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5학년, 졸업유보제도에 또 한 번 웁니다

졸업유보제운영 학교 늘어...돈 내고 졸업을 유보하란 말입니까?

등록 2011.08.12 11:10수정 2011.08.3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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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만 해도 나에게 5학년은 12살 초등학생의 신분만을 의미했다. 하지만 졸업예정자인 지금의 나에겐 5학년은 무거운 선택사항이다. 요즘의 '5학년'은 정규학기를 마친 이후에도 졸업을 연기하거나 유보해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을 일컫는 용어다. 기업들이 졸업예정자를 선호하는 현실 속에서 재학생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고육지책이자 안전망인 셈이다.

논문 안내면 자동 유보, 꼼수? 아니 필수!

취업준비생인 윤지혜(24, 서울여대)씨는 취업준비를 위해 정규학기를 마친 후 휴학을 선택했다. "정규학기를 마치고도 사회의 무언가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 패배주의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나조차도 취업에 실패했을 때 어느 계층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는 것 자체가 두렵다. 기업뿐만 아니라 취업준비생들도 여기에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불안한 심경을 토로했다.

불안한 백수 신분보다는 안정적인 재학생 신분을 유지하면서 취업준비를 하려는 이유다. 5학년의 길을 걷고 싶은 이들은 논문을 제출하지 않거나 이수해야 하는 과목을 남겨두는 방법으로 졸업을 늦춘다. 일종의 '꼼수'라고도 하지만 학점을 남겨놓을 경우 9학기 등록을 하고 수업을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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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료 판정을 받은 다음 학기에는 별도로 등록금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숙명여대의 졸업규정 ⓒ 박주희


하지만 서울시내 몇몇 학교 일부는 따로 학점을 신청하거나 돈을 내지 않고도 졸업 유보가 가능하다.

중앙대, 홍익대, 숙명여대, 한국외대, 동국대 등 실제로 서울소재 6개 대학은 졸업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추가 등록금 없이도 졸업을 유보할 수 있다. 위 대학에 해당되는 홍익대학교의 관계자는 "졸업을 유보하는 제도는 없으며 졸업을 연기하고자 하고 싶으면 학생이 논문을 제출하지 않으면 된다"고 밝혔다.

숙명여대의 경우에도 졸업 요건만 충족시키지 않은 수료 상태인 경우 등록금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학교가 이와 같은 것은 아니다.


졸업 유보하는데 돈을 왜 내?

내가 다니는 서울여대는 졸업유보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다. 4학년이 되고서 동기들이 분노한 것은 졸업을 유보하려면 등록을 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졸업 유보하는데 왜 돈을 내냐"며 본인들의 학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학점은 다 채운 상황에서 졸업 요건만 충족시키지 않으면 돈을 내지 않고도 졸업이 유보된다는 것이다.

2006년 이미 전남대와 부산 소재의 일부 대학들은 졸업 유보제를 도입했다. 최근에는 강원대까지 실시하고 있다. 졸업유보제도는 졸업 여건을 모두 충족한 학생들의 졸업을 유보시켜주는 제도다. 서울여대 관계자는 "졸업학기 이후에도 본인의 자기계발 또는 개인사정으로 원하는 수업을 더 듣고 싶다는 요청으로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졸업 유보는 반드시 1학점 이상 수강신청을 해야 가능하단다. 졸업학점을 모두 채웠음에도 말이다. 쉽게 납득이 되질 않았다. 이유를 묻자 학교 관계자는 "수업을 더 수강하고 싶다는 학생들의 요청으로 실시된 제도이기 때문에 1학점 이상 이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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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대 졸업유보관련 규정 ⓒ 박주희



타학교들처럼 졸업요건만 채우지 않고 유보할 순 없을까. 논문이나 어학성적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졸업이 자동으로 유보되기는 한다. 하지만 졸업요건을 미충족한 상황이므로 9학기 재학생으로 분류되어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이 때 등록하지 않을 경우 제적처리된다. 게다가 졸업요건이 1학점인 졸업 인증 과목의 이수로 연결되어 있어 논문을 미제출하거나 인증과목 자체를 수강하지 않았을 경우 9학기에라도 추후 이 과목을 신청해서 이수를 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9학기에는 1-3학점 수강시 등록금의 1/6을 내야 하니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번 학기, 제대한 동생이 복학한다. 내 등록금까지 합치면 700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다. 이번 봄까지만 해도 다음 학기 등록금이 마지막 등록금이고 취업하면 부모님의 부담도 조금 덜어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뿔싸. 닥쳐보니 5학년이 남의 일이 아니다. 어떻게 5학년을 다니겠다고 말씀드려야 할까. 벌써부터 묵직한 짐이 얹혀져 있는 기분이다.

최근 서울대도 학칙을 개정해 정규학기를 초과해 졸업을 유보하고 싶은 학생들은 반드시 수강신청을 하도록 했단다. 5학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내고서라도 졸업을 늦춰야 하는 것이다. 4년간 낸 등록금도 어마어마한데 졸업을 연기할 때도 돈을 받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처사일까. 취업이라는 파도에 마주한 5학년, 그리고 앞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많은 학생들을 위한 유연한 졸업 규정 도입이 시급한 때다.

덧붙이는 글 | 박주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박주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5학년 #졸업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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