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왜 '얼굴'인지 아시나요?

[송준호 교수의 길거리 사회학] 비단같이 고운 얼굴

등록 2014.03.24 15:52수정 2014.04.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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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이 깃드는 굴'이 '얼굴'이란다. '얼'은 '겨레의 얼' '민족의 얼'과 같이 사람의 정기·기상·정신 등을 뜻하는 말이란다. '굴'은 '구멍'이란다. 사람의 몸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있다. 그 중 일곱 개가 얼굴에 몰려 있다. 그럴 듯한 해석이다.

'얼굴'의 다른 말로 가장 흔히 쓰이는 게 '낯'이다. 물론 그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신관' '광대' '낯짝' '쪽' '세숫대야' 등이다. 이 말들은 품격이 조금씩 다르다.

'신관'이나 '낯'은 비교적 점잖은 축에 속한다(용안이야 더 말할 게 없지만). '광대'와 '낯짝'은 급이 조금 낮다. '쪽'이나 '세숫대야' 같은 말은 점잖은 사람은 아예 입에 담지 않는다. '쪽 팔린다'의 '쪽'도 여기에 해된다. '세숫대야'는 어떤 이들이 즐겨 쓸까.

'신수가 훤하다'고 했다. 이때의 '신수(身手)'는 '신관(身冠)'이나 '풍채(風采)'와 더불어 본디 몸 전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좁은 의미로는 '얼굴빛'으로도 쓰인다. '신간이 편해야지'라고 할 때 '신간'은 '신관'을 잘못 쓴 것이다. '풍신' 또한 '풍채'를 낮춘 말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점잖게 낮춰 부르는 말이 바로 '광대'다. 얼굴의 양 볼 위쪽에 있는 뼈를 '광대뼈'라고 한다. 광대뼈도 '광대'에서 나온 말이니까 '광대뼈'는 '얼굴뼈'다. 이 '광대'는 얼굴 말고도 아주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남사당패에서 연극이나 줄타기, 판소리를 하던 사람을 '광대'라고 했다. 그들이 무대에 오를 때 쓰는 탈이나 몸에 걸쳐 입는 무대의상도 '광대'다. 무대에 오를 때 얼굴에 물감을 칠하는 일도 '광대'다. 오늘날 배우들이 분장하는 걸 옛날에는 '광대 그린다'고 했다.

마음 고와 반했다는 남자, 정말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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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장품 매장에서 발견한 얼굴 ⓒ 송준호


'다시 보자 조명발, 속지 말자 화장발'이라는 말이 있다. 조명을 잘 받으면 얼굴이 예뻐 보이고, 메이크업을 하면 실제보다 훨씬 아름다운 얼굴로 보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다. 하나 더 있다. 20대는 '화장', 30대는 '분장', 40대는 '변장'이란다.  

메이크업을 안 한 얼굴은 당연히 '맨얼굴'이다. 요즘에는 그걸 줄여서 '민낯'이라고 한다. 요즘 아이들이 우리말을 적극 쓰는 몇 안 되는 예다. '민낯'의 '민'을 쓰는 다른 용어로는 '민소매'가 있다. '맨'과 '민'은 아무 꾸밈이 없음을 나타내는 일종의 접두사다.

거리에서 '민낯'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는 고등학생 아이들조차 방과 후나 주말에는 하다못해 비비크림이라도 발라야 외출할 마음이 생긴다고 하니 말 다했다. 메이크업을 거의 목숨처럼 여기는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이런 노래가 귀에 들리기는 할까.

마음이 비단같이 고와서
정말로 나는 반했네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

가수 남진이 불러서 히트한 <마음이 고와야지>라는 노래의 일부다. 

대번에 항변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음이 비단같이 고와서 반했다는 남자가 있다고? 요즘 세상에? 하이고, 뻥치시네!"다. 왜 아니겠는가. 남자들도 메이크업하는 세상이니….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정성 있는 얼굴

웃는 낯에 침 뱉지 못한다고 했다. '밴댕이 속알머리'의 괴팍스럽게 찡그린 낯에 침 뱉는다. 또 있다. 제 얼굴에 침 뱉는 낯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낯,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대신 두 눈을 표독스럽게 치뜨고 적반하장을 일삼는 낯에 침을 뱉는 법이다. 

일찍이 링컨 대통령은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살아오는 과정에서 형성된 얼굴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땅에서 정치하는 이들이 새겨들으면 좋을 말이다.

위 사진은 어느 화장품 전문점에서 발견한 것이다. 메이크업에 공을 들여서 '순진한 얼굴'로 만들란다. 이성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인가. 메이크업만으로 그게 과연 가능할까.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민낯이어도 진정성 있는 얼굴을 일 것이다.
#얼굴 #신관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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