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제 교육감, 무시하면 큰 일 난다

[게릴라칼럼] 무상교육과 학생안전, 6·4 교육감 선거의 이슈 되어야

등록 2014.05.20 17:26수정 2014.05.2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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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교육감은 국가가 시도에 위임한 행정사무 중 교육과 학예에 관한 사무 일체를 관할한다. 예컨대 고교입시 전형은 교육부장관이 아니라 시·도교육감이 결정한다. 평준화를 엄격하게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학교별 자체 고사를 강화할 것인지가 교육감 손에서 선택된다. 전국 교육감들이 뜻만 모으면 고입 제도, 나아가 우리나라 입시 정책 전체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직선제 교육감은 힘이 세다.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교육 사안에 대해 결정권을 갖는 이가 교육감이다. 교육감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교사들의 근무 방식과 학생들의 학업 생활이 크게 달라진다. 교육감 선거 이슈에 차분하게 눈길을 돌려야 하는 이유다.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는 학교 무상(의무)급식이 최대 이슈였다. 아이들 먹을거리 문제는 자녀 걱정 많은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뒤 무상급식 이슈는 정치권으로 확대되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으로 비판했다가, 그 자신이 승부수로 던진 주민투표를 통해 물러나기까지 했다.

무상급식의 폭발력은 엄청났다. 김춘진 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무상급식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0년 3월 0.2%에 불과했던 서울지역의 무상급식 실시학교 비율은 2014년 3월 현재 72%로 크게 늘어났다. 무상급식의 진원지였던 경기도는 21.6%에서 80.2%로 네 배 가까이 증가했다.

무상급식은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이끄는 지역에서 선도해 온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고 무상급식 비율의 확대가 진보교육감이 있는 지역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절대 수치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으나 비진보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도 무상급식 실시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 울산은 2010년에 무상급식 실시 학교 비율이 '제로'였다가 2014년 3월 36.9%로 늘었다. 무상급식 비율이 0.2%에 불과했던 '보수 도시' 대구도 현재는 19.3%로 늘어나 있다.

복지 공약 파기 논란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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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참여연대와 전국교수노조, 학교급식네트워크, 참교육학부모회 등 전국 2천여 시민단체가 참여한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친환경 무상급식연대) 출범식에서 참가자들이 친환경 무상급식 요구하며 대형 현수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유성호


무상급식의 폭발력은 2010년 지방선거나 교육 분야에만 한정되지도 않았다. 무상급식에서 파생된 복지 이슈는 2012년 대선에까지 이어지면서 정치판의 주요 화두가 되었다. 복지 이슈는 2012년의 전체 대선 국면을 주도했다. 그간 '무상'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왔던 새누리당조차 주요 대선 공약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사이에서 벌어진 '복지 전쟁'의 제1라운드에서 보편적 복지가 승자인 것처럼 보였다.


대선이 끝난 뒤 박근혜 대통령은 복지 공약 파기 논란에 휩싸였다. 기초연금, 보육,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국민기초생활보장 등 주요 복지 공약이 축소되거나 파기됐기 때문이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박 대통령의 복지 공약이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근거 없는 비방이 아니다. 지난 5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기초연금법이 통과되었다. 올해 7월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기초연금법에 따르면, 65세 이상 전체가 아니라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만 기초연금이 지급된다고 한다. 연금액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매월 10~20만 원이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방식이다. 모든 노인에게 매월 20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당초 공약과는 전혀 딴판인 셈이다.

이제 복지는 시대의 조류가 된 듯하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무상급식을 포함한 무상교육에 부정적인 색깔을 덧입히려는 이들이 많다. 좌파 포퓰리즘 정책이니 퍼주기니 하는 말들로 그 가치와 의의를 폄훼하려는 시도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상급식의 2014년 판 버전이랄 수 있는 무상교육이 제2기 교육감 선거에서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배경이다.

무상교육에 대한 진보·보수 진영의 차이는 뚜렷하다. 보수 진영은 '무상'에 거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중앙일보> 5월 12일자 기사(<무상교육 vs 혁신학교폐지···교육감선거 4년 전 재탕>)에 따르면, 문용린 서울교육감은 "나는 '무상'에 알레르기가 있다. 예산 문제로 더 이상의 무상교육은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서울교육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진보 진영 교육감 후보들의 무상교육 정책을 비판하면서 학교 세울 돈이 학생들 입으로만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승덕 변호사도 무차별적 무상교육 시리즈는 내지 않겠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반면 진보 교육감 후보 진영에서는 무상교육 이슈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느낌이다. 서울교육감 진보 단일 후보로 추대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개편해 무상 유아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고 한다. 경기교육감 후보로 나온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은 학용품부터 체험학습, 수학여행, 앨범 비용까지 유·초·중학교의 완전 무상교육을 공약했다.

보수언론들의 무상급식 트라우마?

2010년 교육감 선거를 달구었던 무상급식 이슈에 대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보수 언론은 무상교육의 이슈화를 막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가령 <동아일보> 5월 16일자 사설(<무상급식이냐 학교안전이냐, 학부모가 선택한다면>)은 학부모들에게 전면 무상급식과 학교시설 안전 문제를 놓고 택일하라고 하면 어느 쪽을 고를 것인지 묻고 싶다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다분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레임이다. 세월호 참사 후 한껏 커진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자는 불순한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이 교육 예산의 블랙홀이 되면서 학생 안전과 관련되는 낙후한 학교 시설 투자가 거의 중단된 점을 꼬집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근거로 교육환경 개선 예산은 크게 깎인 반면에 교육복지 지출은 급증한 사실을 들었다. 하지만 삭감된 교육환경 개선 예산이 교육복지 예산으로 갔다는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무상급식이 교육 예산의 파행을 불러왔다는 주장은 보수 진영에서 반복하는 단골 레퍼토리다. 진짜 그럴까. <오마이뉴스> 5월 16일자 기사인 <우리 아이 급식에 이런 변화가? 미처 몰랐네>에는 국회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연구회' 기획 토론 당시 홍종학 민주당 의원이 발제한 자료가 포함돼 있다.

홍 의원의 자료 중에 2010년 무상급식 논쟁 이후의 지방재정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있다. 이 그래프를 보면 2010년 이후 사회복지예산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2010년 26조 원, 2011년 28조 원을 지나 2012년에는 30조 원에 달했다. 전체 예산 중 사회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었다. 2010년 18.97%였다가 2011년 20.18%를 거쳐 2012년에는 20.46%에 이르렀다.

무상급식 반대론자들의 주장대로라면 복지예산이 증가하고 무상급식이 확대됨에 따라 재정 위기가 초래되어야 한다. <동아일보>의 주장처럼 무상급식이 교육 예산의 블랙홀이 됐다면, 그에 따라 모자라는 돈을 빚을 통해서라도 충당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 28조 원이었던 지방채무는 2012년에 27조 원으로 감소했다. 전체예산 대비 지방채무비율도 2010년 19.36%에서 2012년 16.24%까지 줄어들었다.

홍 의원 발제 자료는 지난 8년간의 지방채무 증가율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4기 지방정부(2006년 대비 2010년)의 지방채무 증가율은 66% 정도였다. 5기 지방정부(2010년 대비 2012년)에서는 '- 6.44%'로 나왔다. 묻지마 식 복지정책이나 퍼주기 무상급식이 재정 위기를 가져왔다는 주장이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권자들의 표심은 과연 어디로 향할까

의무교육 단계인 초·중학교에서는 무상급식이 당연하다. 학용품과 교복, 기타 교육 활동에 필요한 일체의 비용도 원칙적으로는 국가가 부담하는 게 맞다. 의무교육이 명실상부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면적인 무상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이유다. 학생들의 안전도 전면적인 무상교육체제 아래에서 더 잘 보장된다. 모든 학생을 차별 없이 뒷받침하는, 무상교육의 밑바탕에 깔린 보편적 복지의 기본 철학을 생각해 볼 때 말이다.

지방선거가 2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직선제 교육감을 두 번째로 고르는 유권자들의 표심은 과연 어디로 향할까. 현재로서는 '복지전쟁'의 제2라운드 승자가 누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교육감들에 따라 '무상'의 운명이 판가름 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정은균 기자는 6.4지방선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특별취재팀입니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6.4 지방선거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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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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