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를 달린 꽃바구니 자전거

상 받는 자리에서 덤으로 얻은 꽃다발과 자전거

등록 2009.07.01 13:29수정 2009.07.0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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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아침 열한 시,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자리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2009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 사업"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학술 여덟, 교양 열둘, 이렇게 스무 사람 스무 가지 책에 상금과 지원금을 선사해 주었는데, 저도 이 자리에 함께하면서 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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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시상식 자리에 갔습니다. ⓒ 최종규


상을 주면서 꽃다발도 한 아름 안겨 줍니다. 그런데 이 소담스러운 꽃다발이 저한테는 짐스럽습니다. 다른 분들은 자가용을 끌고 왔거나 전철 또는 버스를 타고 왔을 테지만, 저는 자전거를 타고 왔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잠깐 망설이다가 자전거 바구니에 묶어 보기로 합니다. 지난주에 자전거를 새로 장만했는데, 이번에는 바구니를 붙일 수 있는 자전거로 장만했습니다. 그동안 타 오던 다른 자전거들이 모두 '오래 탄 탓에 닳고 낡고 고장나는' 바람에 더는 탈 수 없어 새 자전거를 장만했습니다.

가방에서 끈을 꺼냅니다. 제 가방에는 자전거를 손질하는 연장과 함께 책을 묶는 끈이 늘 담겨 있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면서 가방에 모두 담지 못할 만큼 책을 사들이는 날에는 이 끈으로 책을 묶어서 집까지 나릅니다. 오늘은 이 끈이 책 묶는 끈이 아닌 꽃바구니 동여매는 끈이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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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을 묶은 자전거. ⓒ 최종규


달리는 자전거에서 떨어지지 않게끔 바싹 조입니다. 앞뒤로 가방을 메고 자전거에 올라탑니다.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달립니다. 파주로 가야 하기에 행주다리 건너는 길을 사람들한테 물어 물어 달리는데, 사람들이 잘못 가르쳐 주어 한참 헤맨 끝에 제 깜냥껏 어림으로 길을 살피며 달린 끝에 행주다리를 찾습니다. 꽃다발을 바구니에 담은 자전거는 신나게 달리며 꽃내음을 찻길에 흩뿌립니다. 행주다리를 건너는 자동차들은 그예 싱싱 달리기만 할 뿐, 꽃내음을 나누어 가지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행주다리가 끝나고 자유로로 이어집니다. 자유로에서는 자동차들이 더욱 싱싱 내달립니다. 길 한쪽 끝에서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으로서 퍽 무시무시하다고 느껴지도록 싱싱 내달립니다. 틀림없이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요, '자유'라는 이름이 붙은 길이지만 그다지 자유롭다는 느낌을 못 받습니다. 괜히 빵빵질을 해대는 자동차한테 꽃 한 송이 뽑아서 건네주고 싶으나, 자전거한테 해코지하는 자동차는 벌써 저만큼 멀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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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바구니 자전거는 행주다리를 건넙니다. ⓒ 최종규


방화동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 경기도 파주 출판문화단지에 닿습니다. 이곳 한켠에 깃들어 있는 대안학교인 파주자유학교에 들어섭니다. 한 시 반부터 하는 '자전거 정비 수업'에 이십칠 분 늦었습니다. 낯과 손만 얼른 씻고 아이들하고 자전거 수업을 합니다. 수업을 마칠 즈음, 아이들한테 '꽃바구니 자전거'를 보여준 다음 한 사람씩 타 보라고 합니다.

아이들도, 또 자동차도, 또 길을 가는 사람들도 이 꽃내음을 나누어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꿈을 꿉니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까지 자전거로 달리자니 무릎이 너무 시큰거리고 고단해 주엽역 민우회생협에 들러 아기 치솔을 산 다음, 이곳부터는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기로 합니다.

3호선 전철에 바퀴걸상 자리가 없습니다. 3호선 전철 가운데에는 바퀴걸상 설 자리가 없는 녀석이 꼭 있습니다. 맨 앞쪽에 자전거를 세우고 가방으로 받쳐 놓습니다. 종로3가에서 국철로 갈아타고 용산에서 동인천급행으로 다시 갈아탑니다. 지친 몸을 쉬며 책을 조금씩 펼쳐 읽는데, 전철에 탄 사람들 가운데 꽃바구니에 눈길을 두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제가 못 보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길에 지치고 고단하여 그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눈을 감고 잠들어 버리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모쪼록, 잠결에 코끝으로 스치는 꽃내음이 전철을 감돌고 있었음을 느꼈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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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점잖은 차림으로 상을 받았는데, 저는 자전거를 타고 움직였기에,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달려가, 이 차림 그대로 상을 받았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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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을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자전거 바구니에 묶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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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달리기 앞서. 바람을 맞지 않은 꽃다발은 무척 싱싱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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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전거는 행주다리를 건너 자유로로 접어듭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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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로 접어드는 나들목에서 사진 한 장. 달리면서 사진 한 장을 박기는 했으나, 이런 나들목 길은 자전거한테 참 아슬아슬하구나 하고 새삼 느낍니다. 자전거로 느긋하고 걱정없이 온누리 구석구석 달릴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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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한쪽 끝에서 자전거를 달려도 자동차들은 더러 자전거를 해코지하기도 합니다. 이 길은 '자동차만 달릴 수 있는' 길이 아닌데에도.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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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출판단지로 접어드는 길목. 턱을 새로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는데, 이 턱은 자전거로 달릴 때에는 몹시 위험합니다. 자전거를 생각한다면, 끝쪽을 더 많이 잘라내거나, 아예 이런 턱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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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아이들하고 꽃자전거를 함께 탑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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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한 번씩 꽃자전거를 타며 운동장을 한 바퀴 돕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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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정비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사람이 걸을 자리는 하나도 없는 시골길(지방도로)입니다. 도로공사를 비롯한 이 나라 모든 공무원, 그리고 여느 사람들조차 '사람이 걸을 길'을 거의 생각 않고 살아가기에 이런 모양 이런 길만 자꾸 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꽃자전거 #자전거 #2009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 사업 #자유로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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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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