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짝짓기만 500번..."저러니 사냥할 힘 있겠어?"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⑩] 동물의 왕국 마사이마라 국립공원(2)

등록 2013.08.08 14:54수정 2013.08.0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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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시즌이라 그런지 초원의 아침은 제법 쌀쌀했다. 아침에 눈 뜨면 차려져 있는 뷔페식 아침을 먹고 나니 로렌스가 오늘을 일정을 간략히 소개해준다. 오전 7시 출발 오후 4시 귀가, 물론 살아남는다면. 마사이마라에서 총을 들고 다니는 것은 불법이지만 사자가 사람을 덮치는 것은 합법이니 행운을 빈다며 너스레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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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한 개체 수를 자랑하는 누떼들. ⓒ 김동주


공원 입구부터 어디를 가든지 막강한 개체 수를 자랑하는 동물은 누다. 한국에서는 '물소'라고 부르기도 하는 녀석들은 마치 소처럼 할 일 없이 초원 위를 느릿느릿 서성이며 사람이 다가오든 말든 관심이 없다. 누의 얼굴은 막 오래달리기를 마치고 온 것마냥 언제나 입가 가득한 털에 한 가득 침이 묻어 있고 얼굴은 주름이 가득하다. 아무런 보호 수단이 없어 보이는 녀석들이 이토록 막강한 개체 수를 유지하는 비결은 바로 얼룩말과의 공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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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의 든든한 보디가드, 얼룩말 ⓒ 김동주


마치 계약이라도 한 것처럼 누 떼의 근처에는 언제나 소규모의 얼룩말들이 있는데 이 얼룩말들의 역할이 바로 안전요원이라고. 상대적으로 개체 수가 적은 얼룩말은 누 틈에 자신을 숨기고 대신 발달한 시각과 청각으로 위험을 미리 감지하면서 누 떼와 함께 움직인다. 이들의 본능이란 인간의 지혜 못지않게 위대하다.

한편 운전기사인 로렌스의 연출 실력은 매우 뛰어났다.

"얘들아. 사자한테도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

흔히 야수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자는 맹수 중에서는 드물게 무리 생활을 하는데 그 개체 수를 유지하기가 참 힘들다고 한다. 어디 가서 잡아먹힐 염려도 없는 사자가 개체 수를 유지하기 힘든 이유는 바로 낮은 출산율 때문. 다른 동물에 비해 출산율이 현저히 낮은 사자는 그래서 수컷이 애를 먹는다고. 수컷과 암컷이 같이 있으면 정확히 15~20분마다 한 번씩 짝짓기를 하기 때문이란다.

"거짓말 하지마 로렌스. 그게 말이 돼?"
"하하. 친구 저길 보라고. 그들에게도 프라이버시가 필요하니 이 정도가 좋겠네."


그렇게 로렌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누런 풀숲에 수컷 사자 하나가 암컷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소개팅에 나온 맞선 남처럼 머뭇머뭇 거리던 수컷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조금씩 조금씩 암컷에게 다가갔고 암컷에게서 별 거부 반응이 없자 그 등에 올라타 짝짓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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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중인 한 쌍의 사자 ⓒ 김동주


그렇게 시작한 짝짓기는 불과 30초 만에 끝이 났다. 사자는 일주일에 이런 식의 짝짓기를 무려 500번씩이나 한다고. 이쯤 되면 백수의 왕이 아니고 '정력의 왕'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느낌.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차에서 15분을 기다렸고 정확히 15분이 지나자 녹화한 영상을 보듯 똑같은 장면이 벌어졌다.

"사자는 암컷만 사냥을 한다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았어. 저러니 사냥할 힘이 있겠어?"

니콜이 던진 한 마디에 모두는 크게 웃으며 어쩐지 주름이 늘어난 듯한 수컷 사자에게 안녕을 고하고 사자커플의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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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의 거리, 불과 3미터 ⓒ 김동주


아무래도 오늘은 사자의 날인가보다.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 녀석은 처음에 우리가 다가갈 때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딴 곳을 보고 있더니 하나둘씩 카메라를 꺼내 들자 갑자기 고개를 돌려 우리를 응시했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공포감. 한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대던 우리는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역시 그래도 사자는 사자다.

'BIG 5'를 찾아서

아프리카에서는 다섯 가지의 동물을 가리켜 흔히 '빅(BIG) 5'라고 부른다. 사자, 버팔로, 코뿔소, 표범, 코끼리를 이르는 말인데 이 다섯 동물을 모두 보는 여행자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버팔로와 코끼리야 한여름 해운대의 파라솔 마냥 많지만 특히 보기 힘든 것이 코뿔소와 표범이다. 나무 위에서만 생활하는 표범은 발견하기가 쉽지 않고 코뿔소는 멸종위기라 개체 수가 극히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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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파이브와 동시에 원숭이, 하이에나와 더불어 못난이 삼인방에도 속하는 버팔로. ⓒ 김동주


비록 해운대 파라솔 취급을 받는 버팔로와 코끼리지만 이들도 특별한 장면을 연출할 때가 있다. 드라이브가 한참 이어지던 도중에 누가 봐도 가족이 틀림없는 코끼리 무리가 우리 앞을 가로막았고 우리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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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앞을 막아선 코끼리 가족.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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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한 가족을 이룬 코끼리들 ⓒ 김동주


어디를 가나 했더니 녀석들은 아빠를 찾아가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먹거리를 찾아낸 아빠는 가족이 오자 길을 안내하고 엄마는 풀을 뜯고 형은 그 뒤를 따르며 막내는 가만히 엄마의 품으로 파고든다. 영락없는 우리네 가족의 모습과도 같다. 마사이마라는 매일같이 이런 드라마가 펼쳐진다.

점심 때가 다가오자 로렌스는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하는 국경지대로 차를 몰았다. 탄자니아의 국경인 세렝게티로 이어지는 그 초소는 공원 내에서 유일하게 화장실을 갖춘 곳으로 모든 투어차량이 점심시간에 이곳에 들른다. 그렇지만 공원 내에서 국경을 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이 공원에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것은 동물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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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의 탄자니아와 케냐의 경계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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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 상표의 색을 꼭 닮은 도마뱀과 앵무새 ⓒ 김동주


어쩌면 펩시콜라의 로고 색깔은 이곳 마사이마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닐까. 그 선명한 자연의 색감은 그 어떤 재료로도 흉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 흐르는 강가에는 하마들이 가득하지만 위험하니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로렌스가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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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 있는 모습을 보기가 무척 힘든 하마 ⓒ 김동주


우리 역시 표범과 코뿔소를 놓친 상태였는대 갑자기 차 내에 있는 무전기가 요란스럽게 울어대더니 로렌스가 어디론가 급하게 차를 돌렸다. 기대해도 좋다는 말과 함께. 도대체 이 공원 안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서 만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제법 많은 투어 차량들이 모여 들게 만든 그 주인공은 바로 치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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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치타와 네마리의 새끼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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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마치 고양이 같다. ⓒ 김동주


나무 그늘 밑에서 한낮의 햇빛을 피하고 있는 그들은 어미 치타와 4마리의 새끼였다. 새끼치타를 보는 건 매우 드문 일이라는 로렌스의 말이 아니라도 우리는 이미 그들에게 빠져들어 있었다. 그렇지만 차량들이 모여들어서 이들을 에워싸기 시작하자 앙증맞은 고양이 같은 모습을 한 새끼는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으로 자꾸만 어미의 품을 파고 들었고 어미도 불안해진듯 자꾸만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하루 종일 쳐다봐도 질리지 않을 것 마냥 귀여운 새끼 치타였지만 로렌스는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를 멀찌감치 물렸다. 그래 우리는 그저 손님일 뿐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그토록 선명한 호피무늬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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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선명한 그 날의 기억들 ⓒ 김동주


표범을 치타로 '퉁치기로' 하면 이제 코뿔소만 남았지만 로렌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코뿔소는 정말 보기 드물다며. 결국 우리는 이날 코뿔소를 보지 못했지만 이 야생 생태계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있어서 '마사이마라'라는 말과 '고맙다'라는 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사이마라에 머물렀던 2박 3일간은 분명 여행을 출발한 그날처럼 매 순간 짜릿짜릿했고 내가 살아있음을 끊임없이 되새겨주었으니까.

함께 사파리 투어를 했던 그 친구들은 그 후로도 서로를 그리워하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그리고 있다. 2012년의 여름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마사이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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