도, 빠르게 지나가는 속도감도, 건물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작은 시골마을. 아이에게 필요한 건 세상을 볼 수 있을 만큼의 작은 길을 열어주는 관심이 아닐까?

 

아직 순수한 아이의 눈에는 이 세상이 모두 아름답게만 보일 것이다. 단풍과 장미가 너무 좋다는 아이는, 저버린 앙상한 나뭇가지 앞에 서서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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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초등학교 문명분교 전경. 뒤에 있는 나지막한 산이 학교를 품에 안은 듯 작고 아름다운 학교다. ⓒ 이유하

방지초등학교 문명분교 전경. 뒤에 있는 나지막한 산이 학교를 품에 안은 듯 작고 아름다운 학교다. ⓒ 이유하

2008.12.11 10:10 ⓒ 2008 OhmyNews
#소원우체통 #방지초등학교 #문명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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