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총각의 손맛, 유럽 처자 입맛을 사로잡다!

[자전거 세계일주114] 과테말라 안티구아

등록 2009.07.14 12:05수정 2009.07.1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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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탕 심혈을 기울였으나 마지막까지 애간장을 녹인 혼신의 역작! ⓒ 문종성


"그러니까 한국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고요?"
"두말하면 입 아프다니까요! 한국 음식이야말로 건강과 맛을 모두 잡은 대단한 음식이죠. 일단 한 상 차리면 밥과 곁들여 먹는 반찬 가지 수만 엄청나다니까요. 안 그래요?"
"그렇다마다요. 우리 음식의 특징은 발효시킨다는 점인데 이것은 맛과 영양뿐 아니라 유효기간까지 늘려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지요. 아시나요? 일본의 기무치는 한국의 김치를 베낀 거라구요!"

법수 형과 나는 둘 다 상당한 전의에 불타 있었다. 과테말라 홈스테이 가족과 두 명의 서양 여성 여행자 모두 한국 음식에 문외한이란 점이 대한의 젊은 청년들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어째서 일본의 스시는 알면서 한국의 불고기는 모른단 말인가? 왜 김치의 본류는 일본이란 말인가? 도대체 우리 음식이 우수성을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보다 명확하게 인지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들과 음식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열혈 애국자가 되어 있었다.


"아, 한국 음식 한 번도 안 먹어 봤어요? 숙소 아저씨 아주머니는 그렇다 치고, 두 여성분 모두?"
"네……."
"불고기 안 들어 봤어요? 김치 안 먹어 봤냐고요?"
"(풀 죽은 목소리로)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형?"
"그럼 내일 저녁은 우리가 직접 한국 음식으로 대령하도록 하지요. 아주머니는 내일 하루 그냥 쉬시면서 우리가 만든 한국 음식에 감탄할 준비나 하시고요."
"내일은 모두들 주방에 일체 접근 금지입니다. 저녁에 성대한 한국 음식잔치를 열도록 하죠.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와우! 그렇다면 내일 저녁은 권과 문이 확실히 책임지겠군요?"
"후훗~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내일 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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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구아에서 지내는 동안 홈스테이 집 마당에 탐스럽게 열린 석류만큼이나 마음이 넉넉했다. ⓒ 문종성


다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기대를 보내자 우리는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음식을 자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격하게 흥분한 우리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이내 집나간 이성을 찾아버리고 말았다.

"근데 형, 우리 내일 뭘 만들죠?"
"그러게 말이에요. 근데 종성씨, 음식은 잘해요?"
"아니, 자신 있게 큰소리치던 사람이 누군데……. 형은요?"
"아니 그게 난 종성씨가 자취 몇 년 했다기에……."
"헉!"

순간 둘 다 얼어붙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데 1분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너무 한국 음식의 우수성만 홍보한 나머지 만드는 과정에 고달픔은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음식을 만들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완벽한 결과물만 머릿속에 떠올렸던 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손맛이 아닌 우리 어머니들의 손맛으로 말이다.

"뭘로 하지? 잡채? 계란말이? 김밥? 볶음밥? 삼겹살? 갈비? 김치찌개? 된장찌개? 부침개? 튀김? 떡볶이? 닭볶음탕? 파전? 국수? 그냥 라면? 오, 이런 맙소사!"


우리는 그날 밤 아이디어만 쥐어 짜내다 메뉴도 정하지 못한 채 혼곤한 잠에 빠져 들었다. 실로 아침 햇살이 두려운 우울한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법수 형과 나는 아침 식사를 하면서 홈스테이 식구들과 여행자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다들 오늘 저녁을 기대한다며 격려해 주었다. 아주머니의 우리를 쳐다보는 상냥한 웃음의 의미가 섬뜩했다. 이 부담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 아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쥬스만 간단히 걸친 채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걱정되기는 룸메이트인 법수 형도 마찬가지. 자취생활 6년에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김치볶음밥과 김치찌개, 계란 프라이, 그리고 밥과 라면뿐인데.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죽으나 사나 오늘만큼은 3개국 사람들에게 우리 요리의 맛과 멋을 알리는 대한민국 대표 요리사! 우리는 그러한 사명을 안고 과감히 맞부딪히기로 했다. 그리고 두문불출 한 채 점심때까지 장고의 장고를 거듭한 회의가 계속되었다. 드디어 최종 결정의 순간.

"일단 여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재료가 한정되어 있으니 간단히 준비하면서도 최대한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로 정하자구요."
"그럼 볶음밥과 불고기 상추쌈, 그리고 어묵탕으로 최종 확정하죠."
"OK! 자,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해 봅시다. 파이팅!"
"최고의 저녁 만찬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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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o de Santa Catalina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 안티구아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 문종성


저녁 식사 4시간 전. 우리는 전광석화처럼 맹렬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시장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없는 재료와 반찬은 우리의 취지에 마음을 합해 준 한인 식당의 후원으로 특별 공급받았다.

남은 사람은 부엌에서 감자와 당근을 깎고, 마늘을 까고 다지는 등 제반 준비를 해 놓았다. 하지만 남자 둘이서 갑자기 큰일을 하려니 도무지 정신없었다. 재료가 갖춰지면 일의 순서가 헷갈렸고, 일의 순서대로 할라치면 이번엔 재료가 다 준비되지 않았다. 슬슬 열기가 올라오는 주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죽을 맛이었다. 홈스테이 아주머니는 알아서 잘해 보라는 듯 끝까지 뒷짐 지고 흐뭇하게 미소 짓더니 주방에는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 참 상냥하게 매정하셨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거였다. 우리는 어머니의 존재, 그 거대하고도 위대한 자리를 뼈저리게 갈급했다. 치명적 부재의 공간을 도대체 어떻게 메운단 말인가. 준비하면서 정말 서로 사무쳤다. 차라리 설거지와 빨래를 도맡더라도 정말 요리만큼은 잘하는 배우자를 만나야겠다고.

저녁 식사 두 시간 전. 처음으로 완성된 음식은 어묵탕이었다. 기대 반 긴장 반, 김이 모락모락나는 어묵탕을 보며 수저로 국물을 뜬 법수 형. 하지만 국물 맛을 본 그의 얼굴에서는 '야동'이라고 들떠 클릭했다가 '야구동영상'이 뜨는 순간에 짓는 그런 참담한 표정이 연출되었다. 분위기 파악이 안 된 내가 맛을 보았다. ……. 난 차마 법수 형을 끌어안고 울 자신이 없었다.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간장을 더 넣고, 설탕도 넣어보고, 파도 넣었다. 어렵게 공수한 마법의 조미료 다시다도 넣었다. 그리고 다시 몇 분 후 맛 본 어묵탕. 법수 형이 조심스레 수저를 들었다. 내 눈은 오직 그의 입술만 주시했다. 잠시 후, 그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대로 우리의 공약은 허풍이 되고 말 것인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었던 나 역시 국물 한 수저 떠서 급히 입 안에 넣었다.

'앗 뜨거!'

어묵탕은 일단 보류하고 다른 음식부터 신경 쓰기로 했다. 상추를 씻고, 불고기를 먼저 준비했다. 고기를 익히는데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칼을 잡은 나는 불고기를 최대한 얇게 썰었다. 간만에 도마 위에서 칼질 해보니 소싯적 피자집에서 채소 좀 썰던 가락이 어설프게라도 나와 다행이었다. 그 다음은 볶음밥. 하지만 이걸 어째? 왕초보 요리사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닥쳐왔다.

저녁 식사 한 시간 전. 밥이 설익었던 것이다. 이 어찌된 영문인가. 홈스테이 하던 집은 우리처럼 전기밥솥이 아닌 불에 때우던 조리방식이었는데 그만 불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평소 땐 불로 때는 밥도 잘만 익더니만 안될 땐 꼭 몰아서 안 되는 법. 하지만 다시 새로 할 수도 없고 불과 물을 적당히 조절해 재차 밥을 찌기로 했다.

부엌 안은 완전 이사 간 집처럼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 그릇이 흐트러져 있었고, 비닐과 다른 야채껍질 같은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으며, 물건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 헤매던 까닭에 기름을 쏟고, 싱크대 위, 아래 모두 정리가 안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린 개의치 않고 오직 음식에만 집중했다. 뒷정리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황금같은 시간이 흐르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도 흘렀다.

저녁 식사 정각. 다행히 볶음밥 야채 준비가 다 되었고, 계란 프라이까지 익혀 잘게 썰어놓았다. 고기를 거의 다 익힌 시점에 식탁에 데코레이션을 시작했다.

저녁 식사 예정 20여 분 후. 모두들 음식 냄새를 맡고 식탁에 둘러앉았다. 보이지 않은 전쟁터였던 부엌은 아수라장이었지만 식탁만큼은 남성 특유의 투박한 멋으로 세팅했다. 마지막으로 내내 골치 썩혔던 어묵탕을 내 왔다. 목구멍이 타 들어갔다. 마른 침만 꿀꺽 삼켰다. 칭찬에 후한 사람들이라 맛없어도 예의상 웃어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엄습해 왔다. 분명 공부 안하고 본 기말고사 점수 확인하는 것보다 더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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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한 만찬 맙소사! 식탁 위의 음식 모두 우리가 만들어냈다니! 좌측 두 번째 법수 형도 이 순간이 감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 문종성


'이런 거짓말 같은!'
놀랍게도 우려했던 어묵탕의 맛은 거의 완벽해져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야 가장 중요한 어묵의 맛이 무와 어우러져 국물에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나와 법수 형은 심하게 감격했다. 이럴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막판에 영화 속 해피엔딩처럼 이탈리아 요리사도 울고 갈 맛이 나온단 말인가! 빈 말이 아니라 어묵탕에 대한 평가는 최고였다. 여세를 몰아 불고기, 비빔밥에도 손을 대던 사람들.

우리는 야채는 잘게 썰어 고기와 따로 먹는 서양의 문화와 달리 고기를 상추에 쌈 해 고추장을 얹어 먹는 것과 젓가락 사용법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가르쳐 주었다. 한국 음식을 한국적으로 먹어보란 의미였다. 결과는? 100점 만점에 200점! 대성공이었다. 무슨 맛일까 궁금해 하며 먹는 사람들의 표정이 환하게 펴지자 그제야 쪼그라든 우리의 심장도 힘차게 펴졌다. 불고기는 역시 대중적이었다. 그리고 서양과 중남미 사람들에게도 보란 듯이 통했다. 정말로 맛있었기에 모두들 남김없이 모조리 해치웠다.

일주일간 머문 홈스테이 중 분위기는 과연 지금이 최고였다. 동양의 음식 문화에 야채가 많이 들어간다는 것과 다양한 맛을 한 번의 식사 타임에 경험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서양 여성들에게 호평을 받아냈다. 우리는 그들의 칭찬과 실제로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자식 잘 먹는 모습에 수저를 들지 않아도 배부른 부모의 마음이 되어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대입을 앞둔 홈스테이 아주머니의 딸이 마침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다. 며칠 지내면서도 모르다가 처음으로 보는 아이였다. 그런데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호수 같은 눈망울, 앵두 같은 입술, 그리고 우윳빛 뽀하얀 피부라고 유치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절대미인의 경지였다. 순간 과테말라 국보급 아름다움을 지닌 부잣집 외동딸의 포스가 심상치 않았다. 우리는 그만 둘 다 넋이 나가버렸다. 사랑에 국경과 나이는 잊은 지 오래. 열 살 차이에 그깟 희망의 꽃을 짓밟지는 않으리라.

저녁 식사 칭찬으로 한껏 고무된 법수 형은 학업으로 고단한 딸도 같이 와서 저녁 먹는 게 좋겠다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지만 씨도 안 먹혔다. 이에 심리전의 대가라고 자부하는 난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 여행하면서 적응력도 뛰어나겠다, 나는 술담배 같은 건 멀리하는 건강한 청년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무척 사랑한다, 봐라 이렇게 음식도 잘 하지 않느냐며 진취적이면서도 가정적인 한국 남자에 대한 얘기로 분위기를 주도해 나갔다. "이 정도면 남편감?"이라고 무언시위를 한 것이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눈은 냉연히 말하고 있었다.

"닭을 치시오! 그리고 마저 밥이나 잡수시오!"

빼어난 미모에 여행자 본연의 모습을 잊고 잠시 침 흘리던 우리는 결국 그 침을 음식 소화시키는데 사용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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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홈스테이 가족과 유럽 처자들 모두 한국 음식을 맛있게 잘 먹었다. ⓒ 문종성


식사 후, 설거지를 하고 모든 뒷정리를 마치자 고단한 하루가 지나갔다. 밤 10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아, 집에 가면 정말 어머니께 잘해 드려야겠어요. 식사 한 번 차리기 이렇게 힘드니 원."
"그러니깐요. 밥 한 번 차렸을 뿐인데 몸이 뻐근하네요. 이렇게 힘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기나긴 식사 시간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오자 둘 다 한껏 뿌듯함으로 만족해했다. 오늘 밤 만큼은 한국인의 자부심을 마음껏 느껴도 좋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가슴 속 진심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총각들의 손맛은 유럽 처자들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았지만 홈스테이집 소녀의 부모 마음까지는 끝내 사로잡지 못했다고. 그리고 너무 익숙해서 인지하지 못했던 위대한 어머니의 자리가 정말 크게 느껴졌다고.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덧붙이는 글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과테말라 #자전거여행 #세계일주 #안티구아 #중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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