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소유경영'이 성공비결? 한국재벌과 다르네

[기획-독일을가다④] 윤활유 세계 1위 푹스 "당연히 오너보다 회사"

등록 2013.10.31 19:59수정 2013.12.1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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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독일을 찾았습니다. 왜 독일이냐구요? 우선 우리와 독일은 비슷한점이 많습니다. 2차 대전후 분단국가였고, '라인강'과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던 것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나라 크기도 비슷하고, 천연자원이 별로 없이 인적자원에 의존하고 수출국가라는 점까지. 하지만 최근 10년사이 한국과 독일은 전혀 달리 가고 있습니다. 한국은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사갈등은 여전하고, 계층간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면서 국민들의 사회경제적 민주화 요구가 거셉니다. 독일은 세계 경제위기속에서 지속적인 성장과 복지국가를 유지해가고 있습니다. 독일모델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때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이 어떻게 '유럽의 강자'으로 부활했을까요. <오마이뉴스>는 궁금했습니다. 10여일동안 독일 곳곳을 다녔습니다. 거대 자동차회사 노동자부터 기업인, 교수, 일반시민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을 해봤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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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은 강한 중소기업들이다. 이른바 히든챔피언으로 불리는 이들 기업들의 경쟁력은 수출에서 나온다. 이들 기업의 매출액 가운데 수출이 차지하는비율이 평균 62%에 달한다. 세계최고의 윤활유 제조업체인 '푹스'역시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한 수출 비중이 높다. ⓒ 김종철


고속열차 아이씨이(ICE)가 독일 남서부의 소도시 만하임 중앙역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창밖으로 라인강의 좌안(左岸), 네카어강 너머로 높게 솟은 굴뚝들과 네모난 공장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 독일의 대표적인 '히든챔피언'인 '푹스오일(Fuchs-oil)'이 있다.

히든챔피언이란 말은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처음 만들었다. 그의 정의는 '세계시장 점유율 3위 이내, 연매출 약 4조 4000억 원 이하, 그러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다. 덩치는 작아도 탄탄한 전문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한 강소기업을 말한다. 이미 알려진대로 독일은 명실상부한 히든챔피언의 나라다.

헤르만 지몬이 2012년 집계한 전세계 히든챔피언 2734개 중 절반에 가까운 히든챔피언 기업(1307개)이 독일에 있다. 이는 독일이 2008~2009년 전세계를 강타했던 경제위기를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보다 빨리 극복한 원인 중 하나로도 꼽힌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과 효율성으로 위기 극복의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지난달 4일 찾은 푹스오일(아래 푹스)도 마찬가지다. 윤활유 전문 생산업체인 푹스는 1931년 창사 이래 오로지 윤활유 관련 제품 생산에만 집중해 세계시장을 석권한 기업이다.

푹스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49개 계열사를 두고 있고 한국의 울산공장을 비롯한 총 33개의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푹스가 생산한 1만여 개의 윤활유 관련 상품들은 전세계 100여 국에서 팔리고 있다. 매출액도 상당하다. 지난 2012년 약 2조 6417억 원(18억 1900만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약 1조 3216억 원(9억 1030만 유로)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푹스의 아시아·태평양·아프리카 총괄책임자인 게오르그 린지 이사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가족소유경영의 전통이다. 단기적 수익 실현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 즉, 회사 주식의 등락에 관계없이 3대, 4대를 이어가면서 창사 당시의 철학이나 사업전략을 계속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너 가문 후계자라도 능력 검증받지 못하면 경영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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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많은 히든챔피언이 가족기업이다. 푹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쉽게 경영권을 넘기지는 않는다. 게오르그 린지 이사는 "슈테판 푹스 현 회장이 가문의 후계자라더라도 능력을 검증받지 않았다면 이사진의 일원으로 뽑힐 수 없었다"고 단언했다. ⓒ 김종철


그의 말처럼 푹스는 오너 가문이 3대째 경영을 맡고 있는 가족소유기업이다. 상장기업이지만 푹스 가문이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의 51%를 보유하고 있다. 창업자 루돌프 푹스가 31년간, 아들인 만프레드 푹스 2대 회장이 41년간 회사를 이끌었고, 현 회장인 슈테판 푹스가 지난 2004년부터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러나 게오르그 린지 이사의 답변대로라면, 한국 역시 히든챔피언의 나라가 돼야 한다. 국내 대다수 중소·중견기업들이 가족소유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들만 아니라 삼성·현대·LG 등 재벌들도 사실상 가족소유기업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헤르만 지몬이 2012년 정리한 한국의 히든챔피언 수는 23개에 불과하다. 

독일과 비교하면 가족소유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곱지 않은 편이다. 오너 경영자의 독단, 상속권 분쟁 등 부정적 이미지가 견고하다. 특히 무능력한 후계자가 '핏줄'이라는 이유로 경영권을 승계해 회사의 문을 닫게 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30대 재벌그룹 중 16개가 부도를 맞았다. 이 그룹들의 경영자 중 상당수는 재벌 2세였다. 이 때문에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는 것을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체제로 보기도 한다.

게오르그 린지 이사 역시 '검증되지 않은 경영권 승계'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슈테판 푹스 현 회장이 가문의 후계자라더라도 능력을 검증받지 않았다면 이사진의 일원으로 뽑힐 수 없었다"고 단언했다. 그에 따르면, 슈테판 푹스 회장은 푹스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 3년, 푹스의 북·남미 지사에서 7년 등 총 10년의 능력 검증 기간을 거쳤다. 상당수 국내 재벌 3~4세들이 경영수업 기간 중 수년씩 해외 유학을 다녀오는 것과 달리, 현장에서 경영능력을 증명했던 셈이다.

후계자를 최종 선임하는 권한도 최고경영권자에게 있지 않다. 독일 기업은 법에 따라, 회사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와 별도로 감사회를 구성하게 돼 있다. 이 감사회가 이사회를 결정하고 후임 최고경영권자도 선임한다. 특히 이 감사회는 노동조합 측 인사도 참여하게 돼 있다.

푹스의 경우, 사측 인사 4명과 노조 측 인사 2명으로 감사회가 구성돼 있다. 푹스 가문은 이사회와 감사회 모두 1명씩만 참여할 수 있도록 정해놨다. 즉, 오너 가문의 전횡을 사전 차단할 수 있는 견제구조가 공고히 마련돼 있는 셈이다.

최고경영자가 죽은 뒤에나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는 한국과도 다르다. 만프레드 푹스 전 회장은 65살 때 현 슈테판 푹스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현재 감사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게오르그 린지 이사는 "전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왜 그렇게 일찍 물러났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독일의 연금수령나이(65~67세)에 맞춰서"라고 말했다. 그는 총수가 죽을 때까지 경영권을 놓지 않는 한국 재벌의 경우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현 최고경영자의 건강악화로 급하게 후계자를 결정할 때는 그 자식들의 능력이 안 되거나 그들 스스로 해당 사업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가족소유기업이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거나 회사를 매각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이는 결론적으로 그 회사가 경영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이다"고 강조했다.

"당연히 회사가 오너보다 중요"... 사내교육기관 두고 직원에게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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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히든챔피언들이 강력한 경쟁력을 갖게된 이유 중 하나가 기술력을 앞세워 전문성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다. 세계시장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투자를 많이하고 있다. 사진은 푹스의 연구실 장면. ⓒ 푹스


이같은 시스템은 "회사의 이익이 오너 가문의 이익보다 우선하다"는 명제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만프레드 푹스 전 회장이 강조했던 말로, 푹스 가문의 법규처럼 이어지고 있다. 게오르그 린지 이사는 '이익(Profit)'이 아니라 '가치(worth)'에 보다 가까운 뜻이라고 수정했다. 회사가 오너 가문보다 당연히 더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그 같은 명제가 법규처럼 만들어진 특별한 배경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법규가 아닌 도덕(moral)"이라고 답했다.

최근 재벌총수들이 연일 배임·횡령·탈세 등의 혐의로 법정에 서고 있는 국내 현실과 명백히 비교되는 답변이다. 이와 관련,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최근 라디오인터뷰에서 "재벌총수 일가가 회사와 그 주주들을 위해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사익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사례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며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이 될 수가 없고,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오너 가문이 회사를 위해 '복무'하는 만큼 '세습' 체제로 이뤄지는 경영권 승계 과정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게오르그 린지 이사는 "대부분의 푹스 직원들이 현 슈테판 푹스 회장의 취임을 기뻐했다, 부정적인 분위기는 없었다"고 전했다.

회사가 직원들에 대해 지속적인 투자를 해온 것도 이같은 일체감 형성에 도움을 줬다. 푹스의 이직률은 2012년 기준 3.5%로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푹스 영국지사 인사관리 담당자인 수잔 맥클럭은 지난해 연보에서 이를 거론하며 "오랫동안 노사가 형성한 파트너십이야말로 푹스의 성공 기반이었다"고 풀이했다.

숙련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평생교육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푹스는 10년 전부터 사내교육기관인 '푹스아카데미'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은 푹스아카데미의 기술 및 마케팅 교육을 이수하며 자기계발을 할 수 있다. 푹스 직원들은 지난해 한 해에만 평균 15.4시간의 사내교육을 이수했다. 회사는 이같은 사내교육기관을 이용, 경력직원이 필요할 때 외부에서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니라 내부인재를 활용하고 있다.

게오르그 린지 이사는 "독일 사회가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평생교육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에 사내 직원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며 "직원이 원한다면 상사의 승인을 거쳐서 현 업무와 관계없는 프로그램도 이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신뢰 관계는 2008~2009년 금융위기 당시 더욱 빛났다. 푹스는 2008년 당시 순수익 면에서 전년 대비 -8.3%라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푹스는 한국의 울산공장을 포함해 전세계 생산기지에서 10%씩 인력감축을 단행하면서 이 위기를 벗어났다.

노동조합이 감사회 등을 통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인력감축 결정에 대한 반발이 있지 않았냐고 물었다. 게오르그 린지 이사는 이에 대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모든 생산부서에서 골고루 인력감축을 단행하면서 (이사회 결정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회의 결단에 대해 회사 전체의 신뢰가 있었다는 얘기였다.

가족소유기업 세제혜택 차이, 결국 오너 가문의 차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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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히든챔피언은 스스로 사회와 지역에 대한 책임감을 실천하고 있다. 따라서 부의 대물림이라는 시각보다 직원들은 사장의 능력있는 자녀들이 경영을 승계하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도 많다. 사진은 푹스 직원이 제품 품질을 체크하고 있는 모습. ⓒ 김종철


이처럼 가족소유기업에 대한 양국의 인식 차는 정부의 세제부터 차이로 드러난다. 독일은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5년간 고용을 유지할 경우, 85% 정도 상속세를 공제한다. 7년간 고용을 유지하면 공제율은 100%다. 반면, 한국은 매출 2000억 원 미만 중소·중견기업에게만 300억 원 한도에서 70% 상속세를 공제한다. 상속 이후 10년간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조건도 걸려 있다. 가족소유기업의 세습경영을 오너 가문의 '부의 대물림'이라고 보는 한국과 달리, 독일은 그를 그저 기업경영의 방식 중 하나로만 보는 것이다.

게오르그 린지 이사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소유기업에 대한 정부의 세제혜택"에 대한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정부는 오직 그 기업이 합법적으로 구성, 운영되는지만 본다"고 답했다.

독일 만하임응용과학대학의 빈프리드 만하임 교수는 이같은 인식 차에 대해 "독일의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독일 내에서 중소기업은 곧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서 "해당기업의 수익이 (오너 가문의) 사치로운 삶을 위한 돈으로 유출됐다면 과세가 단행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오너 가문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을 구분할 수 있는 환경이 독일과 한국의 '차이'를 빚어낸 것이다.

게오르그 린지 이사는 마지막으로 가족소유기업의 덕목으로 차별화와 공유를 강조했다. 장기적 안목에 따른 경영이 가능하고 전 구성원이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중소기업을 향한 조언이었다. 그는 "유럽의 많은 중소기업들은 '산업의 심장' 역할을 하는데 반해 한국은 대기업이나 작은 영소기업만 있는 것 같다, 그 중간이 없다"며 "남과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주력 분야에 대한 '혁신'을 통해 1등 기업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또 "다른 회사가 '홍보'에 많은 예산을 들이지만 우리는 연구개발(R&D)에 더 투자하고 있다"며 "그것이 푹스의 성공비결"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재 전 직원의 10%(378명)에 달하는 인력을 R&D 부서에 투입하고 있다. R&D 부문 예산만도 2012년 기준 약 424억 5096만 원(2920만 유로)에 달한다.  

"우리는 재단사가 고객에 맞춰 옷을 만들 듯, 시장의 요구에 걸맞은 '맞춤형 윤활유'를 만들고 있다. 다른 회사와 똑같은 것을 생산해 싸게 팔려는 게 아니다. 이를 위해선 최고경영자가 확실한 철학과 가치를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 또 경영진이든 종업원이든 이를 모두 공유해야 '히든챔피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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